2008년 8월, 촛불시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 즈음, 이명박 정권과 공안검찰은 당시 ‘사노련 활동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격 연행,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에 의해 두 번씩이나 영장이 기각됐지만 검찰은 끝내 불구속 기소를 감행했다. 그 뒤 장시간에 걸쳐 뜨거운 법정 공방이 벌어졌으며 마침내 2011년 1월 27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사노련 사건 법정 공방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내세운 핵심 논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사노련’의 활동이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긴 재판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증거자료 제출과 수많은 증인 심문을 통해서도, 법원이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하면서 말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채우거나 보강할 수 있는, 그 어떤 새로운 사실이나 정황도 제출하거나 입증하지 못했다. 오히려 무리한 억지 ‘수사’였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과정이었다.
둘째는 바로 위 첫째, 즉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 미래의 ‘잠정적인 위험’을 강변하는 것이었다. 검찰은 현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언제든지 솟구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으며 그럴 경우 과거 러시아 볼셰비키가 그랬듯이 (‘사노련’과 같은)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는 논거를 내세웠다. 나아가 검찰은 심지어 천안함 사태를 끌어 들여 ‘북의 행위’와 같은 사회주의자에 의한 ‘기습적인’ 공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바 이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해괴망측한 논리마저 펼쳤다.
셋째는 대한민국 헌법(질서)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노련 활동가’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모두진술과 최후진술을 통해 검찰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반박의 핵심 논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검찰이 절대 진리라고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기반 하는 토대 자체가 곧 ‘정치사상의 자유’임을 말하고 이를 위반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검찰, 국가권력이라고 논파했다. 즉 검찰과 국가권력 자신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는 것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또 하나는 그 어떤 체제도 영원불변 일 수 없으며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역시 인류가 다다른 하나의 체제 또는 상대적 체제일 뿐 결코 지고지선 한가치일 수 없음을 주장했다. 그 증거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어떻게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절대 다수의 민중의 삶을 위협하고 파괴하고 있는가를 생생히 증언했다. 그 연장에서 그 어떤 체제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자의 의지를 거슬러 존재할 수 없으며, 현 시대 인류가 나아가야 할, 지향해야 할 체제가 바로 사회주의 사회라는 것을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와 관련하여 참석한 변호인 측 증인도 모두 이 부분에서 ‘사노련 활동가’를 집중적으로 지원, 엄호하는 주장을 펼쳤다. 나아가 선고 공판을 앞두고 무려 250여 명에 달하는 전 세계 양심적 지식인, 활동가들이 무죄 판결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노련 사건은 역사적 재판
‘사노련 사건’은 역사적 재판이다. 과거 군사 독재 시기나 그 잔영이 유지되던 시기에 있었던 이른바 ‘조직사건’이나,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는 주로 북과의 관계를 연루시킨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재판과는 그 정치적 의미와 시대적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단지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만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사노련 사건’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공공연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펼친 조직에 대한 최초의 재판이라는 점이다. 검찰이 내세운 증거는 모두 이미 공개 활동에 의해 밝혀진 것들이다. 그 외에 그 어떤 ‘비밀’ 활동이나 문서도 없다. 둘째는 대중적 차원에서 사회주의 정당 건설 운동과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과거 그 어떤 ‘조직사건’도 이런 상황과 함께 한 바 없다. 마지막은 김대중, 노무현 자유주의 정권을 경과한 만큼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이 과연 얼마나 변화됐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비록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사회 전체에 반공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위력을 발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노련 활동가’, 변호인단, 그리고 변호인 측 증인 모두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당당하게 국가보안법 폐지, 사회주의 정치활동 쟁취, ‘사노련 사건’ 무죄를 시종일관 흔들림 없이 주장했다. 그 어떤 동요나 타협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 반해 검찰과 권력이 내세운 논거나 논지는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공공연하게 ‘적’으로 대하는 입장과 태도만이 빛났을 뿐이다. 검찰(국가권력)은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지만 그들이 정말 지키고자 하는 것은 소수의 자본가계급과 그와 함께하는 한 줌의 지배세력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사노련 활동’이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아니었으며 검찰의 주장이 틀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사노련’을 포함한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입장에서는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되기 위한 실천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지금 국가보안법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정치조직, 노동자계급이 발전, 성장하고 있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역으로 말하면 이들이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장치, 기제가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은 단 한 차례도 그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을 처벌한 적이 없다. 국가보안법이 진정으로 의도하고 있는 것은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출현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절대 다수의 민중에게는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이다.
국가보안법 폐기와 사회주의 정치활동
이 모순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안은 바로 사회주의 정치활동, 사회주의 정당 건설 운동을 더욱 전면화, 본격화, 대중화하는 길이다. 국가보안법은 결코 법정이나 의회에서 자연스럽게 폐지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같은 자유주의 세력은 물론 나아가 진보정당을 비롯한 개량주의 세력도 이제는 거의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그들이 정치활동을 하는 데 있어 국가보안법은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이미 아니다. 개량주의 세력은 국가보안법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동반자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개량주의 세력도 자유주의 세력보다는 더 강도 높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이유에 있어서는 자유주의 세력과 이제는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즉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필요한 장치는 아니라는 정도다.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에게 더 이상 혁명적 실천을 기대하지 않으며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어떤 면에서 검찰의 논거보다도 후퇴한 것이자, 더 후진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민족주의 세력’의 입장에서는 국가보안법이 ‘현존하는 직접적인 위험’이다. 그 측면에서는 그들 역시 사회주의 세력과 같은 처지에 있으며, 같은 고통과 희생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 나아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도 그래야 한다. 또한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회주의자는 단지 공동 대응이나 연대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주장과 태도를 더 끝까지 밀고나가야 한다. 바로 이번 재판과정에서 ‘사노련 활동가’는 이 점을 당당하고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사노련 사건’은 사실관계 차원에서는 물론 국가보안법의 법리적 적용을 따진다 해도 당연히 무죄며, 법원은 무죄를 선고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유무죄를 넘어 사회주의 정치활동, 사회주의 정당 건설 운동은 더욱 공세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정치조직, 노동자계급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업이다. 이것이 이번 ‘사노련 사건’이 던지는 핵심적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