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6월 11일 새벽 컨테이너 벽 앞에 즉석 자유발언대가 세워졌고 시민들은 논쟁을 벌였다. / 사진: 김용욱 기자 |
사실 이 토론은 폭력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사용할 것인가를 대중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싸움을 둘러싸고 대중들이 맞닥뜨린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컨테이너가 정확히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통의 거부", 시위대의 의지에 대한, 국민의 의지에 대한, 이명박의 인정 거부의 선언이었지요. 아무리 시위대의 규모가 크다고 할지라도 이명박은 눈과 귀를 막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시위대는 결국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국 반격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 컨테이너는 바로 이러한 이명박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히 컨테이너 장벽은 대중들에게 또한 자신들의 무기력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컨테이너를 넘어가려고 했던 사람들도, 그것 너머에는 사실 청와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로 진격해 들어갈 수 없음이, 즉 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의 무기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요. 기어코 넘어가 봤자, 결국 상징적인 의미밖에는 없다는 것,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컨테이너가 아니라, 도전할 수 없는 권력의 (거의 정신적인) 철벽이었고, 단지 컨테이너는 그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물질화해서 보여줬다는 사실.
따라서 컨테이너 앞에서의 토론은 유의미했지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전선이 정확히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전히 문제는 힘이고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힘이지만, 이 힘은 결코 컨테이너를 넘어가거나 바로 그 앞에서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는 힘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촛불시위가 일찍이 지금처럼 노동자들의 투쟁을 필요로 하는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싸움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6월 10일이 지난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시민"과 "민중"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민중운동 진영에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시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까지 그들은 이미 갔기 때문입니다. 이제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를 시민으로 선언하고 이 싸움에 얼마나 폭발적으로 융합해들어오는가가 우리의 싸움의 향방을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촛불시위가 이명박을 퇴진시키고 발본적인 더 많은 민주주의의 제7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는가는 노동자 민중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는 마치 프랑스 혁명의 상황, 프롤레타리아트 없이는 부르주아지가 귀족계급을 물리치고 혁명을 달성할 수 없었던 상황과도 같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그 이전의 혁명과 현격히 달랐던 것은 바로 그것이 2원 대립이 아니라 3원 대립이었다는 점, 즉 귀족,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이었다는 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바로 이 때문에, 부르주아 공산주의가 가능했다는 것,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무제약적인 평등-자유의 심오한 선언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과연 노동자 민중 진영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대중파업'을 만들어 내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컨테이너를 현실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더 이상 기가 죽을 필요 없습니다. 당당히 노동자가 시민이 아니라면, 노동자가 해방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시민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해방될 수 없음을 선언합시다!
* 이 글은 최원씨가 현장기자석을 통해 본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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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원 씨는 미국 뉴스쿨大를 거쳐 현재 시카고의 Loyola University Chicago 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