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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에 시작 된 계약해지, 노조가 함께 싸우겠다”

[연속기고 (5)-인터뷰] 최보희 (공공노조 서경지부 학교비정규직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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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ㅈ여고에서 일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3월 2일부터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 날, 이들은 일터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약해지 철회를 요구하며 교문 앞에 섰다.

2010년 3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재계약이 시작되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이미 1월부터 많은 학교에서 해고가 잇따르고 있다. 비정규직법에 따라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2007년 7월 이후 처음 근무했거나 재계약을 했던 노동자들 중 올해 3월부터 무기계약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들을 해고 하는 것이다.

ㅈ여고도 마찬가진데, 학교장은 지난 1월말 무기계약전환 대상자 2명을 비정규직법에 적용하지 않기 위해 계약만료 통지서를 보냈다. 학교장에게 사유를 문의하자 “해고하려는 것이다”라고 명백하게 의사를 밝혔다. 해당 노동자들은 8년 근속의 교무보조 1인과 15년 근속의 시설관리 노동자 1인으로,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자 해고한 것이다. 이들은 개학 이후에도 계속 출근투쟁을 하고 있으나, 학교는 이에 대한 반응과 대응이 없다.

학교비정규직은 이렇게 갑작스런 해고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현장이 서열화 된데다 극도로 보수적이며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관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대다수 여성노동자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권침해나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해 문제제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고용불안으로 노조에 가입하는 것조차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화살이 될 수도 있어 큰 용기가 필요하다.

ㅈ여고 해고를 놓고 최보희 공공노조 서경지부 학교비정규직분회 분회장은 “이미 예상했던 일들” 이라며, “노동조합이 함께 싸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로고등학교에서 8년째 일 하고 있는 최보희 분회장은 2007년 노동조합 가입 이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지 최보희 분회장의 일상과 투쟁을 통해 들여다봤다.

최보희 분회장이 학교비정규직 일을 하게 되고 투쟁에 나서기까지 과정에는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나타났다. 일과 가사노동을 함께 해야 하고, 여성이라 ‘여성노동자는 가장도 아니고 부차적인 아르바이트나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여성을 더욱 비정규직으로 몰아넣었다.

[출처: 김민혁]
-학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전적으로 육아만 전념 했는데, 남편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아르바이트, 단시간 노동을 시작 했어요. 육아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의 정규직노동자였기에 가능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고 그 사업이 잘 안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어요. 그러면서 맞벌이 부부가 된 것이지요. 2003년부터 학교에서 교무보조로 상시근무를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대개의 교무보조직종 노동자들은 주간에 학교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어린 십대 여성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장, 교감, 교사의 사적 심부름은 당연히 해야 했고 00야,00양, 야! 등 호칭뿐만 아니라 차 접대를 하는 등 매우 인권침해가 심각했다고 해요.

제가 있는 구로고등학교의 전임 교무보조도 지방에서 상고를 갓 졸업한 여성이었는데 교무실 여기저기 환경을 어지럽히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을 여러 번 지적을 하다가 다툼까지 생기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는데 그 교무보조가 너무 억울하니까 교장한테 달려가 하소연까지 했다고 해요. 그러나 문제제기한 부분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기는커녕 ‘나이도 어린것이 버릇없고, 당돌하다’라는 평가만 받았지요. 결국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결국은 학교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가게 되자 이번에는 나이가 있는 사람을 뽑기로 한 거예요. 그 당시 학교는 41살의 기혼여성인 저를 처음 채용한 것이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떤 일은 하나요?

교무 업무, 교사업무, 행정업무보조 등 하는 일의 범위는 아주 넓어요. 학교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학적, 교과서, 공문접수 및 배부 등 온갖 학교행사 등등 한가지일이 아닌 매우 다양한 일을 합니다. 교사의 업무가 분장되어 있는데 업무 책임자가 교사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교무보조가 전담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일은 많이 하면서도 고유 업무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적인 처우를 받기도 해요.

- 분회장님은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보통 학교 대표전화가 교무보조 자리에 있다 보니 어지간하면 자리를 이동하지 말라고 해요. 민원전화를 받아야 하니까요. 그러나 대부분 교무보조 일이라는 것들이 자리에 붙어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기도 해요. 학교에는 교육청으로부터 엄청난 공문이 내려오는데 몇 년 전부터 전자문서화 되서 전자문서로 공문 접수를 하는 거죠. 팩스로 온 외부공문은 교장결재가 나면 교감 결재를 받은 후 각 부서로 배부해요. 각 학급 전달사항, 교내메신저공지, 학생문자공지, 교사에게 전달하는 물품 배부, 소모품 관리, 학생청소지도, 문서작성, 컴퓨터A/S ,비상연락망관리 등 거의 교무실에서 진행 돼 일들을 관여하고 있어요.

-구로고등학교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요?

98년도에 처음 이 학교 매점에서 일했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급여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상여금 400%에 퇴직금도 있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이 아직은 어렸기에 4시30분 퇴근한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그렇게 1년여 정도 일했는데 학교급식이 전면 시행되면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행정실 직원에게 교무보조 자리 나오면 연락해 달라고 했고 자리가 생기면서 연락이 왔고 교무실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급여가 적지만 일과 가사노동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학교에서 일하기를 원하게 된 것이지요.

학교에서 일하기 전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해봤어요. 리서치기관에서 현장(필드)조사, 전화조사 등의 일도 했어요. 그리고 94~95년도에 이랜드에서 하루 8시간 일용직으로 전국의 매장에서 주문한 옷들의 스타일과 사이즈를 맞춰 포장하는 일이었어요. 그 때 이랜드 사옥은 보라매 공원 근처에 있었는데 정규직 직원들은 업무가 시작되면 부서별로 건물 로비에서 삼삼오오 모여 예배를 본 후에 회의를 하곤 했는데 박성수 회장은 회사 내에 기도실(기독교에서는 흔히 기도하는 방을 독방이라고 해요)을 만들어 놓았어요. 시시때때로 회사 잘 되어 십일조 헌금 많이 해서 세상에 봉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해요. 거의 모든 물건(의류)을 중국에서 만들어 오는데 그것도 중국에 선교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중국인들을 저임금으로 임금착취 하면서 기독교 선교한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보라매 건물의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을 6개월 단위로 고용계약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더라구요. 단시간 노동의 원조가 이랜드였던것 같아요. 현장노동자들이 정말 이랜드의 악랄함에 치를 떨기도 했는데 2007년 이랜드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씨앗들을 이미 마구 뿌려놓고 있었던 거지요. 예전부터 이랜드가 싹수가 노랗다는 것을 저는 이미 체험했던 거예요. (웃음)

-노조에 가입한 계기를 이야기해주세요.

노조에 가입한 건 2007년 7월이었어요. 노조가 있는지 몰랐는데, 인터넷으로 뒤져보니 노조 홈페이지가 있더라구요. 그때 홈피는 내용도 별로 없고 올라온 글도 많지 않았는데 일단 가입을 하고 동태를 살펴보았지요. 그때 학교비정규직은 공공운수연맹 소속 전국학교비정규직지부였어요. 7월에 비정규직법이 개악되어 통과하면서 시행이 됐고 7월 말 정도에 인터넷으로 노조 가입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한 후 담당자 메일로 보냈어요. 이후 노조의 무기계약 전환에 따른 인사관리규정의 독소조항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이 있으면서 저도 문제의 심각함을 인식하게 되었고 노조에서 무기계약 전환 관련해서 간담회를 진행한다는 공지를 보고 처음 참석하게 되었어요. 이후 10월인가에 두 번째 간담회 참석을 하고 뒤풀이까지 함께 하면서 학교비정규직 활동가와 현장간부들의 첫 만남이 시작 된 거죠. 그 다음에는 회의에 참석 하게 되면서 간부가 되었고 나를 포함한 5개 학교 간부들은 집단교섭 결의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노조에서 집중적으로 간부 활동과 투쟁이 시작 된 거지요.

활동과 투쟁을 하면 할수록 노조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4년에 민주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은 했었는데, 사실 그 때는 정치의식이 싹터서 뭔가 진보적인 활동에 대한 욕구가 강했지만 반면 노동자 의식은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고 스스로도 인식하지도 못했던 시기였지요. 그러다보니 노조를 통해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노동자 의식은 없었어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진보적인 정치인이라 생각하고 찍었는데, 나중에 속았다는 걸 알고 엄청 후회했어요. 그러면서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주노동당을 찍었고, 진보적 실천을 위해 당원 가입했고 적극적으로 당원모임에서 비슷한 생각과 실천의지를 가진 동지들을 만나는 시간이 마냥 행복했던 시기이기도 했지요.

-부당한 상황이라고 느낀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365일 상시근무를 했어요. 노무현정권이 2004년 ‘비정규직 처우 개선 대책’을 내세우면서, 245일, 275일 근무일수가 생기면서 7월 1일부터 시행 하라는 교육청 지침이 내려왔어요. 당시 학교에서는 “교육청 지침도 있고 결과를 보고 해야 하니까 올해는 지침대로 계약하자. 그러나 내년에는 상시고용으로 다시 계약할 것이다.” 라고 회유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바뀐 규정의 항목을 보니 ‘굳이 당사자가 전환을 거부하면 기존 고용기준을 유지하라’는 내용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기존 계약을 유지하겠다고 하니 학교는 ‘규정 일뿐이다 일단 전환을 해라. 현재 일 잘하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하면서 안심을 시키고 나는 그 온정적인 말을 믿은 거죠. 그 정도로 당시의 나는 노동법과 노동자의식은 정말 무지했던 것이지요. 결국 다음해에 상시근무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되고 말았어요.

교장과 실장은 판공비와 식대를 더 쓰려고 비정규직 처우 악화, 해고

-'학교 회계직'이라는 말이 조금 생소한데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보통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는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를 합한 금액인데 이중 학교운영지원비는 단위학교의 학교운영비로 쓰이고 있어요. 그 운영비에 학교비정규직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어요. 즉 학교운영지원비로 급여를 받는 사람을 ‘학교 회계직’이라고 하죠. 그러나 교육청 예산으로 고용되는 직원도 있는데 몇 년 전 부터 학교비정규직을 학교 회계직으로 통칭 하고 있어요. 항상 학교는 예산이 감소되면 아무 책임도 없는 힘없는 비정규직부터 급여 삭감을 하거나 해고 시키고 있는 실정이지요.

2006년부터는, 호봉제로 고용하지 말고 무조건 연봉제로 고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어요. 우리 학교 행정실에 학교회계직인 급여담당1명과 수납담당1명이 있어요. 급여담당자가 육아 때문에 그만두자 후임을 연봉제로 채용했는데 일 년 동안 열심히 커피심부름, 교장 심부름을 하면서 호봉제 전환에 대한 희망을 가졌어요. 그래도 급여담당자이다 보니 다른 직원 수당, 상여금 등을 정산을 하다보면 정말 화가 나는 상황이 되는 거지요. 매월 급여 정산을 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겠지요. 교장, 실장이라는 자들은 자기 판공비, 식대를 더 많이 쓰려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악화하고 해고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면서 학부모들한테는 비정규직 인건비 부담 때문에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 받는다는 식으로 선동해서 급여삭감이나 해고를 남발하고 있는 현실이에요.

예전에는 학교회계직중 기능직 10급의 처우를 받던 호봉제 직원을 구 육성회직이라고 했는데 2005년에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의 학교운영지원비폐지 내용이 포함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 되었어요. 법안이 상정되어 통과 된다면 임금도 삭감되고 고용이 불안해 질 건 뻔한 상황이 되니 구육성회직원들은 당장 생존권에 대한 위기에 처하게 된 거지요. 그때 구육성회직 조합원이 많이 증가하면서 노조와 현장간부들의 투쟁으로 법안 상정을 막아 냈어요. 그때 가입한 조합원들은 육성회직이 많아요. 그러나 상대적으로 연봉제 회계직은 근무일수가 축소되면서 급여가 삭감됐고 복지혜택에서도 제외되다 보니 불만이 팽배해 있는 현실이에요. 한편으로는 학교의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하면 싸우기보다는 ‘치사하고 더럽다’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요. 학교는 직종과 급여체계가 매우 다양하니까 노동자의 단결을 끌어내기가 매우 어려운 조건에 있어요.

-분회장을 하게 된 계기를 얘기해 주세요.

저는 노조결성당시부터 있던 조합원은 아니에요. 2007년에 5개 학교가 집단교섭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투쟁 결합을 하게 된 거지요. 그런데 한 학교에 조합원이 한두 명 조직된 상황에서 현장투쟁에 힘을 받지 못하면서 교섭 진행도 어려웠어요. 그 당시에 분회장님은 학교운영비폐지 투쟁 때부터 분회장을 하셨는데 개인사정으로 분회장님의 활동이 어려워졌죠. 그래서 간부들이 역할 분담을 하면서 분회를 이끌어 갔어요. 결국 후임이 없는 상황에서 분회장님이 사퇴 선언했어요. 그래도 간부 몇 명이 투쟁과 회의 등을 참석했지만 분회의 중심은 붕 떠 있는 상황이 된 거지요. 그런 상황에서 그 당시 연사부장 동지가 저에게 분회장 결의 제안을 했고 논의를 통해 제가 결의 하게 되었고, 1년 직의 분회장을 하게 되었어요.

-노조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한 사업장에 모여 있지 않아서 조합원들을 만나기도 어렵고 그러다보니 교육하기도 매우 힘들어요. 일단 모여지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것들이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현장에서 자꾸 얼굴 부딪히면서 만나야 하는데 그런 만남 자체가 어렵다 보니 노조 간담회나 월례모임 자체도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무래도 노조를 방패삼아 안전 보험 하나 들어 놓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지난 1월에는 학교마다 직접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워 스케줄을 잡기위해 전체 조합원 전화를 하다 보니 “방문해도 좋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얼마 안 되었어요. 아예 노조의 전화 자체를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조합원도 많았고요. 이렇게 현장에 있는 조합원 만나기도 힘드니 비조합원들은 말할 것도 없는 거지요.

전교조와 연대 이뤄지면 굉장한 힘

-학교현장에서는 전교조와 연대가 잘 되고 있나요?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전교조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요. 대개 교장, 실장 등은 전교조를 좋아 하지 않아요. 그런 관리자들과 가까이 있으면서 일하다보니 비슷하게 인식하는 부분들이 분명이 있죠. 항상 학교 관리자들은 문제점을 수용하고 바꾸려는 생각보다는 문제제기하는 전교조 교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갈등을 일으키곤 해요. 나름 피해의식이 있다고 할까? 전교조 교사라 할지라도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많이 부족하다고 봐요. 분명하게 서열이 정해져 있고 단순히 정규직 업무를 보조하고 업무자체를 잡무로 취급을 해요. 아직도 학교에서 교사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절대 수용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교사들이 있어요. 학교에서 ‘선생님’은 교사만의 고유명사로 여기는 거지요. 그런 교사들은 의도적으로 00씨라고 호칭해요. 이런 것들이 학교구성원을 위계 서열화시키는 것이고 학교노동자의 계급적 분열 상황이라고 여겨져요. 그러다 보니 전교조 교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만드는 게 쉽지는 않죠.

-분회차원에서는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등을 통해 전교조와 꾸준히 만나고 있죠?

학교 회계직이 많은 곳은 5명까지도 있지만, 대부분 1.2명만 조직되어 있어요. 싸움이 벌어지면 비정규직 혼자서 실장이나 교장과 혼자 싸워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런 상황에 처 했을때 전교조 교사의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굉장한 힘이 되는 거지요. 학교비정규직 조직화는 학교별, 직종별로 다양하므로 중장기적 투쟁전략이 필요하다고 봐요. 무엇보다 최종적으로는 학교노동자가 하나로 깃발을 세우는 교직원 노동조합이겠지요.

-여성조합원들이 많은데,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특수한 조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전체적으로 90% 정도 여성조합원이에요. 특히 비정규 여성노동자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일들이 엄청 많죠. 학교가 굉장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공간인데다, 교장-교감-실장 등으로 위계화 되어있어서 자기 소리를 내기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죠. 여성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차 심부름은 기본적으로 하는 거로 여겨지지만 당사자는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는데, 가장 직급이 낮게 취급하는 공간에서 문제제기 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또한 정규직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당연히 쓸 수 있는데 비정규직은 그렇지 않아요. 비정규직 중에서도 호봉제 직원들은 그래도 덜 눈치를 보면서 쓰기도 하지만, 연봉제 직원은 눈치를 보면서 쓰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재계약이 안 되고 해고되기도 하죠. 인사관리규정에서는 그 법령에 준해서 운영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준수를 하지 않는 거예요. 보통 급여가 낮은 사람들이 더 눈치를 보고 대우를 못 받잖아요, 학교도 마찬가지에요. 연봉제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 받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세요.

보통 학교에서 일한다고 하면 교사이거나 행정직 공무원인줄 알아요. 급여도 많고 처우도 괜찮을 거라고 오해하는 거죠. 그런 인식들 때문에 호봉제든 연봉제든 학교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들도 있는 거 같아요. 그러나 내부적으로 업무는 더 많이 하면서도 정규직과의 급여차이가 많다 보니까 상대적 박탈감이 크죠. 학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급여가 낮은 것도 불만이지만 소위 말하는 여성적인 차별에 대한 불만들도 많아요. 시설관리 하는 남성노동자들은 연봉제에서 호봉제로 전환시켜주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여성노동자는 ‘가장도 아니고 부차적으로 아르바이트 하는 건데 그 정도 받으면 됐지’ 그런 인식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여성이니까 차심부름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여기면서 적지 않은 언어폭력 때문에 상처받는 부분도 많죠. 또 같은 여성이지만 정규직, 비정규직 이냐에 따라서 명백하게 차별받고 있죠. 차심부름도 그렇거든요. 행정실에서도, 일반직(공무원)이면 절대 안 해요. 그런데 비정규직이 여성이 없으면 일반직 여성노동자가 하기도 해요. 비정규직이 정규직 방패막이 되는 거죠.
덧붙이는 말

진재연 님은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이며,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