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오면 습관적으로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부모와 함께 오피스텔에 기거하면서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 자사고나 외국어고에 진학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입시준비를 하는 가정도 주위에서 흔하게 목격된다. 영어교육 때문에 수백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유치원은 또 어떤가. 도대체 유치원에서 취업할 때까지 정상적인 교육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런 교육이 이제는 돈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가 도입·전면화 되면서 나타난 폐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양극화로 상징되는 빈부격차의 문제일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의 확산과 함께 빈곤의 대물림 현상이 한국 사회의 위기국면을 더욱 가속하고 정권의 정체성을 다시한번 확인케 하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돈 없으면 배우지 말라고
이 문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되어 교육 현장에서도 계급 문제로 환원돼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저소득층이 많아져 교육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이유로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시가 추진하는 강남구 수서동 공공임대아파트 건립을 재고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 발송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 사안에 대해 현 서울시 교육감이 사전에 인지를 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 지역의 기초생활수급 학생이 이미 29%를 넘어 다른 지역에 지어달라고 했다는 그의 변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인식과 판단이다.
교육을 자본의 잣대로 들이대 빈부를 분리시켜 교육정책을 펼치는 인식과 판단은 교육청의 수장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전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교육이 공적영역이라는 상식에 기초한다면 돈을 기준으로 지역과 학생을 가르는 짓은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작태에 불과하다.
교육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영역이 아니다. 자본의 원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되는 공적 영역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아무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한국 사회라 해도 교육의 중요한 주체인 학생을 돈벌이의 주체로 전락시켰다는 것은 한국 교육의 전망을 비극적이고 우울하게 만든다. 대학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초중고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아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논란이 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에게는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천박함으로 인하여 어려운 가정경제의 절박함속에서도 아이들 교육만큼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머리띠를 두르고 허리띠를 움켜쥐며 과감하게(?) 투자하는 이들에게 경쟁교육은 죽음과 다름없다. 교육에서의 경쟁은 하루하루 절박하게 생을 연명하는 이들에게 돈이 없으면 배우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인 것이다.
한국 사회 대부분 학부모들의 가장 커다란 교육적 염원은 사교육비 절감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학력을 신장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사교육비 절감을 가져올 수 있는가. 초등학생들에게도 일제고사를 실시하고 점수를 공개한다는 발상, 0교시와 심야학습 그리고 자사고 확충 등은 그 자체가 사교육비 상승을 통한 학력신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도 극소수의 학생들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에도 영어전용교실을 구축하고 영어전담교사를 배치해서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이 공교육 강화를 통한 사교육비 절감과는 하등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매우 척박하다.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며 도입한 수준별 수업 분반은 아파트 평수를 기준으로 나뉜 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외국어고와 자사고를 늘리면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학부모들이 많다. 과외 한번 안 받고 집에서 복습과 예습을 꾸준히 한 결과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를 일반적이고 평범하게 들으면서 자신의 자녀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는 순진한 학부모들도 많다. 영어몰입교육과 빈번히 치르는 모의고사를 통해 자녀의 영어실력과 학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믿으며 동조하는 순진한 학부모들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명박 정부가 포기한 영어 몰입교육을 서울시내 공립 13개, 사립 19개 학교에서 시행 중이라는 사실이 서울교육청이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이건 슬프게도 탐욕과 기회주의를 신봉하는 사이비 지식인의 양심과 도덕의 문제이다. 이러한 몰상식을 식별하지 못하는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이념을 찾아야 하고 그와 함께 이 빌어먹을 시대가 양심과 도덕을 찾아야 한다.
편법과 탈법을 통해 부를 세습하고 자본을 축적한 부유층들에게 사교육비 상승은 학력신장과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만연시키는 절호의 기회이며, 부유층들로 인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빈곤을 대물림하는 빈곤층들에게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의 회귀에 불과한 것이다. 헌법에 의해 명시된 기회의 균등이 민주공화국임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대한민국에서는 자본에 의해서 원천적으로 봉쇄 당한 것이다.
먹기 싫으면 수입 쇠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명박 정부의 논리와 돈이 없으면 학교 다니지 말라는 현 교육정책은 동일한 인식의 지반위에서 동일한 계급지형을 확대 재생산하는 의도에 불과하다. 결국, 현 교육정책은 고소영-강부자 교육철학으로 교육차별을 심화시킨 주범이다.
황홀한 꿈을 꾸자
서울시 교육청이 여러 분야에서 기록한 것을 보면 거의 신기록 수준이다. 유치원에 대한 지원 전국 최하위, 방과 후 학교 학생 참여 전국 최하위, 직영급식 전국 최하위, 초중고생 학업중단 비율 전국 최하위, 학부모 부담 수업료 인상률 전국 최고 등등. 서울시 교육청의 부패지수가 전국에서 최하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는 “서울시 교육청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청렴도도 낮다”고 정말 치졸하고 명박스러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이들의 희망과 꿈을 빼앗아 버린 신자유주의적 교육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1%도 채 안 되는 부유층들이 농락하고 있는 교육은 문제 삼지 않고, 열심히 노력만 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허상만 자녀들에게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범시민후보로 나선 후보가 교육감에 당선 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교육 정책이 현실화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1년 10개월의 짧은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과 꿈이라는 낯선 색깔의 단층이 깔린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변혁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낯설면서도 황홀한 일인가.
폭염과 집중호우 그리고 촛불집회로 인한 뜨거운 열기는 730 교육감 선거로 2008년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촛불국면과 맞물리면서 선거 결과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인식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이번 교육감 선거를 통해서 우리의 불가능을 가능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