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기억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용산 참사 300일, 문학·예술인들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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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나르마다 강 유역의 대규모 댐 건설 프로젝트에 반대해 온 아룬다티 로이가 말했다고 한다. 부당한 정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다리는 능력’이라고. 국민이 망각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그 오만.

정말 그러한가. 용역깡패, 경찰, 구청과 시청공무원, 검찰, 법원을 휘하에 거느린 정부와 보수 언론들과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투기 건설자본들의 굳건한 동맹 속에 짓이겨져 온 용산 참사 300일. 탄압과 무시와 왜곡에 맞서 참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아직도 냉동고에 갇힌 차가운 시신의 냉기를 기억하고 보듬는 일은 누구에게나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용산의 진실은 조금씩 넓어져 왔다. 구청 이외엔 만날 수 없다던 정부도 서울시청을 내세워보고, 급기야는 국무총리로 하여금 현장을 방문토록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가 망각의 문턱을 넘어 진실의 화살촉을 겨눠야 할 과녁은 한 군데 밖에 안 남았다. 그곳은 시대의 외침에 귀막고 벌거벗은 임금이 숨어 사는 청와대다. 봉건영주의 시대도 아니고, 단지 우리로부터 허드렛일을 위임받은 일꾼일 뿐인 한 사람의 오만과 아집과 독선과 편파와 폭력이 이 시대를 망치고 있다.

유가족들과 철거민,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요구는 소박했다. 사과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투기 건설자본들의 천문학적 이윤만을 지키지 말고 죽은 자와 철거민들에게 최소한의 정당한 보상을 하라. 이것은 사람의 말이었다. 주인들의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현대판 벌거벗은 임금은 제 나라의 가장 평범한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더 잔인한 무시와 탄압만을 일삼았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소수 특권층의 과도한 특혜를 위해 국가공권력을 사제 폭력 다루듯 하지 않는, 평범한 민주주의자를 대통령으로 가져 볼 수 있을까.

그렇게 지나 온 통탄의 300일. 이제 우리 모두의 ‘기다리는 능력’ 역시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못된 정부는 제 나라 국민들이 쉽게 진실을 잊는 바보들이나, 사회적 연대를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의 힘과 양심의 너비를 믿는다.

용산을 덮친 부조리한 투기 개발동맹의 화마는 ‘집·땅·돈’이 없거나 적던 철거민들만 쓰레기처럼 불태운 것이 아니었다. 그 화마는 우리 모두의 상식을 불태웠고, 지난 세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을 잉크 삼아 어렵게 한 장 한 장 써 온 이 땅 민주주의의 역사를 불태웠다. 이 화마에 양심을 데인 무수한 사람들이 용산으로 달려 왔고 거기 문화예술인들도 있었다.
그렇게 용산 300일과 함께 해 온 문학·예술인들이 못된 정부의 ‘기다리는 능력’에 맞서 ‘기억하는 힘’, ‘연대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용산 참사 헌정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11월 말경 <실천문학사>(작가선언 6.9 엮음)에서 출간될 예정인 그 글들 중 일부를 전한다.

용산4가 골목 안 레아 호프에 우리가 걸어놓았듯 “우리는 힘들지 않다”. 우리 모두의 기억하는 힘은 이후로도 계속될 것이며, 더 넓고 깊어져 인문학적 소양과 인간됨이 부족한 한 벌거벗은 임금의 처참한 몰골과 그 뒤에 숨은 투기자본들의 그릇된 욕망과 신화를 만천하에 즐거이 알리게 될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독이 될 수도 있다, 라고 우리가 쓰고, 읽고,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게 될 것이다. 현장엔 나와 보지도 못하고 죽은 법전의 문구나 매만지며 되뇌이고 있는 법정이 판단할 것이라고? 역사 이래로 문학·예술 역시 늘 당대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더 깊숙이, 더 풍부하게, 더 올바르게 선고하고, 판단해내며, 부패를 응징하며, 이를 범사회적으로 공인케 하는 영예로운 시대의 시퍼렇게 날 서 살아 있는 법정이었다는 것을 독재자여! 잊지 말라. 펜 끝이 때론 어떤 칼 끝보다 예리하게 썩어버린 환부를 드러낼 수 있음을.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용산 참사 300일에 전하는 문학·예술인들의 메시지(가나다순)

나는 다시 단언한다. 오늘, 대한민국 사람들이 용산의 죽음을 이토록 무심하게 대한다면, 용산의 죽음에 대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정의를,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수 없다. 용산에 침묵해놓고 정의를 말하고 민주주의를 말하고 선함에 대해서 말하는 자, 모두 위선자들이다. '저 나쁜 바보들의 악행'은 그리하여,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좋은 기운들'을 제압하고 말 것이다. 약한 것들도 웃음 웃고 살 수 있는 평화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돈으로 이루어진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정녕 당신은, 우리는 그런 나라를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용산으로 가야한다.
- 공선옥(소설가) <지금 당장 용산으로 달려가야 한다> 중에서

저를 이곳까지 불러와 용산 앞에 두 손을 모으게 만든 것은, 용서도 구하지 않고 잊기만을 기다리는 저 철면피한 세력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이 구원처럼 기다리는 것은 망각입니다. 저 사나운 세력들과 싸우려면 우리는 하루하루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가슴에 끌로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 권여선(소설가) <우리는 달려간다 용산으로> 중에서

이십 오 년 간 한 자리에서 갈비집을 하던, 업종을 바꿔 호프집을 하던, 치킨집을 하던, 국밥집을 하던,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은 누구든 하루 아침에 다섯이 검은 한 덩어리로 취급당하는 일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말, 투쟁이라는 말, 인권이라는 말을 꿈속에서라도 써 본 적 없이 살아왔던 삶들이 느닷없이 열사가 되었다. 어쩌다 트로트 대신 운동가요 한 소절을 배우게 되더라도 부끄러워서 낯설어서 입시울을 달싹이지도 못할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도심의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리는 기막힌 일이 재개발 지역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 권현형(시인) <푸른 책 검은 책> 중에서

경찰들에게 세입자들은 ‘Hi-SEOUL'을 완성하기 위해 한시바삐 사라져야 할 대상일 뿐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삶 앞에서 필사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날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 망루에 올랐을 것이다. 망루에 오르면서 그들은 마치 낭떠러지 앞에 다다른 것처럼 두렵고 슬펐을 것이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올라간 그들은 죽어서 그곳을 내려왔다.
- 김경인(시인) <09년 1월 20일, 하느님은 떠나셨다> 중에서

저녁 늦게 불법 추모제가 끝나면 유가족들은 여태 냉동고에 갇힌 채 눈도 감지 못한 망자들 곁으로, 아직까지 빈소가 마련돼 있는 순천향병원의 장례식장으로 귀가한다. 귀가? 그렇다. 집으로 가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빈소의 조문객용 탁자 사이에 누워 새우잠을 잔다. 그곳에서 밥을 먹는다. 철거민 고(故) 윤용현 씨의 고교생 아들과 고(故) 이성수 씨의 고교생 아들, 고(故) 이상림 씨의 중학생 손자는 아예 그곳에서 학교를 다닌다. 먹고 자고 학교에 다니는 곳, 장례식장이 곧 집인 것이다. 하기야 그들에게는 어차피 이 세상 전체가 장례식장이다. 용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언제 어디서든 검은색 상복을 벗지 못할 것이므로.
- 김미월(소설가) <다음은, 나중은, 조금의 여유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중에서

이들은 강력하게 파시즘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이 추악함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추악함의 본질을 까발리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림으로 그들의 꿈을 분해하는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용산 참사 현장 고 이상림 열사(72세)가 운영하던 까페 레아에서 열리는 ‘끝나지 않는 미술전’에 참여했다. 그렇게 주저하던 생애 첫 개인전을 철거 지역에서 열었다. 일주일 동안 신들린 듯 그림을 그렸다. 그리곤 언젠간 철거될 버려진 건물에 나는 꿈을 심었다. 그들은 그들이 진정 철거시킬 수 없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양심이여 연대의 문화이다.
- 김종도(미술가) <불꽃과 함께 사라지다> 중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짓을 용납한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이런 세상을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하고 사람이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서로 사랑하는 대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뼈아픈 세상을 용납하고 있는 저희들을 용서하세요.
- 김해자(시인)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중에서

제2, 제3의 용산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폭력적인 국가권력을 향해 그 죽음의 행렬을 돌이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신정 6-1지구에서 용산 4지구까지」에서 호명했던 수많은 지역들에서 개발이라는 전쟁은 계속되어 왔고, 계속되고 있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의 주체는 자본과 국가만이 아니다. 더 크고 새로운 아파트를 소유하려는 마음이 있는 한, 유리창의 안과 밖에서 우리는 더 견고한 침묵을 키워갈 수밖에 없다.
- 나희덕(시인) <신정 6-1지구에서 용산 4지구까지> 중에서

이 나라는, "사람 여섯이 불에 타 죽었다"고 울부짖어도 모른 채 외면하는 민주시민의 나라,
덕수궁 분향소에서 5시간을 기다려 조문하고 흐느낄 줄은 알아도, 겨우 15분 거리, 1분을 기다릴 필요도 없는 용산 분향소로는 발길 돌릴 줄 모르는 이중감정의 나라. 그렇게 불에 탄 시신이 다섯 달째 냉동고에 처박혀 있어도, 눈만 꿈뻑꿈뻑대는 메마른 양심의 나라.
쥐를 욕하면서도 그 자신 '반인반쥐'가 되어가는 줄 모르는 착각의 나라.
- 노순택(사진작가) <히틀러만이 사람을 태워 죽인 것은 아니다> 중에서

망루를 오르다 불에 타 죽고
죽은 몸은 다시 냉동되어 여름까지도
망각의 상자 속에 갇혀 이승에 방치되어 있었고
경찰과 깡패가 한 개의 방패 뒤에 저희
그림자를 가리고 발맞추어 지나가고 나면
신문은 무기가 된 활자의 볼트와 너트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구 던졌다
- 도종환(시인) <그해 여름> 중에서

단 한 곳의 성한 숨구멍도 없이 쓰러진 이들은 다섯 명이었으나, 그 화상은 곳곳에 번져갔다고 쓰여질 것이다. 대개 심장 가까운 곳이었으리라고. 각각의 화상 자국으로 이 화염의 시간을 건너면 그들은 환히 되살아올까. 생맥주잔을 설거지하는 며느리 잔등을 살짝 토닥이는 촉촉했던 시아버지로, 감히 계몽컨대 이 화상은 모두의 화상이다. 모두의 화상이어야 한다.
- 문동만(시인) <죽여서 죽었다> 중에서

‘땅·집·돈’이 없는 자를 금 밖으로 몰고,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며, 철거용역이 주민들을 일상으로 모멸하는 개발‘사업’ 과정이 학살이다. 그 ‘사업’은 대화 노력 없이 경찰력을 동원해 망루 아래위를 포위해 사람을 죽였다. … 6명이 죽은 사건의 공식 이름은, ‘용산 학살’이다.
- 박수정(르뽀작가) <학살, 엘도라도 카라자스와 용산> 중에서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늘 변함없이 누군가는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누군가는 색색의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누군가는 음악을 틀어 상처로 얼룩진 골목에 흐르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씩 어디선가 모여들어 죽은 이의 안식을 기도했고, 손에 손에 조그만 촛불을 나누어 들었습니다. … 골목 사이로 거센 바람이 불어와 가끔 그 촛불은 꺼지고 말지만, 그러나 떨리는 손 안에서 미세한 따스함은 곧 다시 전해져 환하게 불타오릅니다. 가장 검은 밤에 가장 환하게. 죽은 사람들이 어찌하여 산 사람들의 입 속에 검은 밤처럼 모이는 것인지, 용산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역설의 낙원에서 우리가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별의 근육입니다
- 박시하(시인) <어찌하여 죽은 사람들이?> 중에서

지상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난간 위에 망루를 세웠다. 망루가 서 있던 난간은 무너진 하늘의 일부였다. 그곳은 철거민들의 소도(蘇塗)였지만, 관리들은 용산 4지구라고 불렀다. 누군가 망루에 불을 질렀고, 시커멓게 타버린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급하게 이승을 빠져나갔다.

모두 난간 위에 살고 있으면서도 발아래 세상을 보지 못했다.
- 박후기(시인) <난간에 대하여> 중에서

그렇다, 저들이 철거하려던 것은 낡은 집들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였다
저들이 강제로 부수고 내쫒으려던 것은 가난과 낡은 도시가 아니라
가진 것 없는 자들의 권리와 주권과 생존권이었다!

그렇다, 그날 새벽에 아무런 우연도 없었다
모든 건 계획되고 예정된 수순이었다
돌발사건도 없었다 실수도 착오도 없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스스로 위장 가면도 벗어 던졌다
그날 아침 투입된 경찰 특공대는 경찰이 아니라
재벌의 용역임을 선언하였다
정부와 청와대가 재벌의 특공대임을 감추지 않았다
- 백무산(시인) <민주 공화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행한 학살만행을 보라!> 중에서

지상에서 쫓겨난 자들이 망루로 갔다. 망루에서 내몰린 영혼들이 산 채로 화장 되었으나 바뀐 건 없었다. 그 망루에 눈이 내렸다 녹았으나 다시 겨울이었다. 그 망루에 꽃이 피고 졌으나 봄은 오지 않았고, 그 망루에 폭우가 내렸으나 씻겨 내려간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서영식(시인) <목구멍이 포도청> 중에서

당신이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을 외쳐댈수록
불행히도 나는 자꾸만 사기당한 기분이 든다
하여, 이는 진정한 존경이 아닌 것이다
생존의 터전을 지키려다 불타 죽은 이웃도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며
아비를 아들을 남편을 형제를 이웃을
동료를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 통곡하는 이들도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다
- 손세실리아(시인) <거리에 두고 온 시> 중에서

국방부 선정 금서를 발행한 출판사에 다니고
피디 수첩에 출연해 그에 항의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감시를 받고 있다는 환각에 시달리게 한다
풍수학상 화마를 잡는 남대문이 불타버렸으므로 촛불을 끄기 위해
대운하를 추진해야 한다는 설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나라
오오 두려운 괴력난신의 염력기공사가 틀림없이
권력 핵심부에 영혼을 팔아버렸나 보다
용산참사 현장 불에 그슬린 건물에
염력기공세계총본부 간판이 아직 붙어 있다는 후문이다
- 손택수(시인) <염력기공의 나라> 중에서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쉽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믿어야 한다. 이것은 명백한 공권력 타살이고, 타살에 대한 책임을 이명박 현 대통령과 정부가 져야 한다고.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가 가진 힘을 믿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양심을, 연대의 마음을, 저항의 힘을 믿어야 한다. 저들의 탄압과 폭력과 야만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이 현실이 된다고 믿어야 한다. … 난 3류 시인이다. 좋은 시는 쓸 줄 모르지만 꿈꿀 줄은 안다. 늘 사람들이 안 된다는 한계와 경계 너머에도 수많은 가능성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들을 본다. 벽이 있으면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은 어디로든 흘러간다. 막히면 돌아가고, 도저히 안되면 땅 속으로 스며서라도, 증발해서라도 어디론가 흘러간다. … 움직이는 것들을 막으려는 노력은 부질없거나 부패한 것들이다. 용산의 진실은 그렇게 묻을 수 없는 진실이다.
- 송경동(시인) <이 냉동고를 열어라> 중에서

아버지, 이제 장마가 오면 뜨겁던 몸도 그늘을 치듯 조금은 식을 수 있을는지요 우리는 여기 향을 피우고 당신이 뿜었을 마지막 숨이 연기처럼 흩날리는 것을 국화꽃 그늘 앞에 상을 차리고 바라봅니다 당신 등골을 타흐르던 땀처럼, 한나절 비가 천막을 치고 갑니다 그리하면 점점이 흩어진 살들도 송글송글 소금기 같은 여름꽃 몇 송이 키울 수 있을는지요
- 신용목(시인) <용산의 당신에게> 중에서

시를 읽는 일이 한가롭다는 생각 때문에 용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좋은 시는 절박하고 또 정치적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는 정치와 예술이 ‘근본적으로’ 연동돼 있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을 보이고 들리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나타나서 그간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로 무언가를 주장할 때 시작되는 것이 정치다. 그러니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둘러싼 완강한 질서를 재조직한다는 측면에서 예술과 정치는 하나다. 그렇다 해도 새해 벽두에 가장 참혹하고 치명적인 시는 시집이 아니라 용산에 있었다.
- 신형철(문학평론가) <용산, 참혹하고 치명적인 시(詩)> 중에서

한 번 태어났지만 돈이 없으면 두 번도 세 번도 죽어야 하는 세상
저녁을 훔친 자들만의 장밋빛 청사진
뉴타운천국
- 안현미(시인) <뉴타운 천국> 중에서

2009년 8월 11일. 용산참사 7개월째. 현장에 마련된 남일당 근처에서 <69작가 1인 시위>를 하는 날, 강의를 들었던 두 명의 학생들이 그곳을 찾아 왔다. 학생들은 우리 사회가 감추고 있는 ‘인권’의 현실을 보았고, 현실적 ‘자유’의 무력함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곳에는 도로교통법이 완비되어 있고, 경력대비가 있으며, 집시법이 있으나, 소통의 통로가 없고, 대화를 위한 시도가 없으며, 약자를 위한 기본권이 없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학생들에게 보여줄 희망이 남아 있지 않았다.
- 양윤의(문학평론가) <당신의 외투를 벗어 망루에 돌려 달라> 중에서

우리 문학인·예술가들은 생래적으로 고도의 민감성을 존재의 특성으로 합니다. 우리는 세속정치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고고함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인간성의 기반을 훼손하는 불의와 폭력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도록 설계된 유전자를 가진 존재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민중의 고통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문학인·예술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것은 정치적 구호의 복창이 아니라 문학·예술인으로서의 양심의 발로입니다. 특검에 의해서든 국정조사에 의해서든 용산참사의 진상을 철저히 재조사하라, 여섯 분의 죽음에 대해 우선적으로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사과하고, 무리한 진압을 명령한 지휘관을 처벌하라, 빈민·서민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기득권자 위주의 개발정책을 중단하라,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하며, 더 완전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 염무웅(문학평론가) <참담한 심정으로> 중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두 명의 외국인은 시위를 하고 있는 내게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하고 물었다. 나는 '정부에 의해 학살이 자행됐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라고 다시 질문했다. 나는 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8월 3일은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96일째였고, 곧 고통의 나날이 200일에 접어드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 민주주의가 짓밟힌 지 200여일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우리 모두는 남일당 아래에서 난쟁이가 되어 왜소해지고 있었다.
- 오창은(문학평론가) <용산 4지구 안에서 우린 모두 난쟁이> 중에서

모두들 은평뉴타운에 환호할 때, 친환경마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던 한양주택의 주민들은 삶의 터를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토지보상금을 받고 흩어졌다. 10년 전 가수용단지를 얻어냈던 무악동 주민들이나, 토지보상금을 받고 각자의 길로 떠난 한양주택 주민들은 적어도 지금 용산의 사람들보다는 행복할지 모른다. 그들은 어찌 되었든 생명까지 철거당하지는 않았으니. … 우리 모두 꽝꽝 얼어붙은 주검 옆에서 고통받고, 부끄러워하며, 오래 동안 아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우리가 내릴 역, 또 그 다음 역은 언제나 용산참사역일 것이다.
- 윤예영(시인)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중에서

9월 1일, 용산참사 공판에 친구들과 함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었다. 대체 무슨 얘기들이 오가는지 한번 구경이나 해보고 싶었다. 법정에는 방청객의 얼굴을 잡는 채증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공간에 발을 들여놓아본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 그 카메라의 존재는 몹시 불쾌했고, 위협이 되었다. 나는 이 재판을 중립적으로 지켜볼 나의 권리가 침해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변호인단이 공석인 상황이었다. 자신들 이외에는 자신을 변호해줄 사람이 문자 그대로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법이라는 거대한 존재, 철벽같은 국가권력을 상대로 “나의 살아갈 권리, 말할 권리, 부당하게 처벌받지 않을 권리를 존중해주십시오” 하고 직접 말을 해야 하는 개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 공기를 울리는지, 나는 똑똑히 들었다.

변호인이 없어도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재판장은 말했다. “그렇다면 돌아앉게 해주십시오. 나는 변호인이 없습니다…… 나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나지막하게 떨리면서 법정에 퍼지던 피고인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 권력이 한쪽의 증거만 취사선택해 제시하는 부당한 법정에 한 인간이 피고인으로 계속 서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라가 있다. 나는 그 나라의 국민이었다. 이제는 법이라는 것의 숭고함에 대한 환상도, 가슴속에 남아 있던 정의에 대한 일말의 믿음도, 한낱 추억이 되었다.
- 윤이형(소설가) <정의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 중에서

“내가 지하하고 일층서 삼층까지 인테리어 하는데 일 억이 들었다. 권리금은 몇 억이고. 근데 사천만 원 받고 나가란다.”
“허, 날강도가 따로 없네요.”
“말도 마세요. 저는 권리금 사천에 보증금 삼천이었는데, 천삼백만 원 준다대요. 조합 가서 그랬어요. 그 돈으로 용역이나 많이 사라고, 나는 투쟁이나 하겠다고.”
“저는 도서대여점하는데요, 한 번 둘러보더니 책들이니까 차에 실고 나르면 되겄네. 그 걸로 끝이에요. 철거용역들이 얼마나 협박을 해대는지 밤에 다니기도 무서워요. 지난 번에는 집에서 안 나간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도록 패는데 경찰들은 뻔히 보고만 있더라구요.”
“우리 같은 세입자는 사람도 아닌께. 임시상가도 안 마련해주고 그 돈으로 어디 가서 장사를 하란 말이여?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순 없응께.”
- 은승완(소설가) <내 이름은 용산 남일당입니다> 중에서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이 끝나고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제 생각은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재개발 공사를 하기 위해 둘러쌓아 놓은 임시벽에 평화를 상징하는 스티로폼 꽃들을 붙이는 놀이를 하는 순간, 근처에서 하이에나처럼 노려보던 사람들이 나타나 훼방을 놨습니다. 용역깡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벽에 붙여놓은 꽃들을 마구 떼어내고, 그 벽이 자신들의 사유재산이라며 악다구니를 놓았습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따로 공부를 한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사유재산을 마구 뜯어냈습니다. 사진을 찍는 기자들의 카메라도 막고, 빼앗고 상황이 험악해집니다. 저는 얼른 스케치북을 꺼내 그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 이동수(만화가) <용산에 가면 시대와 예술이 보인다> 중에서

제가
혹여 어려운 이웃과
부당한 일에 그만 눈을 감을 때,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깨어나고 각성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상상하고
마침내 즐거이 살아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억압하는, 자신이 자신에게
용역 깡패가 되는 짓이라고
꾸짖어 주세요.
- 이만교(소설가) <이상림 할아버지께> 중에서

그의 고질적인 난독증과 과대망상은 이 땅을 막무가내로 온갖 실험 무대로 만들고 인권 후진국으로 전락시켰다. 역대 정부와 달리 자신의 이름을 명칭으로 내건 정부답게 그는 지금 그만의 왕국, 그들만의 천국을 건설 중인 것일까. 방해가 된다면 무엇이든 누구든 기이하게도 금세 감금되거나 사라졌다. 그의 안중에는 도무지 대화란 게 없으며 대중이란 게 없다. 그 덕분에 이 땅은 심각한 애착장애로 인해 기형적으로 변형되고 있다. 겨울에서 멈춘 발육지체. 봄과 여름과 가을은 흔적도 없이 지나간다. 어쩌면 용산의 참극은 이 땅에 예정된 수많은 각본들 너머로 이미 소각된 엔지 필름에 불과할지 모른다. 무고한 죽음들이 등장하는 그 필름을 불사른 공권력과 그 모든 걸 연출한 정부, 양자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들은 서로 시치미 떼고 있지만 둘 중 적어도 하나는 살인자다.
- 이민하(시인) <죽은 새들의 행진> 중에서

나는 두어 시간 전에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에 내려서 2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새로 만든 역사가 거대함을 느꼈습니다. 역사를 벗어나려면 수십 개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했습니다. 나는 회색빛 대리석의 계간을 밟으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중간쯤 내려갔을까요. 오른쪽 한 켠에는 계단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계단은 아무도 밟지 않았습니다. 대신 물결에 젖은 계단에는 대여섯 마리의 비둘기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거나 계단 이음새에 고여진 물을 부리로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 나는 한참 동안이나, 발을 담그고 몸 에 물을 들이키는 비둘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비둘기도 목을 축일 곳이 있는데…’
- 이상실(소설가) <빈소 앞에서> 중에서

“대체로 법률이니 권리니 하는 따위는/(중략)/우리가 타고난 권리에 대해선, 유감스럽게도 한 번도 문제 삼는 일이 없”(·파우스트· 1972~1979행)으며, 국가마저 자본에 복무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조국이 있는가, 주권이 있는가. 우리는 이중으로 추방된 자이며, 무분별한 욕망의 노예일 뿐이다. 추석이 지났다. 아비를 잃고 조국을 빼앗긴 자들, 이들에게 또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이오카스테가 말한다. 추방된 자들은 희망을 먹고 산다고 하더구나. 폴뤼네이케스가 답한다. 희망의 눈길은 따뜻하지만 걸음은 느리지요. 그 느린 걸음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가올 저 시간이 희망의 허망함 대신 승리를 드러내게 할 수 있을까. … 크레온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제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었던 안티고네의 입을 빌려 말해본다. 우리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려고 태어났다.
- 이선우(문학평론가) <용산, 추방당한 자들의 나라> 중에서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일 오전 5시 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이시영(시인)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중에서

용산 참사 현장에서 돌아오던 유월 어느 날 밤 포장마차에 앉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국민이 최고 권력자를 짐승에 빗대어 부르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것도 궁기와 해악의 대명사인 설치류의 짐승으로. 뉴스는,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잡혀가 고문당하는 상황이 아니므로 지금은 독재 시대가 아니’라는 모 여당의원의 발언을 전하고 있었다. 세상에, 고문을 해야 독재라니.
- 이영광(시인) <말하라, 어서 말하라> 중에서

가난한 행복은 행복이 아니야, 개 무시하며 저 높은 꼭대기에서 불 켜놓고 사는 이상한 인간들이 잘못되었다. 그들이 떨어뜨리는 콩고물이나 쪼아 먹으면서, 그 콩고물에 전력을 다하는 놈들이 잘못되었다. 그들의 높은 벽에 걸린 행복이 오로지 행복이라 믿으며 그쪽만으로 열심히 할보하는 길거리 대다수의 눈들이 잘못되었다. 그런 것들이 간신히 쌓은 우리의 행복을 철거를 한다. 간신히 발견한 우리의 행복을 또 뭉개 버린다. 짓밟힌 행복 위에 무식한 공구리를 치고 “없는 것들은 오지 마. 무식한 것들은 오지 마.”한다. 근접할 수 없게 그들이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개발이고, 재차 확인사살하곤 더 높이 달아나는 것이 재개발 아닌가.
- 이윤엽(판화가) <용산에서 우리가 철거당하고 있다> 중에서

먼 남미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가 '시는 슬프고 음악적인 곱사등이란 걸/저 멀리/경계에서 경계까지의 정오의 발자국을/시가 알려준다는 걸'(「불완전한 탄생」>중에서) 하고 '난 신이 아파하던 날 태어났어' 하고 말했던 것처럼 용산의 고통 속에서 내 시 또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이종수(시인) <쥐덫이 작품이 되는 세상> 중에서

용산참사를 빨리 잊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이렇게 참사가 일어난 날짜를, 희생된 분들의 이름을, 그토록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공권력이 벌이는 무자비하고도 치사한 짓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 이진희(시인) <남일당 미사> 중에서

이것은 정말 거꾸로 된 세상, 이상한 나라의
황혼이 짙어지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날기 시작하고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죄를 지어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촛불을 들고 어두운 감옥으로 가리라
감옥 밖이 차라리 감옥인 세상이기에
- 정희성(시인) <물구나무서서 보다> 중에서

저희 <행동하는 라디오> 활동가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용산참사 현장에 머물며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소외되고 짓밟혀온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이 버틴다면 우리도 더 질기게 버틸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이 UCC 시대라는 것은 다들 아실 테지요? 라디오 방송과 동영상 제작이 가능한 촛불미디어센터가 남일당 건물 바로 뒤편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앞으로 몇 백편이든 몇 천편이든 철거민들 편에 서서 진실을 알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조약골(가수. 독립미디어 활동가) <그들이 무섭고 싫다는 친구야, 이 방송을 들어보렴> 중에서

나는 지하철 안의 주위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의 큰소리로 아들 녀석에게 호통을 쳤다.
“대학생 놈들이 사회문제에도 좀 관심을 갖고 뜻 있는 일에 참여할 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만날 놀기만 하면 되냐? 네 친구들에게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서, 또 용산미사에 대해서 설명 좀 하고 모두 일곱 시까지 용산으로 데리고 와. 알았어?”
- 지요하(소설가) <역사를 만드는, 역사에 남을 용산미사> 중에서

햄릿은 마음속에 간직한 아버지의 시신을 치우지 않고 남들이 헛것이라고 말하는 유령이 전하는 진실을 고통스럽지만 밝혀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이 세상에 공표될 때까지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용산의 햄릿들도 200일이 넘게 아버지들의 시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만 슬픔을 멈추라고 강요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일당 앞을 떠나지 못하는 햄릿들은 그 강요의 목소리가 추악하고 거짓된 것임을 잘 압니다. 그들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떠난다면 또다시 어디선가 더 많은 아버지의 유령들이 분노로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나타나 더 많은 아들들에게 비열한 범죄를 밝혀달라고 호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산의 햄릿들은 계속 슬퍼하면서 미래의 또다른 아버지와 햄릿이 겪을 슬픔까지 모두 등에 짊어지고 싸웁니다.
- 진은영(시인) <용산 멜랑콜리아> 중에서

망루에서 돌아가신 이상림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레아호프’ 안팎은 각종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가 되었고, 4구역 안쪽의 무교동 낙지 건물은 ‘낙지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어린이책 한마당도 열렸고, 에니메이션 상영회도 열렸습니다. 시민 여러분들, 문학인들, 음악인들, 미술인들, 학생들이 다녀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그곳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작은 공동체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산은 여전히 더 많은 분들의 발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르마다 강에서 로이는 외쳤습니다. “여러분, 어서 오십시오.”
- 차미령(문학평론가) <아룬다티 로이와 용산참사 200일> 중에서

불행한 일이지만 ‘(문학 혹은)연극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거나 ‘(문학 혹은)연극은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자화상’이라는 말이 쑥스러워질 만큼 한 편의 희곡을 써서 무대 위에 공연으로 올리는 작업이 점점 더 무력하고 부질없는 일로 느껴지는 요즈음입니다.
- 최창근(극작가) <아주 조용한 나날들> 중에서

우리가 그들을 부르지 않으면 그들은 마침내 죽는다. 호명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들이 산다. 비참한 악습을 몰아낼 새로운 눈물은 우리에게 그득하고, 그득하다 못해 넘쳐난다. 찔레나무여, 찔레나무여 바야흐로 살인자를 얼음 속에 산채로 집어넣을 시간이 됐도다!
- 한우진(시인) <찔레나무> 중에서

그들이 망루에 올라갈 때까지 나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내 삶에 직접 영향이 없다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불합리하게 흘러가더라도 침묵하는 태도 또한 그들을 망루에 올리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그것이 소시민의 삶이겠지만, 실은 그 또한 변명에 불과하다. 무너진 집에서 쓴 소설과 시대가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20년 전. 그런데 그 고루하고 낡았던 이야기가 바로 지금 눈앞에서 다시 벌어졌다. 누가 망루에 불을 질렀는가. 책임을 면할 자 아무도 없다.
- 한지혜(소설가) <누가 망루에 불을 질렀는가> 중에서

도무지 자기성찰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사불란하고 맹목적이며 야비하고 무자비한 19개월의 정권의 시간이 흘렀다. 문학의 자리에서 볼 때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예의가 사라진 이 시간은 거대한 재앙의 시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 재앙 같은 시간 속에 용역이라는 이름의 그럴싸한 깡패조직과 재개발조합이라는 이름의 허울 좋은 투기세력과 오로지 자본의 무한증식만을 욕망하는 건설재벌, 거대한 이권세력의 수호에만 기민한 법의 하수인들의 ‘협업’으로나 가능할 수 있었던 용산참사가 250일을 지나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 임하게 할 것을 간구하는 장로 대통령의 나라에서, 250일이 지나도록 살인을 저지른 법의 하수인들은 자신들의 ‘주인’을 믿고서 아직도 장례를 치루지 못한 냉동된 주검, 얼어붙은 귀신들 앞에서 기세가 등등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희생시킨 사람들이 정작 제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진짜 주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이것이 법원의 미공개수사기록 공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더 뻔뻔하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이다.
- 함돈균(문학평론가) <정녕 당신이 보시기에 참 좋습니까> 중에서

힘이 없는 내 시는 고작 ‘죽음에 대한 예의’를 운운하고 말았지만, 그것은 정말 적을 벨 수 있는 날카로움이 아직 없어서 그런 것이다. 이 무력한 시를 언제까지 쓸 것인가. 이 무용한 문학을 언제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시커멓게 타 버린 삶 앞에서, 다 태워죽이고도 사실적(?) 논리를 을러대는 현실 속에서 시의 새로움이 있다면 자기 파괴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산 자의 가슴에 폐허가 들앉지 않도록 뭔가를 보태야 하는 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다. 저들은 삶의 공간만 폐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가슴에도 폐허가 번지게 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폐허 위에서만 자본의 증식은 극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 황규관(시인) <죽음에게는 먼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