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노조 정연수 집행부가 민주노총 탈퇴 여부를 놓고 찬반투표를 시행한다고 밝히자 노동계 안팎의 큰 주목을 받았다. 보수언론들도 일제히 민주노총 탈퇴를 기정사실화하듯 요란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서울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 내 상징성이 있는 대규모 사업장인 것도 그렇지만, 최근 ‘노조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명박 정권이 또 하나의 쏠쏠한 전리품을 노획할 것인지 여부도 주목을 끈 이유였을 것이다.
민주노총 탈퇴투표에 왠‘관권, 금권’시비?
이번 조합원 총투표에선 KT, 쌍용차, 공무원노조 산하조직등에서 드러난 민주노총 탈퇴 선동과 공작이 여과 없이 반복되었다. 회사 측은 전례 없이 ‘전 부서별 회식’을 투표 전일까지 완료하라는 지시를 내려 조합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1인당 1만원씩 회사가 지원한 이 자리에서 일부 간부급 중간 관리자들은 공공연히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하다 조합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탈퇴여부가 연말 성과급 부피를 좌우할 것’, ‘탈퇴부결이면 구조조정이 닥칠 것’이라는 낯 뜨거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또 민주노총 탈퇴를 반대하는 노조 현장간부들의 유인물을 수거, 폐기하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라는 지시까지 내리는 등 벌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현 집행부 요직에 있는 간부가 ‘민주노총을 탈퇴 시 휴대폰 요금 지원’이라는 문자를 발송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금권투표 논란으로까지 번진 이 사건으로 서울시가 민주노총 탈퇴 지원방안을 두고 노사 양측과 담합했다는 의혹마저 불거졌다.
악취를 감추기 힘든‘새로운(?) 노동운동’
숱한 논란과 반목을 거듭하던 끝에 알려진 대로 민주노총 탈퇴투표는 부결되었다. 조합원들을 말한다. ‘민주노총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탈퇴 운운하는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등에 총부리를 겨누는 꼴’이라고. ‘정권과 자본의 반노조 정책이 극에 달한 때를 맞춘 투표 자체가 민주노총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존재의의 조차 부정하는 불순한 의도’라고.
협박과 회유가 유례없이 판쳤지만 조합원들은 ‘단결과 노동자연대’라는 정신만은 쉽게 내다버려서는 안될 가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비이성적인 노동 적대정책에 광분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의 뜻을 간접적이지만 강력하게 드러낸 것이다.
안팎의 지원을 업고 가결을 자신하던 정연수 위원장은 투표결과를 두고 ‘복수노조 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혼선과 반대쪽의 네거티브 때문’ 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또 ‘새로운 노동운동이 주류로 등단하기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투표결과에는, 정권과 자본의 언저리에 기웃거리며 줄 대기에 골몰하고 반 노동자적 발언을 일삼는 행보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 담겨져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노동운동’으로 포장하기엔 이미 악취가 지나치다는 얘기다.
민주노조 활동가에게도 성찰과 반성을
이번 투표결과는 민주노총에 대한 현장 조합원의 곱지 않은 평가와 쓴 소리도 담겼다고 본다. 바로 이 시각 뼈와 살을 에는 한파 속에서도 여의도 국회 앞에 포진하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에 이러한 뜻을 전하기엔 가혹하고 경우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말 그대로 ‘민주’노총인 만큼 기왕에 드러난 산하 조합원의 마음 한켠을 읽고 채찍질로 삼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을 자처하는 나 자신은 물론 서울지하철의 모든 민주 활동가에게 성찰과 반성이 요구되는 점이기도 하다. 기업별 노조의 울타리와 대규모 노조의 상대적 안온함에 안주해오지는 않았는지, 보다 낮은 곳을 향한 연대와 단결의 노력을 소홀해하지 않았는지, 노동의 존엄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는 세력에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민주노총탈퇴 투표는 대서특필이 되고, 부결 소식은 ‘뉴스거리’조차 안 되는 씁쓸한 현실에서, 이 자리를 빌려 전국의 노동자에게 졸고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