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참세상 자료사진 |
“김경욱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중동점에서 일하던 조합원이 기절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 사람 안 된다. 그 사람에 대해서 직원들이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김경욱이 과장인데, 이 과장이라는 사람이 전보발령을 받아 왔는데 어찌된 판인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나 파견사원만 챙긴다는 거예요. 정규직보다 더 약자인 비정규직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이러니 정규직 사원들이 이러다가 큰 일 나는 것 아닌가, 잘못하면 정규직에게 돌아올 혜택이 비정규직이나 파견사원에게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합에 가입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김경욱이 조합에 가입한다니까, 놀라 자빠지려고 하는 거예요.”
중동점에서는 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점장은 김경욱 과장에게 물갈이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거였다. 중동점은 까르푸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처음 문을 연 매장이다. 경영진은 “우중충하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준비하였다. 김경욱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구조조정을 막아보려고 한 거였다.
과장이 나서서 조합에 가입을 해야 한다고 ‘설치고’ 돌아다니니 경영진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중간 관리자들은 승진승급에 누락될까 노심초사하며 몸을 사리며, 상사의 지시에 꼬박꼬박 따르는데, 김경욱은 ‘별난 인물’에 속했다.
간부파업이 끝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 부속합의서에 사용자 측의 요구안 중에 하나가 ‘김경욱은 위원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구를 넣자는 거였다고 하니, 김경욱의 활약상이 어떠했는지는 상상이 간다. 물론 이 황당한 경영진의 요구는 단체협약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 해 칠십일 간의 중동점 파업이 끝나고 치러진 위원장 보궐선거에서 김경욱은 ‘회사의 우려’처럼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 참세상 자료사진 |
2007년 홈에버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해고에 맞서 싸운 당당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과장 시절과 마찬가지로 김경욱은 위원장이 되어서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비정규직을 조합에 가입시키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2005년 단체협약 갱신을 할 때 노동조합은 1년 넘게 회사 측과 싸워야 했고, 결국은 비정규직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18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들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명시할 수 있었다. 까르푸 노동조합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이 늘어났고, 이 힘은 까르푸가 이랜드로 넘어가면서 예고되었던 대량 해고에 맞설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이랜드로 넘어가기 직전 정규직 조합원과 비정규직 조합원 수가 반반을 차지 할 수 있었다. 처음 간부파업을 할 때 다섯 손가락으로도 꼽지 못했던 조합의 힘이 어느새 조합원 천 명이 넘는 노동조합으로 발전하였다.
이 힘에 이랜드 그룹은 굴복하였다. 노동조합을 ‘사탄’으로 여긴 이랜드 그룹은 까르푸 인수로 유통업체의 공룡으로 도약하려했던 꿈을 버리고 홈플러스에 홈에버를 팔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거리에 쫓겨날 뻔했던 홈에버 비정규직들은 고용이 보장되어 2008년 11월 소중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참세상 자료사진 |
까르푸에서 이랜드로, 그리고 이제는 홈플러스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노동조합과 함께 자신의 일터를 지킬 수 있었다. 그것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름다운 사랑과 연대’의 힘으로. 그 뒷면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조합 간부들의 ‘아름다운 희생’이 있었지만.
이경옥은 이 시간의 중심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시간을 이경옥과 함께 한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선명히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계속)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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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엽 작가는 구술기록작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의 구술기록작업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될 일이 있는 분은 참세상이나 메일(odol@jinbo.net)로 연락을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