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박준형 씨의 '사회운동, 노무현의 그림자에 안녕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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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씨가 참세상에 노무현 관련된 글을 쓰셨군요. 제목이 꼭 쉐도우 박싱을 하고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서로가 동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현재 진보진영이 노무현씨의 추모 행렬에 무비판적으로 동참하거나 심지어 영웅으로 만드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하는 것은 저도 누차 이야기한 부분이니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이렇게 어떤 지점에서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박준형 씨의 글에 전체적으로 별로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 글의 결론이 결국 '하던 거 계속 하자' 이상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무현의 '유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 해온 이유는, 유령이란 본디 그것을 단순한 환상으로 치부하면서 쫓아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우리의 등 뒤에 바짝 달라붙는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령과의 경쟁은 사실 이길 수 있는 경쟁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애도를 하는 것이 유령을 달래는 길이고, 유령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애도를 할 것인가를 물어야지 애도 자체를 부인하게 되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안타깝게도 이 글 결론 부분에서 박준형씨가 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그러한 '푸닥거리'라고 볼 수 있지요. '유령아 물렀거라~ ! 훠이!' 전형적인 구맑스주의자들의 태도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다고 해서 노무현 유령이 물러날 리가 없습니다. '하던 거 계속하자.'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정세적으로보면 노무현의 죽음은 한국 정치사에서 메가톤급 핵폭탄이 터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던 거 계속하자는 말은 너무 안이한 말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장례식을 보면서 어릴적에 박정희 장례식을 보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온국민이 울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노무현 장례식 보면서 저는 '지금까지 박정희의 유령이 차지했던 그 자리를 지금 노무현 유령이 들어가 앉아 있구나, 노무현이 박정희를 대체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박정희 유령이 얼마나 오래동안 집요하게 우리를 사로잡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라면, 노무현 유령을 우리가 그렇게 쉽게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데올로기 10년 고민하고서 그것도 이해못한다면 알튀세르가 기가 찰 노릇이지요.

물론 노무현 유령 앞에서 통곡하는 대중들--그런데 사실 정도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대다수의 민중운동진영 사람들도 여기 속하고, 심지어 노무현에 대해 박준형씨 만큼이나 비판적인 저 또한 '차가운 슬픔'을 느꼈지요--과 함께 정신 잃고 통곡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 속에서 대중들과 함께 그 유령에 대해 '다른' 말을 할수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변화의 미분점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으면 왜 사람들이 초상집에 모여앉아 떠들기 시작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몇몇 활동가들하고만 담 밖에서 잘난척하면서 운동할 거 아니라면 말이지요.

민주주의라는 말은 다시 한 번 각 세력들의 각축장이 될 것입니다. 노무현 탄핵 때 '민중탄핵' 주장하면서 뻘타 날리던 사람들처럼 민중운동진영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할 일이 아니라, 어떻게 노무현 유령을 그 내부로부터 싸워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진보양당처럼 실용적으로 움직이자는 말이 아니예요. 그건 저도 이미 비판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화두에 적어도 어떤 인연의 끈이 닿아있는 원혼을 달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대중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원한의 정치'는 그렇게 해서 감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한의 정치'가 그 원인만 알게 되면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가 태양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이성적으로 인식하기만 하면 더 이상 태양이 200피트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하고 다를 바가 없어요.

노동조합은 사회운동적이 되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민주주의 운동이 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현재의 정세와 세력관계를 고려할 때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민주주의 운동을 할 것인가? 어떤 민주적 제도들을 강제할 것인가? 어떤 권리들을 강제할 것인가? 그 보편주의 속에서 대중들의 슬픔을 녹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노무현이라는 유령을 어떻게 애도(계승-비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대중들과 함께 던져야 합니다.

  • 겸손

    글이 너무나 고매해서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서,
    꼭 그래서 댓글을 안 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 박준형

    제가 말하려는 쟁점과 다른 것(어떤 대상?)을 비판하고 계신 것같아서, 혹은 제가 말하지 않은 것을 분석하고 비판하시는 것같아서 반박이라긴 그렇고, 글을 남길까하다가 바빠서 늦게 메모남깁니다.

    기본적으로 제 글은 노무현 추모 동참, 혹은 추모 분위기 활용론이라는 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정세적"입니다. 이런 노동자운동 내의 기회주의가 딘지 "추모"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고 해서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 "애도"일까요? 철학적 개념을 현실에 가져올 때는 주의해야합니다. 비슷하다고 갖다붙일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노무현과 그가 상징하는 한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애도"는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추모 분위기 편승(민주노총이 추모 성명서 내고, 집회 자제하고 노무현 추모 집회에 참석해서 깃발 올리는 식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를 제대로 평가하는 게 그것에 가깝겠죠. (그런 점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이 인상적입니다.)

    노무현을 상대화하고 다른 쟁점들을 부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민주주의의 문제와 분리되어있다거나 혹은 하던것 계속하자는 식에 불과한 것(따라서 기존의 실천과 다른 효과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깔려있는)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6월의 정세에서 이명박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노동자들도 더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두시위도 결합하고 말입니다. 다만, 그 운동의 외침이 "노무현 추모" 혹은 "노무현을 죽인 이명박 나쁜 놈"이 아니라, 자신의 요구여야한다는 것이죠. 사회운동이 혹은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이 노무현 유령의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애도는 아니겠죠.

    언급했던 것처럼, 대중의 불만이 더 커지고, 동요하는 상황에서 투쟁의 이유-정치적 쟁점이 경합하게 될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신분석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철학도 아니고) 정치의 영역입니다.

    현실적으로, 6월 투쟁에서 노무현을 계속 불러내고 미디어법 등 노무현의 유산과 무관한 쟁점에 대한 장내외 쟁점화에 몰두할 민주당과, 용산철거민-쌍용차-박종태-최임-비정규법 등의 쟁점을 제기할 노동자운동의 쟁점이 경합하게 될 것입니다.(민주당은 심지어 노무현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 악법에 수동적 반대이거나 정치적 거래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이 투쟁의 의미가 무엇으로 결정될 것인가는 향후 예상되는 이명박의 조기 레임덕 속에서 어떤 방향의 정치적 성과를 남길 것인가와도 연결될 것입니다. (6월국회와 6월 투쟁-10월 노동계투쟁과 재보선- 정기국회-노무현사망1주기-지자체선거 등으로 연결되는 정치일정 전체가 엮인 문제입니다.)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자기요구도 그것을 담은 유인물같은 것도 없이 "차도로 진출해야한다, 광장을 잡아야한다"는 것을 전술기조로 해서 깃발들고 나가자는 행태(5.29에 결합해서 시청광장에 새벽까지 앉아있다가 전경에 밀려난 것과 같은)가 제가 비판적으로 개입하려는 이유입니다.

    정세에 대해서 정치철학적 혹은 정신분석학적 비판과 정치적 분석은 하나의 실체에 대해서이지만, 사실상 다른 대상을 다루는 작업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대상을 놓고 논쟁을 제기하시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 최원

    여기 참세상의 덧글은 너무 좁은 데다가 전체를 다 보여주지도 않기 때문에 읽기도 쓰기도 힘듭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 우선 (정신분석학은 논외로 하고) 정치철학과 정치적 분석의 대상이 다르다고 말씀하신 것을 설명하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우선 우리가 말하는 '정치철학'이 정치와 대립하는 '정치적인 것들'(즉 제도적인 것들)의 이론화로서, 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치안'의 이론화로서의 '정치철학'이 아니라는 점은 전제를 하고 말입니다. 또 저는 정치를 철학적 사유로 환원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치적 '분석'은 그것이 사유와 이론을 요구하는 한에서 철학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는 점도 미리 알려드립니다.

    논쟁의 경제성을 위해서 혹시 오해하실 가능성을 미리 줄인다는 의미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어쨌든 정치와 정치철학의 대상이 다르다고 말씀하셨으니,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히 규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박준형 씨가 말씀하신 투쟁의 쟁점들은, 제가 알기로는 노무현 사망 이전에 이미 다 형성되어 있던 쟁점들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노무현 사망이라는 사건 이후 어떻게 변했길래, '하던 거 계속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시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셨으면 합니다.

    3. 미디어 악법만 저지하자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전면 비판을 해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 쟁점이 형성되는 것보다, 민주주의라는 기표를 중심에 세워내면서 미디어 악법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다른 쟁점들을 보다 커다란 틀 속에서, 노무현에 대한 애도의 대중적 이데올로기의 정세를 고려하여 제기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노무현에 대해서 단순한 반대를 하고, 대중들의 애도 바깥에 자신의 포지션을 잡기 보다는, 노무현을 다르게 애도하고, 비판할 뿐 아니라 그 실패한 어떤 꿈을 계승/확장하는 식으로 담론을 만들어냄으로써 대중들의 이데올로기 자체를 내적으로 전화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노무현 유령을 푸닥거리하고, 그 자리를 사회운동이 채워야 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봤을 때, 제가 하고 있는 것은 박준형 씨처럼 경합하는 쟁점들 사이의 투쟁을 어떤 방향에서 만들어나갈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노선 차이이지, 정치철학 대 정치의 대상 차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여기 너무 좁은데, 앞으로 답글은 박준형 씨의 블로그에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와 블로그 사이의 논쟁을 요전에 해봤는데, 같은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가 없더군요. 오히려 좋더라고요. 지금 저의 답글은 제 블로그다와 이곳에도 함께 올리지만 다음부터는 제 블로그에만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