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민선’하면 사람들은 ‘청산가리’와 ‘미국산 쇠고기’를 떠올린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바엔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다고 했던 그가 라스베이거스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쇠고기 햄버거를 먹는 TV 장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월에 촬영했으니 광우병 논란 이전이다. 이 사건 전에 영화 꾼들은 김민선 하면 ‘별빛속으로’ 같은 작품성 높은 영화나 여성영화제를 돕기 위해 돈을 안 받고 홍보 영상을 찍는 꽤 생각 있는 배우를 떠올린다.
나는 배우 김민선 하면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떠올린다. 부천시는 문화도시를 표방하며 이 영화제에 전력했다. 2004년 여름 민주당 출신 원혜영 시장에서 한나라당 홍건표 시장으로 바뀐 뒤 처음 치르는 8회 영화제에서 이 영화제를 직접 키워온 김홍준 집행위원장은 큰 실수를 한다. 김 집행위원장은 개막식 때 바뀐 홍건표 시장의 이름을 몰라 더듬거렸다. 영화제 개막식에 가면 으레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한데, 주최 측 최고 정치인인 시장의 이름을 버벅 댔으니 뻔했다. 그 해 연말 새 부천시장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해촉 했다. 정치 논리로 문화를 재단하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었다.
해촉 직후 2004년 12월 30일 오후 4시. 부천시청 앞에 한 무리의 영화인이 모였다. 배우 정진영 등이 모여 집행위원장 해촉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찬욱 감독은 2005년 7월18일 방영된 KBS 생방송 시사투나잇에 나와 “문화예술을 보는 한국 공무원들의 마음이 겨우 이 정도인가를 보며 몹시 분개했다”고 말했다.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이영애 정우성 조승우 한가인 권상우 문근영 손예진 강동원 류승범 신하균 유지태 강혜정 김혜수 공형진 문소리 배두나도 그 뜻에 동참했다.
부천시는 2005년 여름 집행위원장 없이 9회 영화제를 강행했다. 반발했던 영화인들은 ‘리얼판타스틱영화제’를 똑같은 날짜에 서울에서 열었다. 배우들은 서울로 다 빠진 가운데 2005년 7월 14일 부천에서 개막된 9회 영화제에 참석한 여배우는 단 둘. 페스티벌 레이디로 뽑힌 장신영과 개막식 사회를 맡은 김민선이 그 둘이다. 김민선은 2년 뒤, 바로 지난해 11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히로인으로 뽑혔다. 자신의 출연작 ‘별빛속으로’는 개막작이 됐다.
집행위원장 해촉과 영화인의 반발이 있던 2005년 1월은 김민선에게 악몽이었다. 한국 최고의 광고기획사 제일기획(물론 삼성의 방계회사)이 연예인 99명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해 관리하다가 들켰다. 이른바 연예인 X파일 사건. 대기업이 영리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 정보까지 은밀히 관리해온 치부가 드러났다. 당사자인 김민선은 회견장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2005년 1월 22일자 ‘기자메모’에서 한국 재벌의 파렴치한 뒷모습에 분개하면서도 국내 연예산업화로 위상이 크게 높아진 연예인들도 새길 게 있다고 했다. 이럴 때마다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한다. 당시 한국일보는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라는 칼럼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사건의 본질을 비판했다. 나는 이 칼럼에 동의한다. 극소수를 빼면 자기 돈벌이에 혈안인 연예인이 어떻게 공인인가.
공인 축에 속한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시절) 대통령이 서울시를 봉헌하니, 경찰청장이 복음화에 앞장서고, 소설가가 정치적 독설이나 내뱉는다. 주류정당의 정치인들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오늘 조선일보, 내일은 한겨레신문, 그다음엔 중앙일보로 이 신문 저 신문 기웃거리면서 칼럼이나 써대는 교수나 문학가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소설가 신경숙이 올 1월1일 동아일보에 쓴 <첫새벽, 소망의 등불을 내걸고>와 엊그제(7월3일) 한겨레신문에 쓴 <그들이 포착한 ‘깊은 우리 자화상’>에서 어떤 감동도 받지 못했다. 동아일보에선 ‘신경숙의 어머니가 연말이면 아이들을 목욕시켰구나’하고 유명인에 대한 관음증을 채웠다. 신경숙은 한겨레에선 매그넘의 한국사진전과 로버트 카파를 소개했지만 이미 언론보도로 다 아는 사실을 갖고 말장난만 늘어놨다. 한 젊은 소설가는 2003년 10월 13일 조선일보에 쓴 원고지 9장짜리 칼럼(우리는 더 이상 놀라고 싶지 않다) 하나에 자기 소설 이름 ‘제이크’를 5번이나 되풀이하면서 책 장사를 해댔다.
엊그제(7월3일) 조선일보 26면에 실린 장하준 교수의 칼럼과 2005년 장 교수가 한겨레신문 고정칼럼 <세상읽기>에 실었던 칼럼은 다르다. 조선일보에 쓴 글은 한겨레신문 때보다 칼끝이 한층 무디어졌다. 허명을 판 지식인의 서글픈 뒷모습이 비친다.
다시 김민선에게 돌아가자. 단 돈 1만 5천원이면 사는 번역서 ‘패스트푸드의 제국’(에릭 슐로서)을 읽어 보시라. 광우병 소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1월에 먹은 그 햄버거 패트를 만들기 위해 비숙련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저임금으로 혹사당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