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이 넘는 촛불집회는 정부의 탄압으로 이제 새로운 국면에 놓여 있다. 지난 6월 29일 이후 정부는 시민들이 도로에 나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며 시민들을 발목을 잡아두었다. 시청광장은 대책위가 방송차를 경찰에 뺏긴 채 원천봉쇄되었고, 경찰은 인도에서 항의하는 시민조차 목을 조이며 험악하게 연행해갔다. 법의 엄정한 실현을 하겠다며 내린 법무부의 방침으로 이제 시청광장은 더 이상 시민들이 찾을 수 없을 듯해 보였다. 조중동 불매운동에 대한 네티즌 탄압방침, 언론의 폭력시위 운운, 백색테러까지 촛불집회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을 해왔다.
이때 사제단이 시국 미사를 하며 종교의 권위를 빌려 시청광장을 되찾았다. 많은 사람이 엄숙한 분위기속에 정부를 비판하는 사제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투쟁의 정당성’에 다시 한번 감격했다. 그러나 다음 이튿날 동안 빗속에 벌어진 시국 미사 후 벌어진 침묵행진과 10시 해산 종용은 그동안 분출해왔던 시민들의 자발성을 억누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했다.
자발성을 억누르는 순간, 지금까지 긴 시간 싸울 수 있었던 동력원을 차단하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3일과 4일 개신교 집회와 불교 집회는 시민들의 최소한의 행동을 억제하지는 않았다. 대책위의 권위, 야당의 권위 등을 거부하며 긴 시간 싸워왔던 시민들은 종교의 엄숙함과 성직자의 온화함에 멈춰 서서 종교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촛불 싸움에 필요한 건 리더가 아니라 웹 2.0의 끈기와 행동!
촛불싸움이 오랜 기간 지속한 이유에 대한 분석을 보면 1인 미디어를 비롯한 미디어의 발달, 인터넷 네트워킹을 활용하는 네티즌의 대거 결합을 거론한다. 이들의 특성이 기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투쟁을 기획하고 지속적으로 참석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과거 87년이나 91년에 있었던 정권퇴진운동 등의 거대한 싸움에서 야당까지 포함하는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투쟁의 향방을 이끌어갔던 것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이번 싸움에서 시민들은 누구의 권위와 지도도 용인하지 않았기에 촛불싸움은 ‘무정형’이었으며 ‘정부가 어디를 탄압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사이 긴 시간을 이어왔다. 대책위가 인제 그만 해산하자는 ‘안’을 내놓아도 쉽게 그 안과 행동을 철회시켜왔다.
그랬던 시민들이 지금은 성직자들의 투쟁지침을 따르는 온순한 ‘양’이 되었고 ‘운동의 역동성과 자발성’이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운동의 역동성과 자발성이 사라지면 촛불집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싸움을 이끌어가기 어렵게 된다.
시민들은 긴 시간 싸움으로 ‘많이 지쳐’ 있으며, 정부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기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허무한’ 상태에 있다. 그래서 성직자들의 촛불 합세가 반갑고 기대고 싶기도 하다. 그런 점이 종교의 권위가 쉽게 용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교의 권위가 촛불 집회의 리더쉽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성직자’를 중심으로 ‘대책위를 대체하는 지도부’가 형성되면 이제 싸움의 국면은 과거의 무정형과 자발성을 근간으로 했던 양상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리더쉽은 정부와의 협상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위임된 권력’의 부당함에 저항하며 쌓아왔던 ‘직접민주주의’의 경험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다. 더구나 아직까지 정부는 더 이상 무엇인가를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있다. 쇠고기 재협상만이 아니라 수돗물, 의료 민영화, 대운하 개발까지 정부의 의지대로 풀어가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민주당은 다음 주에 국회에 등원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상태에서 리더쉽은 의회정치의 외곽부대로서의 역할밖에 못 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건 자발적 시민들의 강렬한 투쟁과 끈기이며 그래서 정부가 종잡을 수 없어 고민하게 하는 거다. 종교의 권위는 상황을 정리하고 수습하는 리더쉽이 되기 쉬우며 그러한 리더쉽으로는 싸움을 이끌어나가기 어렵지 않겠는가.
시민의 권위를 세워야 할 때
리더쉽은 시민들 내부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수많은 싸움에서 정부의 탄압에 분노했던 시민들이 자신의 권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싸움의 정당성과 역사성이 지속할 수 있다. 집단지성의 힘을 다시 보여줘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촛불집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성직자들의 싸움과는 별도로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 성직자들이 종교의 권위를 시청광장을 이어가도록 하고, 이제 그동안 싸워왔던 시민들은 청계광장에서 새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처음 5월 2일 촛불집회처럼 다양한 의견과 자유발언이 쏟아내며 정치에 참여했던 것처럼 말이다. 종교의 권위는 완충지대와 대중적 명분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그동안 시민들이 해왔던 역할은 끈기를 갖고 이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음(Daum)의 네티즌을 공격하는 방송통신심의원회의 결정은 네티즌의 자발성을 억누르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네티즌들은 탄압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운 정부방침에 어이가 없어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며 주춤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와 같은 논쟁과 창의적 싸움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주춤거리다간 싸움은 정리될 수 있다는 점에 긴장해야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주춤거리지 말고 거리로 나오자. 정부의 전방위적 공격에 맞선 후방의 지원이 생기고 있지 않은가.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엠네스티에서 조사관을 파견했을 뿐 아니라 많은 세계시민사회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여기서 멈추지 말자. 종교계, 국제사회의 지원 등 정부의 전방위적 공격을 무력화할 수단이 우리 주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다시 싸움을 준비해야하지 않겠는가. 다시 청계광장에서 두 번째 라운드를 시작하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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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