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시부터 시작된 현대자동차 명촌 정문 앞에서의 선전전을 끝내고 근처 국밥 집에모인 제일고등학교 급식소 노동자들의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일찍 나오느라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텐데 국밥을 다들 반 이상 남겨 놓았다. 눈길은 자꾸 식당 주방으로 향한다. 제일고등학교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시간쯤이면 그들도 급식소 주방에서 점심 급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아침을 맞고 있었을 것이다.
“전부 다 했어요. 아침에 재료 들어오면, 다듬고, 씻고, 밥 안치고 국 끓이고, 배식하고, 설거지해서 식기 소독하고, 바닥 청소하는 일까지, 5월달부터는 죽어나요, 살이 짓물러요, 급식소 주방 안이 더워서요. 그렇게 일하고 한달에 80만원 받아요.”
대부분 2년 이상, 혹은 훨씬 그 이전부터 제일고등학교 급식소에서 일을 해온 이 분들은 지금 40대, 50대의 연세가 되셨다. 한창 아이들 돌보고 키울 시기의 대부분을 제일고등학교 급식소에서 보내셨다. 그 사이 이분들이 지은 밥을 먹고 장성한 청년이 되어 교문 밖을 나선, 지금쯤 대학생이 되었을, 직장인이 되었을, 군인이 되었을, 그리고 머지않아 이 사회의 중심이 되어 노동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세금을 내는, 세상을 지고 갈 일꾼이 될 그런 이들은 또 몇천명이나 더 될런가.
제일고등학교 급식소는 2007년 3월1일에 학교 직영 체계로 전환되었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이때부터, 혹은 길게는 십여년 이전부터 제일고등학교 급식소에서 일하신 분들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2007년 7월1일과, 이분들에게 해고가 통보된 2010년 1월말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미 2년 이상을 제일고에서 일하신 분들이기에 마땅히 정규직으로 전환되셔야 할 분들이다. 그렇지만 ‘법 시행일 이후 최초 계약일 기준 2년 이상’인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일고등학교는 이분들의 해고를 합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의 경우, 2007년 3월1일자 계약을 했고, 또 이듬해인 2008년 3월1일자 계약을 했으니, 2010년에 재계약을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울산시교육청은 2006년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합 대책을 추진하는 계획서에서 울산 시내 사립학교 비정규직원 대부분이 교육청의 지침 및 예산지원으로 채용되고 운영되고 있으므로 공립학교에 준하여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무기계약 또한 2007년 5월31일을 기준으로 소급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 기준에 맞추어 보면 2007년 3월1일, 혹은 그 이전부터 일하고 있었던 대부분의 제일고 해고 노동자들은 이미 무기 계약의 적용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울산시 교육청은 지침을 위반한 제일고에 대해서 어떠한 조사나 지도를 진행하고 있다는 근거가 없고 억울하게 해고된 제일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구제 방안조차 내놓고 있지 않다.
‘무기 계약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기 계약을 진행하면 일을 적게 하려고 한다. 학교에 친인척이 없으면 주인 의식이 없다. 이사장과 이야기하여 친인척을 넣으려고 한다’는 제일고 설립자의 말대로 올해 제일고는 급식소 노동자들을 전원 해고하고, 예전에 위탁을 맡았던 친인척이 다시 위탁을 맡아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 학생들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는 위탁업체가 생기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곳이 어딘지는 뻔하다. 급식비를 인상하거나, 급식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서는 위탁 운영자가 챙길 이익을 마련할 길은 없다. 급식비 인상보다 손쉬운 것은 급식의 질을 낮추는 것이다. 대부분 위탁 운영에서는 직영보다 급식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것은 이익을 챙겨가는 업체가 중간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폐단으로 인해 울산시교육청에서도 직영으로의 전환을 적극 권장하고 예산도 지원하고 있다. 제일고도 2007년 위탁에서 직영으로 전환할 때 상당한 예산을 시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았다. 그리고 매년 급식소 시설비를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고 있다.
“2007년에 직영 전환하고 체계가 안 잡혔을 때 우리가 정말 얼마나 고생했는데, 교장 선생님도 우리한테는 늘 잘한다 잘한다 하시고, 올해 1월에 우릴 교장실로 오라고 해서, 우린 이제 무기 계약 전환하려고, 그 말 하려고 오라 하는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근처에 있는 한 사립학교하고 우리하고 조리 종사원들을 맞바꾸자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었냐면, 우릴 제일고에서 계속 고용 안하려고,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나는 정말 돈보다도, 사람을 무시하고, 우리한테 말 한마디 없이 이렇게 한다는 게 더 참기 힘들어요.”
대부분의 해고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당장은 생계에서 오는 불안감이 크지만, 조금 더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마치 쓰다 버리는 낡은 부품처럼, 어느 순간 구겨져 버려지는 소모품처럼 취급된 상처에서 기인하는 것이 훨씬 더 깊고 아프다. 죽음의 공포와도 정면에서 맞서 싸웠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경우도 정작 그들을 분노하게 한 건 훼손된 인간의 존엄성 때문이었다. ‘내가 꼭 저 종이컵 같아요.’ 커피를 비우고 일회용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며 내뱉던 노동자의 한마디가, 문득 던져진 짱돌에 맞은 심장처럼 오래오래 아프게 남는다.
아침 등교길과 점심시간이면 학교 앞에서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복직’을 외치며 투쟁을 하신다. 아직은 낯설기만 한 투쟁가를 일부러 시간 내어 배워가며, 늘 고된 노동을 하다가 갑자기 일을 안하니 몸이 아프시다며 ‘바위처럼’의 율동을 배워 신나게 흔들어보고 싶다는 이분들. 아이들에게 나눠줄 천개도 넘는 야구르트 병 하나하나에 편지를 오려 붙이며 제일고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는 이분들을 보면 ‘밥이 곧 하늘’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정성으로 지은 밥을 먹어야 할 권리가 우리 학생들에게 있지 않은가. 이분들이 복직하여 제자리에서 다시 밥상을 차릴 때, 우리 청소년들의 건강한 몸과 마음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