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청계광장을 박차고 가두로 나설 때 민주노총 지도부는 청계광장에 눌러앉아 농성을 시작했고, 대중들이 이명박 퇴진을 외칠 때 그나마 가장 선도적이고 헌신적으로 이 상황에 대응했던 운동조직인 "다함께"조차 쇠고기 문제에 대한 구호만 외친다는 이유로 대중들에게 비난받기도 했다 ("다함께"가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지만 어정쩡한 사회운동들의 대응에 대한 불만이 거리에서 가장 눈에 '튀는' '"다함께"에 집중된 셈이다). 민주노총 집회에서는 물대포가 나오면 대오가 흩어지지만, 이 촛불 행진에서는 스크럼을 짜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단체 이름에 이런저런 급진적인 이념을 붙여놓고 "전위"를(혹은 그것이 되기를) 자처한 조직들은 아예 이 거대한 투쟁에 아예 언급할 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대중이 민주주의를 진실로 믿다
시민들은 "내가 민주주의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면서 "독재타도"를 외친다. 투표행위로 정당성의 획득이 완료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현재의 대의제 기구, 선거제도가 민주주의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리에서 말한다. 정치학 교과서에서나 논쟁이 될 만한 내용을 대중은 거리에서 소통하면서 배우고 있는 셈이다. 매일 매일의 집회에서 점점 더 눈에 띄게 느껴지는 대중의 정치적 요구의 발전은 모든 쟁점을 개방하고 있는 중이다.
이 투쟁에서 가장 잘 불리는 노래는 윤민석이 지은 "헌법 제1조"라는 곡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구절을 노래 가사로 옮겼다. 교과서에만 있는, 한편으로는 너무나 자명해서 죽은 문자로 보였던 인민주권이라는 오래된 사상이 거리에서 부활하고 있다.
이 노래는 지금의 투쟁이 가진 성격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대중은 '위로부터' 그들에게 보내진 그들 자신의 가상의 보편성을 곧이곧대로 믿고, 또는 오히려 그들이 그들 자신의 가상의 요구들에 부응하여 행동하고 그 결과들을 도출해내려고 집단적으로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 혹은 "헌법 제1조"는 지배자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이데올로기였지만, 청계광장에서 세종로에서, 이것은 대중의 가장 급진적인 요구로 탈바꿈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시민들의 토론을 통한 결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국가기구가 국민에게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을 배우고 주장한다.
이러한 국면에서 지배 권력의 정당성은 변명할 여지없이 깨지기 시작한다. 이명박 정권의 당황한 대응은 이러한 정당성의 위기에 빠진 그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들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더욱 노골적으로 부정할 수도 있는데, 이때는 위기가 더 증폭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혹은 '헌법 제1조'가 지배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것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자 이미 피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이며, 지금 거리에서 급진화되는 중이다. 이제는 현재의 체제가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을 함께 폭로해야한다. 이명박을 넘어서는 쟁점을 제기해야할 시기도 다가오고 있다.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마주침
이번 투쟁은 단지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를 넘은 지 오래다. 대중들은 집회 현장에서, 구호에서 이미 이명박 퇴진을 전면에 외치고 있고, 여기에는 정권의 공공부문 사유화, 대운하, 막장으로 가는 교육정책, 정권의 환율정책으로 인한 물가/유가 인상 등에 대한 반대가 결합되어 있다. 투쟁은 쇠고기 수입반대 문제로 촉발되었지만 이제는 이명박 정권이 급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든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 확장되고 급진화 되는 중이다.
폭발적으로 이러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생활상의 어려움이 존재하고 이것이 불만으로 누적되어 왔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서민들의 생계가 유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요금을 크게 인상하게 될 의료, 수도, 가스, 전기, 교통 등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는 "광우병 쇠고기 괴담"만큼의 대중적 공포를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착취의 한 형태라고 할 때, 대중들의 불만은 아직 자신의 언어를 명쾌하게 찾지는 못했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한편에서, 이명박 정권의 독재적인 행태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낳고 있다. "주어진 역사적 정세 속에서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해후할 때, 그것은 혁명인 것이다(승리하든 못하든 간에)." 지금의 정세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착취의 심각한 물질적 모순과,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거리에서 결합하고 폭발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거대한 대중운동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신자유주의로 인한 착취의 심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쟁점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한다.
계급정치의 또 다른 장소들
자본주의적 착취가 존재하는 곳에서 계급적대는 사라질 수 없다. 그러나 "계급적대의 형태들은 부단히 전화된다." 따라서 그 착취의 형태가 공장에서 저임금과 임금착취만이, 어떤 시기에 한편으로는 물가/유가 인상으로, 의료, 수도, 가스, 전기의 사유화로, 대운하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계급적대"의 형태들도, 따라서 대중들이 반역이 일어나는 장소와 쟁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세 속에서 이런저런 운동조직들이 "정치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형태의 변화를 인식하고 포착하고, 이 속에서 대중과 함께 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 점에서 (이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한) 현재의 사회운동들, 정치운동들은 무능력하기 짝이 없다는 점을 먼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공장 안에서의 쟁점만이 "계급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심지어는 한국 노동운동의 "주력"인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있는 대공장에서의 경제적 쟁점이 가장 "계급적 쟁점"이라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운동들이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바로 그때 "계급투쟁"의 정치는 또 다른 곳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런 저런 사회운동, 정치운동들이 말 그대로 "정치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계급투쟁의 형태들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어야"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거리의 투쟁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정작 민주노총 등 조직된 노동운동은 이 문제를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세가 폭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응하기는 하지만, 노조의 "고유한 투쟁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총파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충분한 조직적 결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따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독자적으로 진행한 촛불집회에서 "전면 재협상"을 외치기는 했지만 이미 시민들이 거리에서 외치고 있는 "이명박 퇴진"과 같은 구호까지는 나가지 못했다. 쇠고기 문제로만 현재의 국면을 이해하는 이상,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이 문제가 "남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미 "쇠고기"라는 쟁점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세적으로 보더라도,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사유화, 시장화와 같은 노동운동의 핵심적인 쟁점은 이명박 정권의 명운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벌써 정부는 6월 말 예정했던 공공부문 사유화, 구조조정 계획의 발표를 연기했다. 더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해서라는 후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민주노총은 지금 시민들의 투쟁에 함께하고 힘을 실으면서 이명박 정권이 더 이상 막가파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행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조직된 노동운동의 결합은 이 운동이 더 오래, 강하게 지속하는 데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원된" 집회에서 수동적인 머릿수의 역할만 했던 조합원들이 끊임없이 구호를 외치고,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밤을 새고, 피켓을 스스로 만들고, 자청해서 연단에 올라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을 경험하고 충격을 받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도 중요하다. 촛불집회의 장소는 관리되고 동원되는 운동문화를 넘어서는, 따라서 조직 자체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을 배우는 장소가 된다.
투쟁이 지속되기 위해서
시민들의 이 투쟁은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당장 정세적으로만 보더라도, 정권은 한편으로는 이런 저런 "정국 쇄신책" 혹은 "재협상"카드로 쟁점을 흐리고,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심각한 물리적 탄압을 가하고 있다. 투쟁이 이명박 정권과 이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 발전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쇠고기 협상이 중요한 쟁점인 상황이다. 이 쟁점이 흐려지는 순간부터 운동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자발적인 이 투쟁이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이 되고,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쟁점들은 더 확장되어야한다. 그것은 공공서비스의 사유화, 시장화 반대, 대운하 반대 등의 의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쟁점들을 덧붙이는 것만이 아닌 다른 노력도 또한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일이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에 대결하는 구호를 더욱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운동들이 할 일이다. 도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자명한 이데올로기--민주주의와 국민주권--마저도 무시되고 전투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피를 흘려야 하는지, 국민들 대부분이 반대하는 미국산 쇠고기를 굳이 수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전기, 가스, 수도 같은 필수서비스를 왜 사유화하려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한다. 이 사태들의 원인은 바로 "신자유주의",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자본과 권력이라는 점을 말이다.
이런 노력은 무엇보다 대중을 "계몽"하려는 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하자. 사태의 원인은 일방적으로 대중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선전의 문제만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운동이 시민들과 대화하면서 서로 배워 나가야한다. 조직된 사회운동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정치적 쟁점들을 대중들이 먼저 급진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대중의 정치적 진출로부터 먼저 배우고 토론하고, 이에 대해서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이미 조직된 사회운동이 제기하고 사람들을 조직해야한다.
어줍지 않게 대중의 "지도부"를 자임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전국적인 구조가 없이는 운동의 지속과 단결도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대중을 "이끈다"기 보다는 "토론"하고 운동을 조직하고 확대하기 위한 틀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운동 "속에서" 형성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을 때, 자신의 원인을 찾지 못한 불만은 인민주의(포퓰리즘) 정치에 또 한 번 휩쓸릴 수밖에 없다. 노무현과 이명박으로 그건 이미 족하지 않은가?
※ 이글에서 특별히 출처를 언급하지 않고 따옴표 친 인용문들은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에띠엔 발리바르 지음, 이론 중 <비동시대성;정치와 이데올로기>에서 인용한 것입니다[필자 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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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님은 공공노조 정책기획국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