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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에 웬 노동조합?

[기고] 노동조합 만든 '노동 월간' 작은책의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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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2일 작은책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언론노조 분회로 승인받은 것은 13일입니다). 작은책은 노동자들이 쓴 글로 엮어 가는 노동 월간지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노동자들의 역사를 남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그러니 작은책을 만드는 일 자체가 하나의 노동 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노동자라는 이름보다는 운동가, 활동가, ‘노동 운동 일꾼’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런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하니 둘레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참 제각각입니다. 어떤 분들은 10년 만에 만들어진 출판사 노조라고 치켜세우기도 하시고, 어떤 분들은 작은책 발행인이자 ‘(주)도서출판 작은책’의 대표이사인 안건모 선생님이랑 무슨 불화(?)가 있는 건 아니냐고 걱정도 하시고, 어떤 분들은 작은책 노동조합도 임금 인상 투쟁도 하고 파업도 하는 거냐고 ‘귀엽다’고도 하십니다. 하지만 작은책에 노동조합이 생긴 진짜 까닭을 궁금해하는 것은 어느 분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실 작은책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까닭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우리가 노동자라는 것을 외치고 스스로 마음에 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언론사나 출판사라면 크나 작으나 거기서 펴내는 신문이나, 방송, 책들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말’이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야 신문이 나오고, 방송이 나오고, 책이 나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를 따지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질문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사나 출판사가 내세우는 ‘대의’ 앞에 노동자들의 ‘노동’은 너무 작은 것으로 생각돼 왔다는 것입니다.

작은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고민과 이야기들을 모아서 작은책 한 권으로 만드는 일도 작은책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작은책의 사명이 이 나라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쓰고 전해서 끝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면, 그것을 실현하는 아주 중요한 힘과 책임이 바로 작은책 노동자들한테 있다는 말입니다. 노동의 힘과 책임을 깨달은 사람, 자신이 자신의 노동과 일터의 주인임을 깨달은 사람이 ‘진짜 노동자’라고 작은책은 항상 말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노동자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입니다.

작은책 노동자들이 작은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작은책을 접수(?)하고 제멋대로 해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권리와 동시에 책임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10퍼센트도 안 되는 이 기울어진 나라에서 작은책이라는 잡지가 ‘노동’과 ‘진보’라는 말을 앞에 달고도 지난 15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은 커다란 자랑거리입니다. 하지만 작은책이 앞으로도 ‘살아남은’ 것만을 자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는 앞으로 살아남는 것조차 버거워질지 모릅니다.

작은책 노동자들이 일터를 지키는 것은 곧 작은책을 지키는 것입니다. 작은책 노동자들이 일터의 주인으로 더 일할 맛 나는 일터를 만들겠다는 것은 곧 작은책의 미래를 더 크게 열어 가겠다는 것입니다. 작은책이 지금 진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눈과 귀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저희는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작은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작은책 ‘활동가’로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로서 삶을 나누고 함께 연대하는 것이 그 대답을 더 자신 있게 만들어 줄 하나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서서 작은책 노동조합을 10년 만에 만들어진 출판사 노조라고 반가워하는 분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말씀을 들으면 참 민망하기도 하고 출판 노동자들의 캄캄한 현실이 느껴져서 한숨도 나옵니다. 출판 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크다는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에 가입된 출판 노동자들의 숫자가 50명 정도밖에 안 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2만 개가 넘는 출판사 가운데 노동조합이 있는 출판사는 작은책을 포함해서 네 군데밖에 안 됩니다. 대부분의 출판 노동자들이 ‘출판인’이나 ‘언론인’이라는 이름에 갇혀 있거나, 내일 아침에 잘리거나 돈을 떼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노동자라는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작은책 노동자들이 같은 노동자로서 삶을 나누고 함께 연대해야 할 첫 번째 사람들이 바로 그네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는 작은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작은책을 더 잘 만들면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이 더 빨리 찾아올 거라는 확신과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책만 잘 만들면 된다는 생각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 노동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싸우는 일은 작은책 ‘활동가’가 아니라 작은책 ‘노동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 ‘임금 협상도 할 거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할 것입니다. 단체 협약도 맺어서 노동자들의 고용과 복지에 대한 기본적인 보호 장치들도 만들어 낼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책 노동조합을 임금 협상만 하는 노동조합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임금 협상만 하는 노동조합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작은책 노동자들이 그것만 하려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면, 노동조합을 만들 자격은 있을지 몰라도 작은책을 만들 자격은 없습니다.

사실 작은책 노동조합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 드릴지 걱정이 큽니다. 기대를 하시는 분들께는 실망을 드릴까 봐, 작은책에 노동조합이 왜 필요하냐는 분들께는 영영 그 오해를 풀어 드리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조합원이 세 명밖에 없는 초미니 노동조합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소심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딱 하나 ‘믿는 구석’은 지난 15년 동안 작은책을 지켜 주신 독자님들, 작은책의 진짜 주인이자 동시에 이 나라의 주인인 노동자들입니다. 이제 막 ‘진짜 노동자’가 되겠다고 나선 작은책 노동자들을 노동자 선배님들이 뜨겁게 껴안아 지켜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 그런데 벌써부터 작은책 노동조합이 어용(?)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어서 고민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노동조합 조끼를 같이 입고 싶다는 안건모 선생님의 강력한 요청에 못 이겨, 대표이사의 노동조합 조끼 착용을 허락하는 대신 조끼 제작비를 사측에서 부담하기로 타협(?)해 버렸거든요. 한 푼이 아쉬운 작은책의 살림살이에 10만 원이 넘는 거금의 지출을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을 규탄해야 할지, 노동조합의 힘으로 사측의 양보를 따낸 것이라고 자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안건모 선생님과의 불화설(?)은 이것으로 해명이 된 것 같아 일단은 다행입니다.
  • 독자

    ㅎㅎ 어용과 자주적 노조 사이에서 줄타기 하시며 좋은 책, 좋은 활동 만드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어용이네

    그러나... 저런 어용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훈훈한 소식에 더러운 소식들로 가득한 현실에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작은책 화이팅, 아니 투쟁!

  • 음...

    어쩌면 착한 자본가와 착한 노동조합의 잘못된 선례 참 어용으로 다른 출판사의 노조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