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더위를 많이 타서 선풍기를 틀고 자는 일이 많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난 진짜로 선풍기가 죽음을 유발하는지 의심했다. 바람이 질식을 유발한다면 헬멧 없이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모두 질식사해야 할 것이며, 저체온증이 문제라면 바람 부는 고수부지에서 자는 것도 위험하지 않겠는가? 이런 의문에 기초해 몇 년 전‘선풍기를 틀어놓고 잔다고 죽는 건 아니다’라는 글을 모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7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는데 그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다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래?”
“우리 할머니도 그렇게 돌아가셨다.”
심지어 이런 댓글도 있었다.
“외국에서 이 같은 사례가 없는 것은 외국엔 선풍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의사들이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주로 가는 사이트에는 내가 쓴 글이 이런 멘트와 함께 옮겨져 있었다.
“이 친구가 학생 때부터 좀 엉뚱한 면이 있었는데, 아직도 이러고 사네.”
하지만 서울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에 의하면 “선풍기 때문에 호흡기 장애나 저체온증이 발생해 사망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만일 선풍기가 이런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킨다면 선풍기에 경고문이라도 붙어 있어야 하고, 선풍기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이 끊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 결정적으로 그런 믿음이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건, 그게 말도 안 되는 미신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www.fandeath.net’이란 사이트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선풍기 사망을 믿는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다. 당신이 한국인 중 누구에게든 선풍기 사망에 대해 묻는다면, 그들은 그게 진짜라고 우겨댈 것이다.”
그럼에도 선풍기 괴담이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는 건 언론에 의한 지속적인 세뇌 때문이다. 사람이 자다가 죽었는데 머리맡에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면 “선풍기 틀어놓고 자다가 죽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게 기사로 나가고, 이런 일이 일 년에 몇 번씩 되풀이되면서 선풍기가 사람을 죽인다는 믿음이 강화된다. 하지만 자다가 죽는 사람의 대부분은 심장마비가 원인이며, 선풍기는 하등 관계가 없다. 여름에 선풍기를 틀고 자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며, 단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게 사망의 원인이라면 겨울이나 봄에 죽는 사람들은 이불을 덮은 게 원인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수십 년째 믿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매스컴의 세뇌라는 게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 수 있다.
신종플루와 선풍기 사망사건
1918년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인류 역사상 가장 피해가 컸던 역병으로, 전 세계적으로 4000~5000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감염자의 2.5~5%가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는데, 한국에서는‘ 무오년 독감’이라고 부르며 740만여 명이 감염되어 14만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 신종플루의 위험성을 경고한 모 제약회사의 전단지 |
2009년 하반기 한국 사회의 화두는 단연 신종플루였다. 걸리면 죽는다는 거듭된 경고에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옆에서 누가 기침만 하면 눈을 부라리며 자리를 피했다.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들의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 메인화면을 장식했고, 배우 이광기 씨의 아들이 신종플루로 사망했다는 기사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200명 남짓이었고 사망률은 0.1%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스페인독감에 비할 바는 결코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신종플루의 희생자는 18,000명에 불과했다. 그게 적다는 건 아니지만, 이 숫자는 해마다 발생하는 계절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보다도 적은 숫자였다. 발생 초기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가 확산됐던 이유는 일반적인 독감과 달리 건강한 사람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만, 실제 우리나라 사망자 중 고위험군이 아닌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2003년 가을, 무척 증상이 심한 독감이 돈 적이 있다. 그때는 타미플루 같은 약도 없어 일반적인 해열진통제 등으로 3-4일 정도 치료하면 좋아졌다. 그때도 고령의 환자나 다른 질환이 있던 환자는 꽤 많이 사망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보도가 안됐을 뿐이지.”(늑대별의 이글루, http://cheilpkh.egloos.com/1558269)
사실 독감은 몇 년 주기로 유행했고, 그로 인한 사망자도 꾸준히 있어 왔다. 아무리 스페인독감과 사촌 간이라 해도 이번 독감에 대해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신종플루에 대해‘ 과잉대응’ 논란이 나오고, 이번 사태를 주도한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약회사의 로비에 휘둘렸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도 이해는 간다.
정말 제약회사의 로비가 있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리고 예측이란 틀릴 수도 있고, 건강에 관해서는 조금 과민한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신종플루 사망자가 적었다는 사실이 WHO를 비난할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신종플루 사태로 인해 타미플루를 만든 제약업체 로슈와 기타 백신 제조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며, 이 과정에서 언론이 큰 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제약회사와 언론의 화려한 결합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신종플루 같은 사건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콜레스테롤은 세포막의 중요한 성분이며, 각종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담즙의 원료가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콜레스테롤을 절대악으로 생각하며,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거나 술안주로 마른오징어를 시킬라 치면 극구 만류한다.“ 내가 안 그래도 콜레스테롤이 높은데!”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콜레스테롤이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같다는 생각을 한다. 괜한 선입견으로 인해 탄압을 받으니 말이다.
물론 콜레스테롤이 높으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건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의사들은 정상으로 분류될 만한 수치마저 ‘고콜레스테롤혈증’ 진단을 내리며 콜레스테롤 약을 처방한다. 이건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인 화이자에서 리피토라는 콜레스테롤 강하제를 만드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략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다. 화이자의 영업사원들은 의사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리피토를 선전한다. 그런다고 의사들이 아무한테나 리피토를 처방하지 않을 것이기에, 화이자는 심혈관학회에 거액을 후원하며 선처를 호소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화이자는 ‘콜레스테롤과 심장병의 관계’를 연구하라고 의사들에게 연구비를 지급한다. 의사들은 콜레스테롤이 아주 조금만 높아도 심장병의 위협이 드라마틱하게 증가한다는 결과를 발표한다. 이 결과는 평소 화이자의 후원을 받는 언론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심혈관학회는 콜레스테롤의 정상수치를 더 아래로 끌어내린다. 의사들은 평소에 잘 알던 화이자 약을 환자들에게 처방한다. 이 과정에서 화이자는 많은 돈을 썼지만, 리피토가 벌어다주는 돈은 그보다 몇 십 배 더 많으니 걱정할 건 없다.
다른 건 그럴 수 있다 해도, 의사들은 과학자인데 연구비를 받았다고 해서 스폰서의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게 정말일까? 퇴행성관절염의 치료제로 알려진 글루코사민의 예를 들어보자. 블라드(Steven C Vlad)라는 의사는 글루코사민의 효능에 관한 연구 결과가 왜 연구자마다 다른지 주목했다. 그는 1980년부터 2006년 사이에 시행된 15개의 임상시험을 항목별로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글루코사민을 만든 회사인 로타팜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11개의 연구는 ‘효과가 있다’고 나온 반면, 그렇지 않은 4개의 연구결과는 ‘효과 없음’이란 결과를 산출해 냈다.”(Vlad SC, LaValley MP, McAlindon TE, Felson DT.Glucosamine for pain in osteoarthritis: why do trial results differ? Arthritis Rheum. 2007 Jul;56(7):2267-77.)
그러니까 연구비를 누가 주느냐가 연구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2006년 2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자체적으로 시행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그들이 내린 결론은 블라드의 주장을 뒷받침해줬다.
“가짜약과 비교해서 글루코사민의 효과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올해 2월, 한국 보건의료연구원도 글루코사민의 치료효과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결론을 지었는데, 제약회사와 우리 언론의 끈끈한 관계로 미루어 볼 때, 이런 발표가 연간 2800억 원을 글루코사민 구입에 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태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제약회사들이 마수를 뻗친 또 다른 분야가 남성 갱년기였다.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을 팔아 재미를 본 제약회사들은 중년 이후가 되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져 삶의 의욕이 감퇴되고 신체적으로 활력이 떨어지는 소위 갱년기가 온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장단을 맞춰 매스컴은 남성 갱년기를 대대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는데, 여성과 달리 남성은 갱년기를 겪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고, 세계적인 병원인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은 다년간의 임상시험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남성 호르몬을 투여한 집단에서 신체적 능력, 삶의 질 등에서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Nair KS, Rizza RA, O’Brien P, Dhatariya K et al. DHEA in elderly women and DHEA or testosterone in elderly men. New Engl J Med. 2006 Oct 19;355(16):1647-59)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갱년기호르몬 요법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니, 우리 건강을 책임지는 곳은 병원이 아닌 제약회사인 것 같다.
제약회사가 지배하는 세상
2004년 5월 SBS 뉴스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알렸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표된 새로운 고혈압 진단기준을 적용했더니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이 고혈압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혈압에는 수축기 혈압과 이완기 혈압이 있는데, 120(수축기)/80(이완기)을 보통 정상 범위로 친다. 내가 학생 때는 이완기 혈압이 95 이상인 경우를 고혈압이라고 했다. 그러던 것이 140/90으로 슬그머니 내려가더니, 기사에 의하면 숫제 120/80을 넘으면 고혈압 진단을 내리기로 했다는 거다. 일상생활에서 지키기 어려운 저염식을 제외한다면 고혈압의 치료는 약밖에 없고, 병의 특성상 한 번 약을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하니, 이렇게 점점 고혈압의 기준을 내린다면 제약회사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실제로 아는 사람이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130/90이라며 고혈압이라고 했단다. 약을 먹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이렇게 대답했단다. “먹는 게 좋겠지요.” 그래서 그는 두 달째 약을 먹고 있다는데, 나이 40도 안되어 벌써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하면 나중에 내성이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제약회사는 점점 환자를 양산하고, 건강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의사들은 제약회사에 종속되어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수단이 된다. 제약회사를 통해 광고를 따내는 언론들은 열심히 약을 선전하기 바쁘다. 그리하여 건강한 사람은 점점 사라져갈 것이다. 남는 건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뿐.
영화 <괴물>에서 정부는 괴물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강두(송강호)를 잡아 가둔다. 과거 우리 정부가 엉뚱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구금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제 정부에겐 그런 힘이 없다. 권력이 자본으로 넘어간 지금, 우리 몸을 구금하는 건 다름 아닌 제약회사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오메가 3과 비타민 C를 먹고, 고혈압 약과 콜레스테롤 강하제를 먹는다. 무릎이 아픈 사람은 글루코사민을, 힘이 없다 싶으면 테스토스테론을 먹을 것이다. 가끔씩‘ 치명적인 전염병이 돈다’며 예방백신을 맞으라고 하면 거기에 따라야 된다. 이렇게 해서 건강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글쎄다. 이게 과연 건강한 삶인지 난 잘 모르겠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0.7-8월호)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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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권재단 사람의 <세상을 두르리는 사람>(2010년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