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전국노동자대회 본대회가 한창이던 13일 오후 5시 경, KT노조 김 모 조직국장을 비롯한 현직 노조 간부 3명은 기습적으로 무대 왼편 가로수에 설치되어 있던 가로 7m, 세로 0.9m 짜리 현수막을 훼손했다. 이들은 4시 50분경 가로수에 묶여있던 현수막을 풀어 제거하려했으나, 현장에 있던 KT조합원들이 이를 발견하고 제지하자 지니고 있던 칼로 현수막을 찢었다.
이날 KT조합원들은 최근 있었던 KT노조 선거 부정의혹을 제기하며, 각각 'KT노사담합 부정선거 지재식은 사퇴하라'와 '민주노총 혁신은 KT노조 부정선거 진상조사부터'라고 적힌 두 개의 현수막을 설치했다. 이 중 김 모 국장 등이 찢은 현수막은 현 IT연맹 위원장 겸 KT노조 위원장 지재식 씨의 실명이 거론된 ''KT노사담합 부정선거 지재식은 사퇴하라'. 지재식 위원장은 KT노조 선거에서 90%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조정택 후보를 누르고 지난 8일 당선된 바 있다.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현수막을 훼손한 김 모 국장등을 붙잡아 칼을 압수한 뒤 현수막 훼손 경위를 추궁하고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 모 국장 등은 사과는 물론 "내가 직접 찢지 않았다"며 발뺌했다. 이 과정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조합원들과 현수막을 찢은 간부들 사이에 심한 욕설과 몸싸움이 벌어졌고, 혼란한 틈을 타 김 모 국장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은 자리를 피했다.
자리를 피하지 못 한 김 모 국장에게 끈질기게 사과를 요구하던 한 조합원은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도, 노사담합도 아니라면 왜 몰래와서 현수막을 찢냐"며 "오늘 사건은 현 노조 간부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과 노사담합을 인정한 것에 다름아니다"라고 읍소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노조의 간부가 조합원들이 설치한 선전물을 찢어버리는 이 마당에 무슨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이고, 무슨 혁신이냐"며 "KT노조의 부정과 노사담합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총연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결국 KT노조는 어용노조가 되었다"고 토로했다.
▲ 현수막을 칼로 찢은 KT노조 간부(왼쪽에 보이는 사람이 김 모 조직국장)와 사태를 중재하고 있는 또 다른 노조 간부(중앙)가 조합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
▲ 조합원들이 김 모 국장에게 격렬히 항의하고 있는 동안 민주노총 관계자(왼쪽)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양측을 중재하고 있다(사진제보 - 김호성) |
현장 사태 수습에 나선 한 KT노조 간부는 조합원들의 주장에 대해 "누가 어용노조냐"라고 발끈하며 "노조 내부에 문제가 있거나 의혹이 있다면, 안에서 해결해야지 노동자대회에서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제 얼굴에 침 뱉는 것 밖에 안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KT노조 이 모 조합원은 "민주노총이 진정한 혁신을 하려고 한다면, 내부에서 제기되는 의혹과 부정에 대해서 눈을 감아선 안된다"며 "눈을 감는 것도 모자라, 노조간부들이 아예 조합원들의 입을 막으려고 드는 작금의 사태가 민주노총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소란은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 없이 현수막을 찢은 간부들이 자리를 뜨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소란 와중에도 '민주노총 창립 10주년 2005전국노동자대회'는 성황리에 진행됐고, 발언자들과 참석자들은 연신 '단결'과 '투쟁'을, 그리고 '혁신'을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