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집회를 통해 촛불 운동의 승리를 선언했으니 이제는 좀 여유 있게 가도 된다는 뜻이었을까? 하지만 정작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시청 앞 집회는 폭력적으로 원천봉쇄되고 있으며, 대책회의 실무진들은 수배자가 되어 조계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집회 전단을 붙이던 시민이 연행되어 구속영장 청구를 받고, 조중동 불매운동에 동참한 네티즌들은 출국금지를 당하는 황당한 상황이다. 때마침 통합민주당은 국회 등원을 선언했다. 이런 국면을 지칭할 때에는 "승리했다"라는 말보다는 "역공당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이 과연 촛불집회 횟수를 줄이고 운동방식을 전환할 것을 고민할 때일까.
모든 개혁언론들과 대책회의조차도 "촛불분열"로 비추어질까 우려해서 부각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 촛불은 심각하게 "논쟁 중"이다. 진행 중인 논쟁을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말할 때, 오히려 진정한 쟁점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입장으로 결정되기 쉽다. 촛불집회의 방향에 대한 대중적인 토론이 지난 6월10일 대회 이후 이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훨씬 더 심각한 방향전환이 이루어지는 이 순간에 논의는 오히려 대중적인 공간이 아니라 대책회의 운영위에서만 논의되고 있다. "대표성"도 불분명한 공간에서 말이다.
▲ 7월 5일 촛불 집회/ 참세상 자료사진 |
시민들의 지지
모 인터넷 신문에 실린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최근 인터뷰를 보자. “촛불집회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집회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도 많은 만큼, 운동의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 개인의 입장이라기보다는 대책회의 안에서 진행된 논의의 결론을 소개하는 발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의 상황을 보자. 다른 운동방식이 나오기도 전에 촛불집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집회를 지속하려는 조직된 노력이 사라지는 사이에, 자발적으로 모이는 소수의 시민들은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청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시민들의 고립이 그 "다양한 운동방식"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촛불 운동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그리고 이 운동이 완강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생각할 때다. 그것은 "촛불집회"라는 집회의 독특한 양식 --아마도 "평화로울" 것이라고 기대되는--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요구 사항에 시민들이 공감했기 때문임을 기억하자. 오히려 집회의 양식은 "촛불"이라는 상징만 일관되게 유지되었을 뿐, 시기에 따라 꾸준하게 변화해왔다.
특히 그 요구라는 것은 비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되었지만, 공기업, 의료 등 공공서비스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정권의 교육정책 반대 등으로 확장되어 온 것이 이제까지 과정이다. 이 촛불 공간 속에서 시민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자신의 언어로 발견하고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집회는 매순간 문화제에서 침묵시위로, 가두행진으로, 전경차 끌어내기로, 그 양식의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요구를 꾸준히 확대해왔다. 대책회의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정권퇴진"을 외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책회의 내 일부단체들이 촛불집회 축소의 대안으로 제시한 쇠고기 재협상을 의제로 한 국민투표라든가,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요구가 이미 시민들의 목소리로 분출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신자유주의 반대로 촛불을 확장해가는 시민들을 오히려 뒤에서 발목을 잡고 후진하려는 상황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시민들의 대표를 자임할 근거가 있을지, 아니면 대책회의 기존 집행위가 구속, 수배된 이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이들이 적어도 지금까지 진행된 촛불집회에 어떤 발언권을 요구할 수 있는지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 요구를 더 확대하고, 밀고갈 때
여전히 문제는 시민들이 외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더 확장하고 구체화하고, 일관되게 전선으로 모아내는 일이다. 공기업, 의료 등 공공서비스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정권의 교육정책 반대와 같은 것들이 단지 이명박 대통령이 "미친" 놈이기 때문에 하는 정책이 아니라, 모두 하나의 일관성을 가진 사회, 경제 정책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싸워가도록 투쟁을 지속하는 일이다. 비록 대책회의는 "국민승리"를 선언했지만 정작 승리한 항목은 어느 것도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이름만 "선진화"라고 바꾸어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7월2일 발표한 "경제안정 종합대책"(2008년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에서는 여전히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공기업 선진화 방안" 항목 안에서 제시하고 있다. 정책발표 시기만 두어달 늦추어서, (아마도 정세가 반전되리라 기대되는) 8~9월에 할 뿐이다. 대운하만 하더라도, 촛불집회가 사그라든다고 판단할 때 언제든지 다른 이름으로 부활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대운하와 관련해서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그룹의 검토가 있었으면 좋겠고, 이것을 국민들이 한 번 더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어떻겠냐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다시 추진할 의사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운동의 방식을 다양하게 확장하는 것도 의미 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핑계로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정권반대 투쟁을 고립시키는 것은 정권이 원하는 것일 뿐이다. 이미 청와대는 7월5일 대책회의의 청와대 면담과 관련하여 "촛불집회 중단"이 조건이었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그것은 현재 국면을 정리하려면 우선 시청광장의 촛불집회라는 상징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히려 더 완강하고 끈질긴 싸움과 요구의 확장이다.
노동운동의 계속된 무능
한편,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대응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노조운동은 이 국면에서 거의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서 "거저먹은" 셈이다. 특히 공공부문이 그런데, 촛불집회의 과정에서 여론악화를 우려한 정부가 가스, 전기 등 기간산업과 건강보험의 민영화 포기 등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공기업 민영화가 아니라 "선진화"라든가 건강보험 민영화 포기라는 것은 영리병원 허용과 같은 의료민영화 정책이 계속 추진되는 한 말장난일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애초에 이명박 정권의 주요관료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올해 안에 끝내는" 상황은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노동운동은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고유한 요구를 제대로 촛불집회에 결합시켜오지 못했다. 예컨대, 의료, 교육, 공기업사유화 등 다양한 곳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가 결합하는 와중에도 왜 신자유주의 문제의 결정판인 "비정규직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도 못했을까? 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같은 일부 단체들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고, 이주노조 캠페인도 벌어졌으며 이랜드, 뉴코아,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촛불집회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결합하긴 했다. 그러나 너무 미약한 시도였다. 정작 광우병 대책위 안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라면 가장 "정통할" 민주노총이 제기하지 않는 마당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이라고 할 최저임금 현실화와 같은 쟁점을 광장에서 결합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에 노조가 관련된 주요한 과제 중 하나(공공부문 사유화 저지)에 대해서는 단지 무임승차했으며, 또 다른 하나(비정규직 철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한 셈이다. 비록 운수노조를 중심으로 한 미국산 쇠고기 반출 저지 투쟁, 총파업이 있기는 했지만 노동자들의 요구가 시민들의 다른 요구와 다르지 않음을 시민들에게 말하고 함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 거대한 싸움이 진행된 과정에서도 노동운동은 여전히 광장의 시민들에게는 "손님"에 불과한 상황이다.
촛불의 양면성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더 전진할까
굳이 노동운동 이야기를 꺼낸 것은, 촛불 행진이 어디로 더 확장되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촛불집회는 여전히 양면적 혹은 복합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대중이 모인 것을 기억한다. 그 기억 속에서 미선이, 효순이 살인미군 규탄 촛불도 있지만 노무현 탄핵반대 촛불, 월드컵의 붉은 악마라든가, 군 가산점 논쟁, 황우석 논쟁, 영화 디 워 논쟁과 같은 것도 있다. 정치적 불만이 표현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인터넷과 미디어 문화 속에서 형성되고 강화된 맹목(그것이 불과 직전에는 민족주의적이거나 발전주의 같은 것이기도 했다)이 확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2008년 촛불은 어딘가에서 돌출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맥락에서 형성되어온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 유례없이 완강한 촛불집회도 여전히 복합적인 성격을 그 안에 갖고 있다.
이 속에 있는 어떤 경향은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 반대를 위한 운동으로, 일상의 민주화와 문화혁명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또 어떤 경향은 운동의 부정적 수렴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도록 한다. 따라서 촛불집회의 요구를 쇠고기 수입문제에 가두지 말고 더 열어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촛불 안에서도 사회운동들의 역할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주체가 이 운동 속에서 만나고 결합하면서 하나의 방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도 시민이라는 것을 촛불 광장에서 확인하는 일도 그래서 중요하다. 촛불집회에서 "시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노동자=시민", "이주노동자=시민", "여성=시민"들이기도 하다. 그것을 광장에서 "국민"으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대화하고 논쟁하면서 주체와 쟁점을 열어가야 한다. (그럴 때, 사회운동도 광장의 시민들로부터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운동을 결산할 때 인터넷 카페나 다음 '아고라'만은 아닌 다른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운동의 조직화"를 사고할 수 있다.)
대책회의가 말한 것처럼 촛불집회가 가야 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이 운동이 퇴행하지 않고 더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촛불집회와 행진에 참여했던 모든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야할 시점인 것이다. 더구나 대책회의를 통해 시민들의 대표를 자임하고 있는 사회운동들이라면 이 논의에 참가하는 책임은 더 엄중하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그 대표성을 비록 아무도 인정해준 적은 없지만 그 현실적 영향력이란 것이 어쨌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렇다.)
이미 해왔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물가폭등, 민생파탄의 책임을 촛불집회에 물으면서 정세를 역전시키려할 것이다. 정권도 이제 쇠고기 협상 문제없었다는 말만 되뇌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쟁점이 이미 그것만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록 전술적으로만 생각하더라도, 이때 필요한 일은 광장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광장을 지키고 넓혀가는 것이다. 정세의 쟁점은 정권 스스로에 의해서도 이미 광우병 쇠고기 수입만이 문제가 아닌 것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고, 시민들이 먼저 모든 방면에서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쟁점들에 대해서 시민들과 사회운동이, 다시 광장에서 촛불의 방향을 토론할 때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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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님은 공공노조 정책기획국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