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본 입장에서 노조의 양보안은 그리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사측의 계산은 간단하다. 09년에 비해 영업이익을 2,000억 정도 증가시키기 위해 비용과 매출의 숫자를 맞추는 것이다.
사측 계산은 전체 생산직의 25% 규모에 달하는 인력 조정과 40% 가까운 임금 삭감을 통해 연간 약 1.000억에서 1,500억 원 정도의 노동 비용을 절감하고, 경기 회복으로 매출을 20~30% 증가시키면 올해는 작년보다 2,000억 정도 추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약 2천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2010년에는 작은 수준에서라도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금호타이어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동자] |
금호타이어 자본이 3월부터 기를 쓰고 구조조정을 감행하려고 하는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 현재 금호타이어 박삼구 회장의 주식은 전량이 담보로 잡혀 있는 상태라 사실상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박삼구 회장의 인사권자인데, 박삼구 회장은 산업은행과 다른 채권자들에게 기업 수익을 증가시켜 채무를 상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내주어야만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숨은 이유다. 이번 구조조정 계획은 그 첫 번째 신호인 셈이다.
코너에 몰린 것은 노동조합 아니라 채권단과 박삼구 회장
현재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노동조합은 8,9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3월 중하순부터 파업 투쟁에 돌입한다는 계획이지만, 집행부는 지난 양보안에서 볼 수 있듯이 파업 투쟁 의지보다는 양보를 통한 적당한 타협에 여전히 무게를 두는 듯 보인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의 머릿속에는 노동자에 대한 타협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채권단이 위임한 경영권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다시 그룹의 소유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술책만이 존재한다.
금호타이어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단결과 단호한 파업이다. 채권 금융기관과 채무 기업 사이의 채무 조정 과정인 워크아웃 과정에서 금융 기관들은 노조에 구조조정 합의서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급한 쪽은 빚을 받아야 하는 금융 기관들과 경영권 확보를 위해 금융 기관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박삼구 회장이다.
최악의 상황으로 금호타이어가 부도 후 법정관리로 가더라도 노동자 입장에서는 더 잃을 것이 없다. 법정관리인이 회생계획을 낸다고 해도 전체 노동자의 4분지 1을 해고하고, 임금을 40% 가까이 삭감하는 구조조정안보다 더 나쁜 안을 제출하기는 쉽지 않다.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않아 채권단이 부도 처리 수순을 밟는다면 결국 현재보다 나빠지는 것은 경영권을 잃는 박삼구 회장뿐이다. 이미 대부분 공장이 가동률 90% 이상을 회복한 상황, 6.2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 전남 지역 고용문제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정치적 조건도 노동조합에 유리하다.
노동자를 희생시켜 금호를 되찾겠다는 박씨 일가의 술책
금호타이어 노동자 생존권 문제와 더불어 이번 투쟁은 금속노조가 향후 산별노조로서 투쟁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금호타이어 부실은 투기적 금융 자본과 재벌 소유주가 어떻게 기업과 나라 경제를 망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기 때문이다. 금속노조가 산업정책을 이야기한다면 21세기 한국 자본주의의 두 축인 재벌과 초국적 금융자본을 우회할 수 없다.
금호타이어 부실은 매출감소에 따른 영업손실로 터져 나왔지만, 부실의 근본 원인은 2006년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금호그룹은 약 6조 원에 가까운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총동원했다. 금호산업이 1조7천억, 금호타이어가 4천5백억, 아시아나항공이 2천6백억 등을 투자하여 금호그룹 내에서 3조 원 정도를 마련했고, 나머지 3조원은 재무적 투자자라고 불리는 국내외 사모펀드들에서 자금을 동원했다. 인수대금의 50% 정도만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빚으로 채운 것이다.
무리한 기업 인수는 몇 가지 점에서 문제를 발생시켰다. 먼저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은 무리한 자금 동원으로 부채 규모가 2005년에 비해 급증하며, 매년 이자 부담과 자금 상환 압박을 받게 되었다. 금호타이어의 이자비용은 2005년 400억 규모였는데, 2008년 1,540억으로 급증했다. 2008년 영업이익이 362억인 것을 참작하면, 당해 타이어를 생산해 번 돈보다 4배나 되는 돈을 금융 기관에 이자로 지불한 것이다. 부채비율도 급증하여, 금호타이어는 2005년 128% 정도였던 부채비율이 2009년 1,085%가 되었다.
이러한 재무 구조 악화가 기업 경영 전체에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06년 이후 국내 생산 공장에 대한 설비 투자가 급감하여, 2005년 8천2백억 규모였던 설비자산은 2008년 6천7백억 원 규모로 20% 가까이 줄어들었다. 2006년 톈진, 2007년 창춘, 2008년 난징과 베트남 공장이 차례로 가동에 들어간 이유도 있지만, 재무구조 악화로 기업 전체적으로 투자 여력이 많이 부족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다.
한편, 대우건설 인수 시 3조 원 가량을 투자한 금융 자본은 요란스러운 행보에 비해서 사실 그다지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재무적투자자(FI)라고 불리는 이들은 사실 기업 사냥을 통해 매매 차익을 전문으로 노리는 금융 투기꾼들이다. 이번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한 미래에셋맵스, 펜지아데카 등 18개 재무적 투자자 대부분은 사모펀드(PEF)들로 공적 감시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펀드 자금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투기자본이다. 이들이 투자한 3조 원은 주식투자 형식이지만 매각 시점 주가가 목표치에 부족하면 금호산업이 그 차익을 보전해주는 것으로 주식 유지 옵션이 주어진 사채에 가깝다.
금호그룹이 상환할 수 없는 3조 원의 풋백옵션은 산업은행이 금호산업과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지불한다. 산업은행이 이들 투기꾼들과 합의한 사항은 금호산업이 약속한 주당 32,500원 풋백옵션 중 18,000원은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원금 8,200원은 금호산업 등에 대한 지분으로, 그리고 이자 6,300원은 1.7대 1비율로 채권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즉 이들 투기꾼이 2006년에 26,200원을 투자하여 잃은 것은 이자 몇 푼이 전부라는 것이다. 정부와 금호자본은 금호그룹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려 하지만, 정작 대우건설 인수 게임에 참여한 투기꾼들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투기판의 주인공이었던 금호그룹의 박씨 일가는 금호산업, 대우건설,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은 잃게 되었지만, 금호석유화학과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보장받으며, 일부 재산을 건졌다. 이들이 금호그룹을 유지했던 한 축인 금호석유화학 주식은 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되었다. 이후 채무자들의 출자전환 수준에 따라 감자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박찬구(창업주 4남)와 박철완(창업주 2남 아들)은 금호석유화학, 박삼구(창업주 3남)는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당분간 보장받으며 채무 상환에 따라 다시 주식을 되돌려받을 여지도 존재한다.
결국 수 조원의 손실은 돌고 돌아 노동자의 몫으로 남았다. 산업은행이 재무적 투자자라 불리는 투기꾼들에게 지불할 돈은 산업은행이 금호산업, 아시아나, 대한통운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만들어 내야 할 돈이다. 박씨 일가는 자신들의 주식을 되찾기 위해 금호석유화학과 금호타이어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더 적은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착취한 이윤, 더 적은 인원을 가지고 높은 노동강도를 통해 만들어 낼 이윤이 박씨 일가와 금융 투기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돈의 원천이다.
박삼구 경영진 퇴출, 금호그룹 지분 청산, 정규직/비정규직 총고용 보장!
노동조합은 우선 박삼구 회장과 현 주요 경영진의 퇴출을 요구해야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박삼구와 그의 경영진들은 장기적 기업발전보다는 오직 담보 주식을 되찾기 위한 순이익 확보에만 열을 올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 경영진을 그대로 두는 이상 노동자들은 매년 대규모 구조조정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도의적 차원에서도 현재의 금호그룹 부실을 만들어 낸 경영진은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 2008년 대한통운 인수를 단행하며 급격하게 부실해졌고, 결국 현재의 금호 사태가 발생했다. 더군다나 작년 형제간에 벌어진 경영권 분쟁은 시장의 신뢰까지 상실하게 만들며, 유동성 위기 사태를 키웠다.
또한 노동조합이 이후에도 고용과 관련한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박삼구 일가의 경영권만이 아니라 지분까지 청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박씨 일가가 금호타이어를 지배하는 소유 구조인 금호석유화학과 금호타이어 지분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현재 금호타이어의 대주주는 금호석유화학으로 전체 주식의 47%를 가지고 있으며, 금호석유화학은 박씨 일가가 40%를 소유하고 있다. 박씨 일가는 금호석유화학을 통해 금호타이어를 소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금호그룹 내에서 금호석유화학과 금호타이어를 떼어낼 것으로 보인다. 금호그룹은 크게 산업은행사모펀드가 소유하는 금호산업-대우건설과 박씨일가가 소유하는 금호석유화학-금호타이어로 나뉘고,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은 아직 처리 방향이 미지수다.
그런데 문제는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금호타이어 지분은 현재 산업은행이 따로 손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박씨 형제간의 합의에 따라 박삼구 가족이 가진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금호석유화학이 소유한 금호타이어 지분과 바꾸어 금호타이어 지분 대부분을 박삼구 일가가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단 현재 박씨 일가의 주식 대부분이 담보로 잡혀 있는 상황이라 시간을 두고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은 박씨 일가의 투기적 행태로 인해 발생한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박씨 일가의 주식 일체를 금호타이어에 무상 출연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갖가지 순환 출자를 통해 금호그룹을 지배한 박씨 일가의 지배권 자체가 애당초 문제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들이 금호그룹 기업들과 노동자에게 미친 유무형의 피해는 이들의 사재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다. 노동조합은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 우리은행과 현 경영진을 압박하여 금호석유화학을 통해 소유권을 유지하는 박씨 일가의 주식을 청산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투쟁은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으로 현재의 임금삭감, 정리해고 요구를 물리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속칭 죽은자, 산자로 분류되는 해고자 비해고자의 단결부터, 정규직 비정규직의 단결, 노동조합과 지역사회운동의 단결은 필수적이다. 노동자 자신도 단결하지 못하며 박삼구 회장이 사활을 걸고 진행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노동자만큼 자본 쪽도 필사적이다.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펼치면 정부, 채권단, 사측은 부도 위협까지 내세우며 노동조합을 압박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부도로 더 손해 보는 것은 채권단과 사측이다. 부도, 법정관리를 가더라도 노동조합이 사즉생의 각오로 노동권을 지킨다면, 결국 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사측과 채권단이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노동조합이 협박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사측의 구조조정안은 노동자에게 박삼구를 위해 죽으라는 말과 같으며, 비해고자에게도 죽도록 일하다 조만간 회사를 나가라는 암시다.
이제 노동조합에 필요한 것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단호한 투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