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저는 정말 바보였습니다

[기고] 이용석 노동자상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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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운 공공노조 조합원은 지난 24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이용석 노동자상을 수상했다. 이용석 노동자상은 2003년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이용석 열사의 정신을 기억하며 만들어진 것으로 정수운 조합원은 6번째 수상자다. 이용석 노동열사 정신계승사업회는 정수운 조합원이 3번의 해고에도 굴하지 않고 투쟁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에 모범이 되었다고 시상의 이유를 밝혔다. 다음 글은 정수운 조합원이 시상식에서 낭독하려던 수상 소감이다. -편집자주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정수운 조합원에게 시상했다./참세상 자료사진

수상 소감을 준비하라고 전달 받았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당황스러워 몇 자 적었습니다.

저는 정말 바보입니다. 2007년 설날을 앞두고 첫 번째 해고를 당했는데, 해고를 당하고서야 비정규법이 뭔지를 제대로 알았습니다. 가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비정규법에 대해 듣긴했지만 정작 저랑 무슨 상관인지 해고 당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햇수로 3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바보입니다. 이용석 열사의 뜻을 기리는 상을 받게 될거라는 소식을 듣고나서야, 저는 이용석 열사가 어떤 분인지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가끔 주변 동지들이 이용석 열사를 문득 문득 말하는 것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 분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용석 열사 정신계승 사업회 홈페이지도 보고, 뉴스도 검색해보니 상을 받는다는 기쁨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무게가, 힘겹게 투쟁하는 모습이 그려져 조금은 우울했습니다. 정작 제 자신의 문제라서 그런지 이런 상을 받는 제 모습에 조금 쓸쓸함도 느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용석 열사 정신계승 사업회와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신 동지들이, 제가 더 힘내서 잘 싸우길 바라는 마음에 이 상을 제게 주신 건데, 정작 상을 받는 제가 힘있는 발언을 해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저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우리 공공노조 식구들은 저를 ‘학비’ 동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용석 열사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근비’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여러분! 노동부 비정규직 동지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부르는지 아십니까? 정말 이래서는 안되는데 노동부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죄송합니다. 노동부 비정규직 동지들은 ‘노비’입니다.

학비, 근비, 노비, 산비... 그렇게 비정규직이 우리 곁에 있고, 차별과 해고가 있고, 투쟁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3년간 3차례 해고를 당했습니다. 첫 번째 해고는 비정규법 때문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학교에 있는 비정규직을 다 불러서 “나라가 여러분을 힘들게 한다. 비정규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 청춘을 학교에 바쳤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였습니다. 너무나 억울해 노동조합에 문을 두드리고 해고 철회 투쟁을 벌였습니다. 두 번째 해고는 정리해고법 때문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에는 노동자를 해고하는 법이 왜 이리도 많습니까? 비정규법, 정리해고법 말고 더 있겠죠. 다행히 많은 동지들의 연대 투쟁 덕분에 저는 다시 학교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올 해 세 번째 해고를 당했습니다. 이유는 공금을 횡령하고, 문서를 위조했다는 것입니다. 저와 15년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정말 몸서리가 쳐집니다.

비정규직 동지 여러분! 그리고 정규직 동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이 상을 제게 주셔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함께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동지들이 없었다면 저는 나라와 법을 원망하고 어쩌면 저 자신을 원망하며 해고를 받아들이고 살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경찰서 유치장에도 다녀오고, 재판도 받고, 아스팔트 위에서 쓰레기처럼 질질 끌려다니는 수모도 겪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제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어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만 저는 제 스스로에게 이미 승리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해고를 거부하고 투쟁에 나섰던 것은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제 아이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서였습니다. 제 아이에게 비정규직을 대물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비록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저는 이미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엊그제는 10월 말일 자로 해고 통보를 받아 힘겨워 하는 보육 노동자들과 진하게 술 한잔 했습니다. 어제는 공공노조에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저녁 때는 비정규 장기투쟁 사업장 집회가 여의도 전경련 건물 앞에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투쟁이 조금 주춤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비정규법과 정리해고, 불법파견, 단체협약 같은 문제 때문에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명지대학교 비정규직 동지 여러분 힘내세요! 기륭전자 동지들 덕분에 제가 힘 많이 받았습니다. 재능교육 동지들의 외로운 투쟁에 저도 늘 눈길을 보내고 있답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성향아 동지도 힘내시고, 보육 동지들은 꼭 복직투쟁에 승리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KBS는 비정규직을 몰아내더니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 김제동 마저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KTX 전 민세원 지부장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 부디 마음 편하게 계시길 바랍니다. 민세원 동지에게 저는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제가 소속된 공공노조 동지들, 민주노총 서울본부 동지들, 전교조 선생님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진보정당 동지들, 사회진보연대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다함께 같은 노동단체 동지들. 학생행진과 성신여대 총학생회 같은 학생 동지들. 그리고 여기 계신 비정규직 동지들과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시는 정규직 동지들이야 말로 이용석 열사를 기념하는 상을 받으셔야 할 분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데, 우리는 뚜렷하게 승리하는 투쟁이 보이지 않아 저는 솔직히 갑갑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며 모든 고통을 우리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이명박 정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명박이 떡볶이를 먹으며 시장을 돌아니고, 친서민 행각을 벌이는 이유는 그만큼 서민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투쟁을 힘차게 벌이고 그리고 오늘 같은 자리에 모여 더 크게 단결하고 또 투쟁하면 우리 힘으로 이명박을 내쫓을 수 있을 겁니다. 비정규직 차별이 없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즐겨 보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항의한 것은 폭동이 아니고 생존이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는 폭도라고 부를테지만 우리는 생존입니다. 동지들 힘차게 다시 투쟁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