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투는 지난 2005년 열렸었다. 그 후 정권의 부패와 두 개의 주류 정당의 선거 경쟁에 의해 발생한 위기가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노동운동은 그 자신의 내부적 위기와 함께 발언권이 축소되었다.
일련의 잇따른 대화와 공동 행동 속에서 공통의 어젠다와 더 많은 영역이 함께하는 굳건한 연합이 출현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올 해 부활한 추투는 부분적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일반의 미래에 대한 논쟁과 대화의 시작을 담는다. 지구적 경제위기로 인해 거의 모든 전선에서 모순들이 심화되는 이 때에 마련된 행진의 분위기는 서로 다른 원인들과 싸우는 활동가들이 상징적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를 교환했다. 매우 즐거웠다.
원인들의 상징적 수렴
행진은 정오에 원주민사무위원회(이는 대만의 원주민 관련 정부기관이다. 대만은 약 3퍼센트 정도의 원주민(비중국계열)이 존재하며, 상당수가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앞에서 대규모의 도시 원주민 그룹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타이페이의 도시원주민공동체는 노동조합과 다른 부문 활동가들의 지지 속에 부동산 개발을 위한 토지정비를 시도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강제퇴거에 맞서 수 년간 저항해왔다. 원주민공동체는 화려한 전통 복장을 입고 실질적이면서 문화적인 생존의 요구를 정부 관계자에게 외쳤다. 경찰과 작은 충돌이 있은 후에 원주민 그룹은 노동자 그룹과 만나기 위해 노동부를 향해 행진했다. '투쟁'(鬥)이라는 글자가 적힌 두 개의 커다란 깃발이 길을 인도했다.
▲ 강제퇴거에 저항하는 도시원주민공동체 |
노동자 그룹은 타이베이시 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자주노동자연맹을 중심으로 행진했다. 노동조합들의 주요 요구사항은 노동조합의 권리보장과 일자리의 임시직화를 금지하라는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노동부도 다른 정부 기관과 마찬가지로 간접고용, 기간계약직, '영구 임시직' 노동자 등 수 많은 임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노동기준법으로 금지되고 있고 이를 강제 집행해야 할 주체인 노동부가 자신임에도 말이다. 게다가 시정부 노동조합이 자치단체 노동자들의 외주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 타이베이시 정부는 불법적으로 노조 간부를 해고했으며 타이베이시 노동국은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시장과 협력했다. 공공부문 사용자들의 무법 행위는 최근 대만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권리 공격의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 노동부 앞에서 연대의 춤을 추는 붉은 얼굴을 한 노동조합원들 |
노동부는 문을 잠근 채 추투를 맞이했고 폭력적 충돌을 일으키는 경찰 기동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노동부로 진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분노의 표시로 얼굴을 붉게 칠하고, 원주민공동체들의 참여를 환영하며 드럼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투쟁' 깃발은 원주민 원로에 의해 노동조합 대표자에게 건네졌다. 그리고 행진은 보건부를 향했다.
▲ 예술가 노동조합 건설 위원회가 만든 성난 소가 행진을 이끌고 있다. |
보건부 앞에서 '투쟁' 깃발은 노동조합원에서 낙생요양원(대만 한센인의 집단 거주지로, 최근 지하철 확장 공사로 인해 강제철거 중에 있다.) 보존운동의 대표자들과 성소수자 권리 운동 활동가들에게로 건네졌다. 이주민운동, 에이즈 활동가 및 기타 그룹들과 함께 하는 이들은 공중 건강이라는 이름 하에 일부의 사람들을 낙인찍는 것에 반대하며 싸워왔다. 이는 한센인에 대한 실질적인 구금행위에서부터 성소수자 및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 혈액 검사 등에 까지 걸쳐있다.
▲ 성소수자 공동체가 그들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가지고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
시민들은 공중 건강 체계를 기업이 지배하는 것, 특히 초국적 제약회사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화하는 것에 분노했다.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체계는 1994년 추투 이후에 만들어졌는데 그 핵심은 괜찮으면서도 저렴하게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였다. 따라서 건강권 방어는 추투의 참여자들에게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보건부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더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였다. 미국산 쇠고기와 뼈, 내장 등이 갖는 공중보건 상의 위험에도 정부가 이를 수입하기로 결정한 것. 이는 지난 해 한국에서 촛불집회를 촉발시켰던 이슈이기도 하고 대만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일련의 저항들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보건부에 이어서 그룹들은 타이베이 역사를 지나 행정원(총리실)로 행진했다. 이곳에 참여한 환경 및 농민 그룹들의 주요한 이슈는 행정원이 최근 발의한 타이완 중앙과학공원 확장이라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짱화현(彰化縣)의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수용하여 세계 최대 TFT-LCD 제조업체 중 하나이며, 대만의 다른 지역 설비에서 수질을 오염시켜 악명 높은 AU Optronics라는 기업에게 매우 좋은 조건으로 임대해 넘겨줄 계획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 투자 계획을 위해서 환경평가시스템을 오용하고 있으며 대만 중부의 농촌 공동체는 수자원 고갈과 지하수 오염이라는 어두운 미래에 직면해 있다.
▲ '투쟁'깃발이 토지수용에 저항하는 농민들에게 건내졌다. |
한편 행정원 앞에서는 언론개혁 룹이 있었다. 그들은 정부가 공공 TV를 사유화를 공식화 하는 정부의 발의와 뉴스보도와 광고를 결합한 매체를 허용하고 육성하기 위한 계획 등 대중매체의 기업 지배 심화에 저항하고 있다. 노조를 결성하고자 하는 문화산업 노동자 또한 정부가 발의한 '문화창의산업진흥법' 에 배태되어있는 지극히 친자본적인 정책에 저항했다.
▲ 총통부 앞의 케타갈란(Ketagalan)거리에서의 '연대의 춤' |
행정원 다음으로 행진은 케타갈란 거리에 있는 총통부로 향했다. 도시원주민공동체 원로들은 당시 1천 여 명에 달하는 참가자들과 함께 '연대의 춤'을 이끌었다. 농민들과 노동운동 측의 밴드들은 저항의 노래를 연주했다. 발언자는 1988년부터 지금까지의 '추투'의 역사를 회고했다. 선언문이 낭독된 뒤 참가자들은 300킬로의 소똥을 목표물에 던지기도 했다. 목표물의 중앙에는 '기업지배'라고 표시되어 있었고 그 주위를 'WTO, 신자유주의, 노동파견, 다양한 사유화 계획으로 납세자들을 강탈한 것으로 유명한 대만기업명칭들 등이 둘러싸고 있었다.
일관된 연합 전선을 위한 절박한 임무들
1988년의 첫 번째 '추투'는 노동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을 방어하고 전진시키고, 당시의 대중 교통운송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지키기 위한 요구를 했다. 이후 매년 봄에는 보통 입법적 요구들이었던 구체적 요구들이 제기되었다. 보건개혁안과 같이 어떤 요구들은 후에 법제화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더 큰 요구들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1929년에 만들어진 노동조합법은 노동운동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에서 2차 대전 이전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투쟁이 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만들어 진 것이다. 대만에서 이 법은 개혁안이 좌우를 막론하고 매년 매회 제출되었지만 현재까지 변하지 않았다. 입법투쟁도 중요하지만 오늘날의 노동운동에서 다양한 경향들을 통합하기 위한 공동의 충분하고 효과적인 근거지는 아니다.
▲ 목표물에 소똥을 던지고 있다. |
최근 대만의 노동조합원들은 점점 다양한 전선에서 투쟁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그들 중 다수는 도시 빈민 공동체의 강제퇴거반대운동과 환경관련 저항을 지지한다. 1980년대 노동운동이 무조건 '낡은' 사회운동으로 정의되는 반면 환경운동과 같은 다양한 '신사회운동들'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얘기되었던 서유럽이나 북미와 다르다. 오늘날 대만의 노동운동은 모든 다른 운동들과 함께 출현했다. 이는 인간이 단지 작업장에서의 이해관계 뿐 아니라 삶의 환경, 종족적 정체성, 성별과 성적 권리 등 삶의 다양한 차원에서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대만에서의 노동운동은 처음부터 '다수 가운데의 하나'였다. 그리고 보기에 노동운동은 여러 전선들 중에서 가장 집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주어진 시기에 반드시 가장 강력한 것은 아니다.
▲ 기업지배가 다양한 그룹들이 직면한 무수한 문제들의 한 가운데 놓여져있다. |
소속감과 이해관계가 겹침에도 대만에서 현존하는 대부분의 사회운동 그룹들은 특정 영역에 '전문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많은 그룹들과 개별 활동가들이 해를 거듭할 수록 다른 연합을 통해 함께 있음을 확인하지만 단일 이슈 연합이 다양한 전선에서 가장 흔한 조직화 형식이다. 과거에는 다양성에 대한 포스트 모던적인 지향이 구시대적인 계급 투쟁에 비해 바람직하고 유행에 맞는 것인지가 아카데믹한 논쟁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오늘날, 선거로 두 차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 그리고 경제위기가 더욱더 많은 인민에게 독점자본이 실질적으로 대만과 각 국에서 부당함의 배후에 있는 핵심적인 동력임을 절실히 자각한 후에 통합의 추구는 전 보다 절박한 것이 되었다. 더욱이 수 년간의 경험은 통합이 반드시 다양성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2009년의 부활한 '추투'는 대만의 사회운동 안에서 통일된 반자본주의 어젠다를 향한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는 대만의 노동운동활동가들의 명백한 시도이다.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지난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며, 이번 행진은 단지 그 시작에 불과하다.[번역 연광석]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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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씬싱님은 대만 세신대학 교수로 세신대학 사회발전연구소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