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세계적인 탄원서 제출은 전 연세대 교환교수였던 미국의 진보잡지 ‘Insurgent Notes(반란자의 기록)’의 편집자 로렌 골드너가 사노련 탄원을 위한 긴급 호소문을 11일 발표하면서 쏟아졌다. 로렌 골드너의 호소문을 본 전세계 진보적인 학자와 노동운동가 250여명은 사노련 공대위 이메일로 탄원서를 보냈고, 영어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등 10개 언어로 작성된 탄원서가 왔다. 사노련 공대위는 지난 21일, 재판부에 국내외에서 작성된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를 보낸 국외 진보적 지식인에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국립대학 교수와 홀거 하이데(Holger Heide) 독일 브레멘 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적인 맑스주의자이며‘신좌파의 상상력’과 ‘정치의 전복- 1968년 이후의 자율적 사회운동’의 저자 조지 카치아피카스 등이 눈에 띈다.
박노자 교수는 김형두 판사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혁명’이라는 언사를 사용하는 것을 바로 폭력이나 국가 변란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억지 해석”이라며 “사노련 피고인들이 준거틀로 삼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은 꼭 폭력 행사로만 묘사되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박노자 교수는 “혁명의 핵심은 대규모 사회 생산시설 (대공장, 은행 등등)에 대한 사회화 조치이지만, 프리드리히 엥겔스 등이 지적한 것처럼 이와 같은 조치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얼마든지 평화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또 “사회주의와 같은 용어는, 대한민국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다수의 유럽 국가의 유력정당의 명칭에 들어가 있는 단어”라며 “세계의 어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을 강령 내거는 정당의 구성원들을 감옥에 보내는 사례는 최근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오로지 사회주의라는 언사로 인해 사회, 정치 활동가를 감옥에 보내면 이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본질적으로 위배되는 정치 탄압으로 분류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국제적 명성 및 권위를 크게 손실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로렌 골드너 편집장도 “피고인들은 어떤 분명한 범죄사실을 이유로 하지 않고 단지 맑스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는 점이 ‘범죄’가 되어 기소되었다”며 “이 사건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한국 정부와 한국의 사법체계에 수치스러운 시간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사노련의 범죄 혐의가 갖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숙고해 1987년에 한국인들이 성취한 민주적 가치들을 지지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며 “사상과 언어가 범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할 것을 그리고 자유의 가치들을 지지해 주시라”고 요청했다.
노동운동가 중에는 호주 NSW주의 소방관 6천 명을 대표하는 소방관 노동조합의 짐 케이시위원장이 눈에 띈다. 그는 “저는 늘 한국이 확고한 민주주의 사회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확고한 민주주의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사상과 활동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1945년 9월 9일 인천 땅을 밟았던 미군 제7보병사단의 참전용사도 탄원서를 보냈다. John E. Chiaradia씨는 1945-50년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그 시절 비롯된 하나의 법이 부당하게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노동운동가 8인을 감옥에 보내는 데 사용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8인의 사건에 그 법을 적용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사노련 재판, 한국 민주주의 척도 될 것
사노련 재판이 이렇게 전 세계적인 관심과 이목을 받는 이유는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한국의 민주주의 척도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오세철 전 교수와 양효석, 양준석, 최영익 등 사노련 간부들에게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 벌금 50만원을 구형하고 박준선, 정원형, 남궁원, 오민규 등에겐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 벌금 50만원을 구형했다. 징역 7년은 국가보안법상 이제까지 최고 구형량이다. 실제 국제사회주의자 사건이나 진보민청사건, 노진추 사건 등 주요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구형량은 5년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 사노련 재판에선 이례적으로 7년을 구형한 것은 연평도 사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재판의 결론에 따라 한국사회 민주주의 가늠의 척도가 될 전망이다.
사노련 재판은 심리 과정에서도 김세균, 김수행, 강내희 교수 등 국내 맑스주의 학자들이 대거 증인으로 참석해 맑스주의 운동의 정당성과 직접민주주의 문제, 자본주의의 문제 등을 증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노련 선고공판은 2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열린다.
박노자 교수 탄원서
존경하는 김형두 판사님께,
저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인문학부 문화연구 및 동양언어 학과 교수 박노자 (Vladimir Tikhonov: http://www.hf.uio.no/ikos/personer/vit/vladimit/index.html )입니다.
2010년 12월3일, 서울지방법원에서는'한국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사노련)' 소속 오세철 교수와 다른 회원들(양효석, 양준석, 최영익, 박준선, 정원형, 오민규, 남궁원)에 대해 5-7년형이 구형되었습니다. 이들은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을 비롯한 각종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변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으로 기소된 줄로 압니다. 이외에 "사노련"이 그 강령 등 주요 문서에서 구사해온 "사회주의", "혁명" 등의 언사는, "사노련'이 "국가 변란", 즉 폭력적 변란을 도모한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서 "사노련"에 대한 고발, 수사, 구형의 근거가 된 것으로 압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은 근거만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한 그 어떤 폭력적 행동도 저지른 적이 없었던 몇 명의 활동가들에게 중형을 구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무리이며, 이들에 대해서 사법부가 전향적으로 인식해주고 이들을 무죄로 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에 맞는 처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쌍용자동차 파업 등에 대해 특히 보수언론들이 "폭력" 등의 식으로 매도했지만, 헌법 차원에서 본다면 노조 결성 및 파업은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에 속합니다. 또, 파업사태가 폭력화되는 것은 많은 경우에는 노동자들에게 하등의 양보를 하지 않으려는 사용자측의 초강경 태도, 그리고 강경 진압으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일임으로, 오로지 파업 노동자 내지 그들을 지원하려는 "외부 세력"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다소의 무리가 따릅니다. 양심의 자유를 허하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상으로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파업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로 인식되어지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혁명"이라는 언사를 사용하는 것을 바로 "폭력" 내지 "국가 변란"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억지 해석으로 보입니다. "사노련" 피고인들이 준거틀로 삼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혁명"은 꼭 폭력 행사로만 묘사되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혁명"의 핵심은 대규모 사회 생산시설 (대공장, 은행 등등)에 대한 사회화 조치이지만, 프리드리히 엥겔스 등이 지적한 것처럼 이와 같은 조치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얼마든지 평화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고인들이 긍정시하는 베네수엘라에서의 자베스 대통령 지도하의 작금의 사회 변혁 과정은, 바로 이와 같은 헌법질서를 준수하면서 이루어지는 "평화혁명"의 사례입니다. "사회주의"와 같은 용어는, 대한민국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다수의 유럽 국가의 유력정당의 명칭에 들어가 있는 단어입니다. 예컨대 저 본인이 거주하는 노르웨이의 연립내각에 입각돼 있는 사회주의좌파당 (http://sv.no/)은 하나의 사례일 것입니다. 판사님께 종합해서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세계의 어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을 강령에서 내거는 정당의 구성원들을 감옥에 보내는 사례는 최근에 없습니다. 오로지 그 언사로 인해서 일군의 사회, 정치 활동가를 감옥에 보내게 되면 이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본질적으로 위배되는 "정치 탄압"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되며, 대한민국의 국제적 명성 및 권위를 크게 손실시킬 것입니다.
현명하신 김형두 판사님께 위와 같은 탄원의 말씀을 올리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전향적인 판결에 대한 저의 기대를 표명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슬로대 박노자 삼가 드림 (vladimir.tikhonov@ikos.ui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