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사회에서 이미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신기한 말이 아니라 당연한 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학교에 비정규직이 있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이나, 사회 물을 조금 먹어 본 사람이라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싶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학교에 비정규직이 있고, 그 비정규직이 어떻게 생활하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소하다. 학교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건 맞지만 그 구조가 다른 업종의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분명히 특수한 점이 있다.
한 학교에 수십 명이나 되는 교사에 비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학교 회계직)는 10여 명은커녕 5명이나 될까 말까 하다. 즉 실제로 모여서 단결하기도 어렵지만 단결한다고 해도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힘으로 당당해지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일상적 차별과 감시 통제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불법적 행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침에 의해서", 희한한 급여 형태를 갖추면서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합법적인 구조’를 만든다. 예를 들어서 방학 때 일하지 않게 만들면서 급여는 방학과 휴일을 뺀 275일 치의 연봉을 받게 만드는 구조가 그렇다. 때문에 시간당 임금은 높지만 연봉으로 치면 1년 치 연봉이 낮다. 이 연봉을 12달로 나누면 최저임금 수준에 육박한다. 이것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이라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발의된 노동관계법이 그렇듯이, 법 이름은 ‘개선’이지만 ‘개악’이 목적인 법이다. 이 글에서는 이 법이 왜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학교를 바꿀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 무엇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 발의와 현재 상황
지난 2009년 10월 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친박연대 정영희 국회의원을 대표로 내세워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목적은 [교원이 수업 등 교육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각종 행정업무를 줄이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여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즉 교사의 업무 경감을 목적으로 학교행정업무 전담요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며 이 모든 것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학교행정업무 전담요원으로 거론된 직종은 5개 직종이다. 사무 행정보조, 교무보조, 전산보조, 과학실험보조, 사서보조가 바로 그것이다. 교총과 정영희 의원은 34,614명의 학교행정요원을 전부 1년 계약직으로 사용하겠다고 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사무행정, 교무, 과학실험, 사서 직종에서 일하는 회계직은 18,250명이다. 이들의 전문성과 경력을 무시한 채 모두 1년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신규 채용될 16,364명 역시 똑같은 상황이다.
현재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은 아직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는 않고 발의만 되어 있다. 하지만 정영희 의원이 여전히 의원직을 가지고 있는 한 법안 자체가 폐기되는 것은 아니며, 언제든지 재논의 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숨 쉴 틈도 없어지라고?
이미 교총에서는 2009년 10월 법안 발의 전부터 이 법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발표해 왔다. 2009년 8월에 발표된 [교원업무 경감을 위한 학교행정전문요원 추진계획서]라는 자료집은 이 법안에 근거하여 학교비정규직이 받게 될 근무평가의 실태를 드러내고 있다. “학교미화의 경우 3(시간)을 기준으로 15회를 했다면 45점을 받을 것이고 30회를 했다면 2배인 90점을 받게 됨”, “공문서 한 장이라도 업무처리 시간이 다를 수 있다” 등의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즉 이런 식이면 복사 1장당 1점이 되고, 일주일 동안 화단에 물을 몇 번 주었는지, 차 접대는 잘하는지 등이 근무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업무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포함되어야 할 것들까지 모두 근무 평가의 대상이 되고, 숨 쉴 틈조차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정영희 의원실 측에서는 근무평가가 체계화되면 이에 따라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는 평가가 미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1년 연봉을 245일 분, 275일 분으로 계약하는 황당한 근로계약 형태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따라서 정영희 의원실의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또한 근무평가를 “하루 1회 혹은 일주일에 1회 등 학교장이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학교의 형편에 맞게 추진한다”고 한다. 이미 학교에서는 2007년 10월 경 다수의 비정규 노동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근무평가에 의거한 해고가 취업규칙으로 규정되어있다. 그래서 근무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이 평가라는 것이 적정한 기준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교장에게 잘 보이면 좋은 평가를 받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은 공무원과 같이 국가에서 신분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늘 고용이 불안하며, 근로계약을 학교장과 체결하기 때문에 온갖 서러움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항의도 못하고 속으로 삭히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또다시 공정한 기준 없이 학교장 편의대로의 평가를 법제화 한다는 것은 고용불안의 심화를 의미할 뿐이다.
대통령령으로 고용 불안정과 직군 분리를 감행?
이 법안에는 행정 요원 사용의 세부 내용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정요원은 직군 분리를 의미한다. 역시 위에서 거론되었던 “교원업무경감을 위한 학교행정전문요원제도 추진 계획서”에는 “계약직 공무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고용불안의 실태는 자료집에서 표현하고 있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정년은 없다"
대통령령이다 보니 대단히 막강한 규정이 뒤따르는데, 지금껏 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내놓은 아주 약간의 혜택조차 받을 수 없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년 계약직 신세, 매일 10등급으로 평가 받을 지도 모른다는 굴욕과 불안감, 지금 받는 급료 그대로의 변함없는 처우가 영원히 고착화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신분이 달라지기 때문에 노동법을 직접 적용받기도 쉽지 않다. 공무원은 공무원 관련법에 의해 근로조건과 신분이 규정되고 노동자가 노동법에 의해 규정을 받는데 이 경우 공무원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이상한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용기를 내면 교장에게 항변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대로라면 교장에게 항의해 봤자 대답은 뻔하다. “대통령에게 가서 얘기해라”
교사와 공무원에게도 최악의 법안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친박연대 정영희 의원실에서는 이 법안의 추진 취지를 교원의 업무 경감을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교사의 업무는 경감되어야 한다. 방과 후 수업도 쉽지 않고, 기간제 교사, 인턴교사가 동원되어도 모자라 정교사들도 온갖 새로운 교육업무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교사업무 경감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오직 ‘비정규직 확대’, ‘차등성과급제 도입’뿐이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안타깝게도 2003년 OECD 교육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 1,000명당 교직원 수는 50명으로 OECD 평균 99.5명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내놓은 교사업무 경감대책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법안의 원래 취지에 맞게 교육력을 강화하고, 교사의 업무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수업시수 표준화,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교사 확충 등의 문제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본질적 문제를 고치지 못한 채 발의된 이 법안은 교원의 업무 경감을 핑계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교육 재정 확충 및 교사 확충과 교육환경 개선 등의 쟁점을 은폐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미 이명박 정부의 4.15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 경쟁과 효율이 교육기관의 최고 덕목이 되고 있다. 성과주의 인사관리 시스템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교원평가제를 축으로 하여 학교에서도 이러한 관리 시스템을 확립하려고 시도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교원평가제가 전면 시행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에 맞서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원평가제는 허울만 좋을 뿐 학교 교육을 황폐화 하고, 결과적으로 교사의 구조조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투쟁의 정당성이었다.
그러나 비정규직에게 우선적으로 평가제도를 적용한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의 정당성 역시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평가를 받는 것은 곧 전례가 되어 교원평가제 및 공무원 직무 평가에 있어서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를 허용한 대가로 결국에는 모든 교육기관 종사자들에게 평가와 그에 다른 구조조정이 확대될 것이다. 공무원 직무 평가 역시도 이와 다르지 않은 문제다. 때문에 공무원과 교사 역시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이 법안에 적극 반대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 학교 현장 노동자의 분열을 야기할 것
학교비정규직은 행정직 노동자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설관리도 있고, 조리종사원도 있으며 미화 노동자도 있다. 업종은 각기 달라도 어쨌든 학교에서 일하는 다 같은 비정규 노동자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공공노조에서도 학교 행정직, 학교 시설관리, 학교 조리원을 다른 조직으로 가입 받지 않는다. "학교비정규직 전체" 가 가입하는 조직으로 편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은 행정직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며, 행정직 노동자만 신분이 전환되게 된다. 따라서 법이 시행된다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행정요원과 비행정요원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차별을 정당화하고, 교육기관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것일 뿐이다.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을 폐기시키고 진정한 대안을 만들어 나가자
지금까지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판을 서술하였다. 이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교사에게도, 공무원에게도 이 법이 개악일 뿐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학교 현장 노동자들 그 누구도 개악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 같은 요상한 법이 아니라, 진정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교원의 업무를 경감시키는 것은 교육환경의 실질적인 개선과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이루어져야 하며,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교원의 진정한 업무 경감을 위한 교육환경 개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포함한 정당한 권리의 쟁취. 둘 다 참된 교육을 실현해야 할 교육 현장의 중요한 과제로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도, 교사도, 공무원도, 학교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라도 함께 주체로서 학교행정업무개선촉진법을 폐기하고 대안을 만드는 투쟁에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