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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하나, 씁쓸하다

[기고] 야간옥외집회 헌법불합치 결정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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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집회로 합계 삼백 칠십만 원을 받아 놨다. 서울에서 구호 몇 번 외치다가 잡혀간 단순 참가 건으로 칠십만 원. 수원촛불집회를 팔십 번 넘게 지켜온 주최자로 삼백만 원. 계속 촛불집회를 유지하면 또 소환하겠다고 하니, 곧 삼백만 원이 추가될 예정이다. 촛불재판중인 1,184명에게 부과된 벌금이 15억여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헌재의 야간옥외집회결정을 목 놓아 기다린 사람들이 아주 많겠다.

그래서 이번 결정의 혜택이 나에게 돌아올 것인지 궁금한 사람도 많을진대, 아쉽구나. 결정이 있은 날 조은석 대검찰청 대변인은 "헌재의 결정이 현 조항의 적용 중지가 아닌 만큼 검찰은 원칙적으로 현행 규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덕분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인 ‘헌법불합치’가 상당히 정치적인 타협의 산물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위헌의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헌법불합치’라니. 위헌의 취지인줄 알면서도 ‘적용중지가 아닌 원칙적 사건처리’라니. 국민가지고 노는 건 헌재나 법원이나 검찰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똑똑한 놈들 말장난에 놀아나는 국민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왈. 그리고 예수님도 왈.

디 크 : 우리가 우선해야할 일은 모든 법률가를 죽이는 일이오.
케이드: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이오. 죄없는 양가죽을 만들어 그 위에 무엇을 휘 갈겨 놓지 않소, 그리곤 그 휘갈긴 것이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요? (셰익스피어 『헨리 6세』제2부 4막 2장)

저주받으리라, 법률가여. 너희는 지식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막았다 - 예수(누가복음 11장 52절)


이글의 요지가 법률가들 욕하는데 있지 않으니, 일단 여기까지. 그러나 사족을 덧붙이자면 격동의 한국사회 사건마다 법률가들의 독사 혀 같은 법 논리에 경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에 X파일로 드러난 삼성과 떡값 검사 사건 때, 검찰은 이렇게 말했다. 불법 증거물에 의존한 수사는 불법이라는 '독수독과' 논리에 의해 이건희도 검찰도 조사할 수 없다고. 그때도 생각했다. 똑똑한 인간들이 가진 논리는 참으로 무궁무진하구나.

다시 어쨌든.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아쉽기 그지없다. 촛불재판 피해자들의 법적용도 문제겠지만, 야간옥외집회규정이 헌법불합치 결정이 된다고 한들, 이미 규제조항 투성이인 ‘위헌’집시법으로 인해 빛이 드러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 도심지의 집회는 무조건 불허되고 있다. 교통혼잡, 불법집회전력, 폭력시위우려 등 자의적이기 그지없는 이유에 의해서다. 교통혼잡이라는 하위의 개념이 헌법에 보장된 허가되어서는 안되는 헌법적 권리를 규제하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예단하여 집회를 불허하는 지금의 집시법으로는 야간집회가 신고사항이 된들, 주간집회와 마찬가지로 경찰이 허가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결정은 과정을 되짚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 과반수인 5명의 재판관들이 이 조항이 위헌임을 명백히 했다. “집회에 대한 허가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21조 제2항의 취지는 집회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허가뿐만 아니라 집회의 시간.장소를 기준으로 한 허가도 금지된다는 의미”이며 “집시법 제10조는 야간옥외집회에 대한 허가를 규정한 것이므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재판관들의 의견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국회와 법원과 검찰이 받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회는 집회 시위의 권리를 침해하는 집시법에 대한 전면 개정에 나서야 하고, 법원은 해당 재판들을 정지해야하며, 검찰은 관련자들의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법률이 바뀐 이후, 해당자들은 재심절차를 밟게 될 것이고, 이러한 것이 바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는 결론을 낳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헌재결정을 유의미한 사회적 결론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무엇인지 전 사회에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회의 사정은 암담할 뿐이다. 규제조항을 삭제할 것은 염두에도 없고, 심지어 상식을 초월하는 법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대부분의 법률은 위헌조항 투성이다. 복면 소지를 금지한다는 비상식적 조항은 그렇다 치더라도, 집시법의 벌금을 현실화한다는 명목으로 단순참가자와 집회 주최자에게 부과하는 벌금액수를 10배 상향해 두었다. 이렇다면 불법집회인줄 모르고 참석한 누군가는 100만 원의 벌금을, 집회를 주최한 누군가는 1000만 원의 벌금을 집회 한 번에 감당해야 한다. 이런 규정을 어찌 헌법 21조에 정면 배치하는 조항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나. 결국 한나라당의 법률은 개정되자마자 헌법재판소에 그 명운을 다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야간집회의 시간을 규정하는 조항을 개정안에 넣겠다고 하고 있다. 이 나라의 상식은 분명 말도 안되는 곳에서 줄달음질 치고 있다. 헌법정신이라... 답답할 노릇이다.

환영하나, 씁쓸하다는 말밖에 내밀수가 없다. 온 나라를 휘감는 불의한 기운은 국회나 법원, 검찰, 경찰 어디에서도 희망적이지 않다. 집시법 위반은 살인, 강도, 강간보다 더한 강력범죄가 되어 경찰들의 곤봉아래 묻지마 연행, 묻지마 구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간집회위헌결정이 내려진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오늘, 지난 용산참사 전국순회투쟁 건으로 수원지역의 활동가가 야간불법집회의 혐의로 소환조사를 받으러 경찰에 출두했다. 그는 지난 7월의 서울촛불집회 건으로 벌금 삼십오만 원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배되어 있다. 헌재의 결정이 현실에서 하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우리 모두는 울화에 젖어 있을 뿐이다.

잘살아보겠다는 열망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국회에 대거 입성시킨 국민들이다. 거꾸로 틀어진 민주주의 시계를 되돌릴 힘도 그들에게 있다. 거리의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오늘이, 소수의 부자들만을 잘살게 하는 오늘이, 교통불편 때문에 집회시위의 자유쯤 나와 해당 없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이, 그대들은 정말 마땅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헌재의 결정을 가슴 활짝 펴고 기뻐할 수가 없다. 다만 환영하나 씁쓸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덧붙이는 말

박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