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학교, 교사가 쇠고기 등급 매겨지듯이 평가되는 세상이 온다
미친교육. 이보다 더 적절하게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을 표현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올해 상반기 중고등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외쳤다. “0교시반대, 야간자율학습반대,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이어 학부모들이 ‘415 학교자율화조치는 공교육파탄정책’이라고 규탄하면서 학교 앞 1인 시위, 교육청 앞 1인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교사들도 대규모 집회를 열어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을 규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교육’을 강행하고 있다. 오는 10월에 실시될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기초학력 진단평가가 그것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 시험을 보고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도 그랬고 우리의 아이들도 학교를 다니며(안가면 성인이 되어 노동시장에 편입될 때 불리하다) 시험을 본다. 그리고 그것은 해당 교과과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며 시험 결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목적이 시험이고 평가이다. 그런데 만일 그 시험이 다른 목적으로 진행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현재까지 발표된 내용에 의하면 초등 3학년은 교육부가 주관하는 국가수준 기초학력평가를 오는 10월 8일 실시할 예정이며(읽기, 쓰기, 기초수학),초등 6학년, 중등3학년, 고등1학년은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라는 이름으로 10월 14~15일에 걸쳐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 과목에 대해 시험을 본다고 한다. 또 시.도교육감협의회 주관으로 오는 10월과 12월에 중학교 전체학년에 대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들 평가가 ‘교육정보 공개법’과 만나 성적공개로 이어지면서 발생한다. 교육정보공개법 시행령 입법 예고안을 보면 교육부 주관 일제고사 중 성적공개를 학업성취도 평가(초6, 중3, 고1)로 하게 되어 있으며, 올해(2008년)부터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평가로 한다고 되어있다. 즉 일제고사로 실시한다는 것이다. 또 평가결과 공개는 학교별로 하고, 3등급(보통, 기초, 미달) 학생비율을 공개한다고 되어 있다. 공개 결과 시기는 2010년부터 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부터는 전년도 평가결과를 함께 공개하여 변화추이를 본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언론 등의 추적 조사를 통해 올해부터 성적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도 교육감이 주관하는 평가의 경우에는 더욱 상세한 성적이 공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성적이 공개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우선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과 창의성 발전을 가로 막게 될 것이다.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이나 문제풀이 교육에 매몰될 것이며, 다양한 생각이나 관점을 폭넓고 깊숙하게 공부하기보다는 남이 정해 놓은 정답을 찾는데 골몰하는 잔머리를 키우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이나 창의성, 잠재적 능력이 질식당하고 오로지 편협한 문제 풀이 능력만 길러질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인성과 공동체성을 파괴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성적 경쟁 위주의 교육은 학급 동료들을 서로 도와주고 협력해야할 존재가 아닌, 밟고 넘어서야할 경쟁의 상대로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오로지 자기의 성공만을 위해 앞만 보며 내달리는 이기적 인간만이 살아남는 교육이 될 것이다. 학교 성적 경쟁에 급급한 학교당국과 교사들은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학교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으로 적대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을 실패자로 내몰고 무능력한 인간으로 낙인찍는 교육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적에 의한 전국적인 서열이 정해지는 가운데 대다수의 학생들은 실패자의 경험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부모의 사교육 지원이 어려운 노동자, 서민 가정의 자녀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보편화될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무능력한 인간으로서의 열등감을 내면화시켜, 교육이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북돋아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짓밟고 억누르는 역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국 일제고사 실시와 성적 결과의 공개는 학교 간 서열을 가시화시켜 기존의 평준화 체제를 해체하고 교육의 상품화를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흐름을 보면, 현재 추진 중인 고교 300 정책과 국제중학교 설립 등이 교육기회의 차별화(교육 계급화)를 가중시키고, 형식적으로 유지되던 고교평준화가 해체되며, 소비자주권이란 미명하에 학교선택제가 확대되면서 자산계급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로 학교교육이 재편될 것이다.
또한 일제고사 성적 결과의 공개는 대입제도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현재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대입 3불 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인 고교 등급제는 사실상 무력화될 것이다. 결국 특수목적고나 이른바 좋은 동네의 학교 학생들이 입시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선점할 것이고 성적이 나쁜 학교 출신 학생들은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결국 전국 단위 일제고사와 교육정보 공개법에 의한 성적 결과의 공개는 기존의 입시경쟁교육을 더욱 확대 강화하고 교육 상품화의 기제로 작동하면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우리가 제 아무리 나서봐야 바뀌겠나... 내 아이에게 피해가 가면 어쩌나...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교육문제를 개별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것과 달리 이미 교육은 계급적인 문제가 되고 말았다. 교육이 돈벌이의 수단, 부의 대물림으로 활용되는 것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아직도 내 아이들만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입시지옥 속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이고,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시대의 노동자 민중인 부모들은 노동자 민중을 부정하는 교과과정을 배우는 아이들과 부딪혀야 할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일제고사를 거부하자! 청소년들은 이미 촛불에서 보여주었듯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이제 학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노동자 민중들이 나서야 한다. 학부모들만 나서서는 안 된다. 교사들도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일제고사의 가장 큰 피해자인 당사자들이 단결하고 연대하여야 한다. 일제고사의 가장 커다란 피해자는 누구보다도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이다. 따라서 일제고사 저지 투쟁에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나서자! 또한 이 투쟁에 동의하는 노동단체, 시민단체 등도 결합하여 그야말로 범국민적인 일제고사 반대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교육은 만인을 위한 것이며 보편적인 권리이다. 더 이상 부모의 지불능력에 따라 아이들의 성적과 진학할 수 있는 학교가 정해지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용납하지 말자! 더 이상 아이들을 입시경쟁의 지옥에서 신음하게 만들지 말자!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하나 되어 이명박 정권의 ‘미친교육’을 끝장내자!
일제고사 거부 공동행동 제안
1. 추석 이후 매주 금요일 저녁에 각 지역의 중심지에서 거리 선전과 일제거사 거부 국민 서명을 전개하자!
2. 일제고사 거부 1만인 학부모 선언 조직과 일제고사 거부 학교 앞 1인 시위를 대대적으로 전개하자!
3. 일제고사 거부 학부모 및 교육주체 결의대회를 개최하자!
4. 일제고사 당일 학생 체험 학습을 대대적으로 조직하자!
5. 일제고사 폐지부, 교육정보공개법 폐지 국민 청원 운동을 전개하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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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님은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집행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