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버마 민중들과 소통하고 있습니까

[기고] 버마 민주화운동에 연대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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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하나.

최근 들어서 진보넷 속보게시판에 ‘프로그레시브’란 사이트가 등장하여 몇 번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사이트에 대한 소개가 친절하게 나와 있지 않아 운영의 주체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으나 게시글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때, 소위 ‘자민통’이라 불리는 운동세력의 시각에서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그 사이트가 한국의 모든 자민통 활동가의 생각을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07년 9월 29일자 프로그레시브 사이트 (www.progressive21.com)에 올라온 글 중에서 ‘부시, 미얀마 반제정권 전복 선동’이란 글을 보게 되었다. ‘프로그레시브’라고 명명된 사이트에서 ’미얀마 반제정권‘이란 단어를 발견하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에피소드 둘.

9월 30일에 열린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대회에서 버마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자는 특별결의문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당연히 만장일치로 통과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이 버마 민주화투쟁을 지지한다는 점과 관련된 몇몇 대의원들의 의구심등으로 인해 결국 표결로 통과되었다.


버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활동을 하면서 몇 가지 고민되는 게 있었다.

현재 미국이 전폭적으로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의 문제와, 버마군부정권에 맞서고 있는 버마 민족민주동맹이 사회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있는 점, 그리고 버마 문제와 북한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문제등과 관련하여 참 쉽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버마 민중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난 1988년에 있었던 민주화 시위나 최근 시위가 모두 어느 제국주의 세력이 지지하고 선동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민중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지배세력에 대하여 저항하는 자발적인 민중항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23일 집회에 운집한 버마 시민들 [출처: http://cafe.daum.net/mmwc]

80년 광주에서 광주시민들이 보수정치인 김대중씨의 석방을 외쳤다고 해서 광주의 의미가 폄훼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최근 민주화 요구시위를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들이 지지한다고 해서 버마 민중들의 저항이 제국주의에 의해 선동된 투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총구 앞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저항하고 있는 버마 민중들의 투쟁에 한국의 사회운동이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민주화운동과 버마정권의 성격규정을 국제정세에서 분석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지, 민중들의 거대한 희생 앞에서 규정부터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판자본가 군부

같은 맥락으로 현재 군부정권의 반대하는 세력이 사회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흔히들, 버마사회가 사회주의체제로 운영된다고 생각하지만 버마를 직접 다녀온 내가 경험한 바로도,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버마 군부는 사회주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빙자하여 사실상 천연자원을 외국자본에 팔아넘기는 매판자본가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치부에만 관심이 있는 버마 군부 최고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자식들을 다른 나라로 유학 보내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과연 사회주의라 불러야 하는가? 지금 버마문제의 관건은 누가 어떤 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어떤 국가와 손잡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부정부패로 찌들어 있는 버마군부를 하루속히 끝장낼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설사 버마군부정권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여 주권을 지키고 버마식 사회주의를 하고 있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결코 군부정권을 용인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버마 군부정권이 버마 내 소수민족에게 가하고 있는 무자비한 인권탄압 때문이다.

군부의 소수민족 말살 정책

현재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버마는 주류인 버마족외에도 카렌, 친, 아라칸, 몬족등 많은 소수민족들이 고유한 언어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공존하고 있다. 버마 군부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인 버마 독립영웅 아웅산이 공언한 연방제를 통한 소수민족들에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소수민족 말살정책을 펴고 있다.

즉, 소수민족들에 대한 탄압을 통해 버마족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정책을 해오면서 상상할 수 없는 인권탄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작년 인도에서 버마정부군에서 탈영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버마 군부가 소수민족과의 교전에서 내리는 명령은 다음으로 요약된다고 한다.

“남자가 보이면 쏴서 죽여라. 집이 보이면 불태워라. 여자가 보이면 강간하라.” 이런 정권을 어떻게 용인할 수 있겠는가? 소수민족들과 버마 민주화 세력들이 함께 손잡고 버마군부타도를 외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버마 민주화 운동과 소통하고 있나?

명목상으로 군부정권이 사회주의로 자신들을 명명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버마 민주화 세력들이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지 않는 것이지 경제체제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버마가 민주화 된 이후에도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운동의 고민이 과연 버마 민주화운동과 충분히 소통되고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미국과 유럽이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그들이 민주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안, 한국정부가 한일이라고는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에 대한 난민신청 거부와 버마 천연가스 개발뿐이었다.

설사 미국과 유럽이 장차 민주화 이후 친미정권 수립과 신자유주의 체제를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원한다 할지라도 생사를 넘나들며 싸우고 있는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에게는 그들의 지지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 한국 활동가가 “너희들이 미국의 지원 받으면서 운동하는 것은 나쁜 짓이야‘라고 말만 한들, 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정말 우리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시도를 경계한다면 한발 물러서서 논평할 것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가족과 친구의 생사를 걱정할 때 그들의 손을 한번이라도 더 잡아줘야만 한다. 우리가 그들의 아픔과 연대할 때, 그들도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최근에 버마와 북한 문제를 연계하여 한국 내 보수단체와 언론이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과 접촉하려는 시도가 부쩍 늘고 있다.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에게 한반도는 남쪽에서는 무기판매와 가스개발에만 관심 있고, 북쪽은 군부정권을 지지하고 협력하는 곳으로만 비쳐질까 두려운 가운데서도 보수단체들의 접근에 대해 우리에게 의견을 묻고 우리와 함께 하려는 버마 활동가들이 참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그동안 많은 한국의 인권단체 및 사회단체와 이주노동자 단체들이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과 연대하여 버마 민주화 활동을 벌여내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국의 사회운동이 이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지지하는가는 이들이 한국사회를 판단하는 주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손 놓지 않고 함께 가기

분명, 버마는 언제가 될지가 문제이지 반드시 민주화가 될 것이다. 이런 잔인무도한 정권이 오래가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오래가지도 못할 것이다. 한국의 사회운동이 신자유주의와 미제국주의 문제에 관해서 충분히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과 소통하고 고민을 나눈다면 이들이 민주화 이후 버마로 돌아가서도 충분히 자신들의 고민을 미래의 버마에 투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운동의 몫이고 이것이 국제연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악의 경우, 이번 민주화 시위가 또다시 총칼 앞에 꺾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버마 민중들의 저항은 또다시 들불처럼 활활 타오르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한국의 사회운동은 결코 지금 잡은 손놓지 않고 함께 갔으면 좋겠다. 버마국민들 역시 한국기업으로 인해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고, 한국 내 버마 활동가들도 이 땅을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지금 이들의 투쟁에 한국 사회운동은 연대해야만 한다.
덧붙이는 말

나현필님은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