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청수 경찰청장님
지난 31일,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연행되어 구로경찰서에 48시간에서 1시간 빠진 47시간을 구금되었다가 나온 박진이라고 합니다. 법원이 발부한 지문채취영장에도 불복했기 때문에 한동안 신분조차 확인하지 못했던 피의자입니다. 또한 당신들의 조사에 묵비권을 행사하여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은 사람이기도합니다. 나는 앞으로도 당신들의 소환, 검찰의 소환에는 불응할 예정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범죄로 생각하는 당신들에게 내 발로 걸어갈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나를 찾아와, 구금하고 구속하더라도 당신들 앞에서는 어떠한 입장도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당신들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틀 만에 돌아간 집, 어디 갔었는지 묻는 아홉 살짜리 딸에게 차마 엄마는 유치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누군가를 무조건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당신이든 이명박 대통령이든... 나는 내 딸이 미움보다 사랑을, 적의보다 이해를 먼저 배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샤워하면서 딸은 엄마의 등과 허리를 덮은 시퍼런 멍을 보고 말았습니다.
당신들의 폭력은 팔과 다리, 등과 허리에 뻘겋고 검고 시퍼런 멍을, 어지러운 그림처럼 남겨 놓았더군요. 아이가 볼까봐 팔과 다리를 감추었지만, 내 등 뒤의 상처를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경찰들이 그랬단다. 그렇지만 모든 경찰이 나쁜 건 아니야. 위험한 사람에게서 어린이를 지켜주는 경찰들도 있거든” 그렇게 말하는 동안도 아이가 한번이라도 더 상처를 보게 될까봐 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마음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한 댓가로 승진한 사람입니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요구가 담긴 현수막을 들고, 또는 손 피켓을 들고, 또는 촛불을 들고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외치는 행위가 그토록 잔인하고 야만적인 대접을 받을 일인가, 나는 아직도 궁금합니다. 설령 현행 집시법에 저촉되는 행위였다 하더라도, 그곳이 청와대를 마주한 청운동 사무소 앞이었다 하더라도, 채 백 명도 되지 않는 시민들이 들고 있던 것은 곤봉도 몽둥이도 방패도 아니었습니다. 미란다 원칙에 대한 고지도 하지 않은 경찰들은 몸부림치는 제 옷이 올라가 속옷이 보이는 지경인데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송버스 안에 밀려 들어간 몸이 거꾸로 들려 직각이 되어도 무술을 배운 듯한 당신의 남성 부하들은 발목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폭력의 상처는 몸보다 마음에 더욱 오래 남아 있을 듯합니다.
어청수 경찰청장님, 당신은 이런 식으로 승진을 한 사람입니다. 경기도 경찰청장으로 있던 시절, 자기가 살던 땅에서 죽게 해달라는 늙은 농민들을 향해 젊의 전.의경의 날선 곤봉과 방패를 동원해 무력 진압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선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때, 부산 전역을 계엄령과 같은 삼엄한 경찰천하로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을 승승장구시켜줬던 그 곳마다 당신의 잔인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입니다. 벼이삭이 자라야할 논바닥을 군인들의 철조망으로 가로 막았던 당신... 어린 학생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잡혀가는 꼴을 보며 경찰을 뜯어 말리다 결국 자기 가슴만 두들기며 울부짖던 80대 노인의 눈물을 당신은 봐야 했습니다.
그 노인은 바로 오늘 당신이 뻔뻔하게 이야기한 "폭력 시민이었기 때문에 강경 진압했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보았을 것입니다. 돌아갈 땅조차 없이 시들고 있을 노인도 당신에게는 폭력시민이고 강경 진압을 당해야할 불법행위자입니다. 그리고 당신 부하의 군화 발에 짓밟힌 어린 여학생도 강경 진압을 당해야할 불법행위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었던 것은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에게 닥칠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거리로 나온 선량한 국민이었습니다. 집시법이 강요하는 무수한 제약을 알면서도, 당신이 지키는 것이 국민이 아니라, 이 나라의 오만한 권력임을 뻔히 알면서도 거리로 나서는 그들은 평화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평화에 대해 당신은 ‘불법’이며 ‘폭력’이라고 죄를 물었습니다.
경찰이 무슨 죄냐, 법이 잘못됐으면 법을 고치면 되지...
제가 구금된 구로경찰서에서 한 경찰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경찰이 무슨 죄냐... 법이 잘못됐으면 법을 고치면 되지.” 맞습니다. 경찰이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자의적인 권력을 남용토록 한 집시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헌법의 원칙을 배반하고 “일몰 이후 금지, 주요도로 금지, 미신고집회 불허, 80DB이상 금지, 국회의사당 앞 금지, 어디 앞 금지...”그토록 무수한 금지의 벽을 넘어서 할 수 있는 집회는 당신들이 관용을 베풀어 줄 때만 합법이 됩니다. 당신들의 관용이 없는 곳에서 집회는 늘 불법이었습니다. 당신들이 허용한 행진이 아닐 때는 언제나 당신들은 형식적인 세 차례의 경고 방송 후, 경찰들의 방패를 앞세웠습니다. 부대 식별 표식이나 개인 식별 표식도 없는 익명의 공간에서 경찰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래서 2005년도에 전용철 농민과 홍덕표 농민이, 2006년도에는 하중근 건설 노동자가 경찰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경찰에게 맞아 죽은 그들의 죽음은 아직도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범인을 찾지 못하는 무능력을, 사람을 죽인 범죄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어청수 청장은 그 범죄를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다시 집시법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올 초 무관용 원칙을 말했습니다. 청와대 업무보고과정에서 “경찰관으로 구성된 체포전담반을 신설. 운영하겠다.”고 밝혔고, “공무집행 방해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사법처리를 강행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또한 “마스크 등 복면 착용 시 처벌, 불법폭력시위도구 소지 시 처벌, 소음기준 대폭 강화”를 골자로 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법안은 지난해 2월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이 청원해, 같은 해 7월,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입니다. 청원한 단체들은 소개 의견에서 “벌금형 상한액의 대폭 인상과 폴리스라인 침범 시 처벌조항 강화, 시위자의 신원을 감추는 복면이나 마스크 착용 금지, 경찰관의 채증촬영 허용 등 폭력집회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현행 집시법이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경찰은 “평화시위 양해각서 체결 의무화, 금지 통고된 집회를 강행할 경우 현재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는 처벌조항을 강화키로 하고 구체적인 형량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이 나서서 집회 시위를 범죄시하고, 이를 더욱 억압하고 금지시킬 법안을 추진하면서, 법이 죄지 경찰이 죄냐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이미 집회와 시위에 관한 모든 관용을 거둔 청장님이니, 거리에 나선 모든 시민을 폭도쯤으로 취급하는 청장님이니, 그나마의 집시법도 못 마땅할 것입니다. 당신을 그 자리에 서게 한 사람은 거리에 선 불법 폭도가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당신을 승진시킨 권력자들이며 그들의 입맛에 맞게 법하나 바꾸는 것쯤이야, 뭐가 그리 대수겠습니까. 이명박 정권 들어서자마자, 공안계통 일선 경찰관들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어, 까불지 마”라던 그 대사들을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경찰들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신 같은 정치 경찰들이 득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집회 시위 참여자를 연행하기 위해 비상대기 하느라 정작 잡아야 할 범죄자들을 수사하지 못하는 일선의 성실하고 정직한 경찰들을 위해서도 당신은 옷을 벗는 것이 맞습니다. 나는 당신이 경기지방 경찰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경기도의 수많은 강력범죄를 줄였다는 통계를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있는 동안, 이렇다 할 실적조차 없었던 무능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오직 당신은 노동자를, 농민을, 시민을 때려잡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자유는 법으로도 감옥으로도 폭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이력 조회에서 드러났듯이 집시법 위반으로 인해 재판 중인 피고인이며, 또 다른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시위 전력자입니다. 아마도 당신들이 구속영장을 검토한 서너 명의 사람 중에 포함되었을 법한 인물입니다. 스무살 무렵에 학생운동을 시작해,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운동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끄럽게도 딱 한번 딸아이 손바닥에 매를 댄 것 외에 남에게 폭력을 휘둘러 본 기억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나를 집시법뿐만 아니라, 공무집행방해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으로 조사하고 법정에 세웠습니다. 내가 폭력을 휘둘렀다는 어떠한 증인도 증거도 없었지만, 내 삶과 신념을 배신한 법정은 지금 나를 전과자로 만들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에게 공정함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무죄추정 원칙을 저버린 당신들의 비뚤어진 법률관을 믿지 않습니다. 강자에게만 유리한 법을 지키라고 외치는 당신들의 법치주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당신의 집시법과 맞대응해, 법정에서 당신들과 싸워줄 용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판단할 유일한 사람은 지금 거리에 선 시민들입니다. 자유와 권리를 향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시 일어선 민중 말입니다. 그 믿음이 이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나는 민중이 역사를 발전시킨다는 믿음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번지는 그들의 뜨거운 열기를 도와, 내 하찮은 인권활동의 이력이 도움이 된다면 거리에 늘 서있을 것입니다. 지루했던 47시간의 유치장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청와대를 향해 뛰어 오르던 목소리들은 법을 어기는 것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자유였습니다. 자유는 법으로도 감옥으로도 폭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