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노예를 만들기 좋은 원료”는 누구인가

[INTERNATIONAL] 정착민 민주주의라는 인지부조화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필자의 타임라인에 떴던 이스라엘 민주주의 시위 광고 [출처: 필자 제공]

4월에 팔레스타인 현장 활동을 다녀왔다. 활동 중 틈틈이 각종 소셜 미디어에 접속할 때마다 내 타임라인에 가장 많이 뜬 표적 광고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동참해 달라는 집회 광고였다. 사회 이슈와 전혀 무관한 관심사로 운영하는 계정조차 타임라인이 민주주의 시위 광고로 도배됐다. 운동 단체에 의한 광고가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개인들의 광고도 있었다. 나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하는 활동가로서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다. 표적 광고가 어느 정도는 나를 맞춘 셈이다. 하지만 내게 뜬 모든 광고의 아젠다가 오직 ‘유대계 이스라엘인’만을 위한 민주주의(그런 것이 가능하다면)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내 관심사를 비켜 나간다.

이스라엘의 “반민주적” 사법 개혁

1월 7일 시작한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시위”가 6월 말 기준 25주째 계속되고 있다. 수천에서 십수만 명의 시위대엔 이스라엘 좌파 블록부터 예비군, 야당 정치인은 물론이고 전직 총리와 육군 장성도 있을 만큼 규모가 상당하다.

시위의 발단은 6개의 우익 정당과 극우 정당이 연합한 이스라엘 연립정부가 이스라엘 사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사법 개혁’ 법안을 추진한 데 있다. 연립정부는 이스라엘 대법원이 좌파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데다 정치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법원이 소수자의 인권을 중시하느라 국익을 경시했단다. 그 때문에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에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연성헌법 기반의 이스라엘은 헌법재판소가 따로 없이 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그런데 1월 4일 공개된 법안은 국회의 단순 과반 의결(120표 중 61표)로 국회가 대법원의 위헌 결정을 뒤집을 수 있게 하고, 대법관 임명위원회에서 국회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비중을 늘렸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은 국회 의석의 과반, 즉 61석을 확보한 정당이 내각을 구성하고 총리를 배출한다. 이스라엘 건국 후 한 정당이 과반을 확보한 일은 1968년 단 한 번뿐이었고, 항상 여러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해 여당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차례 연정 구성에 실패한 이스라엘 최대 우익 정당 리쿠드당은 극우 정당을 끌어들여 왔고, 2022년 말 구성된 연립정부는 이스라엘 사상 가장 극우 편향된 정권으로 불리며 현재 64개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아무튼 입법부와 행정부가 단일한 이스라엘의 체제에서 사법부는 다른 국가 기관을 견제해 민주주의를 담보할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때문에 “사법 개혁”에 반대하며 이스라엘 “시민들”이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선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몇 년간 뇌물수수와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받아 왔기 때문에 시위대는 정권의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참고로 네타냐후는 코로나 이후 그를 겨냥한 장기간의 대규모 집회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또 한 번 연정 구성에 성공해 6번째로 총리직을 맡았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집권 기록이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학자, 스타들조차 이스라엘 현 정부를 비판하는 데엔 아무 거리낌이 없다. 저명한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도 그중 하나다. 그가 3월 7일 영국 가디언지에 투고한 글의 제목은 이렇다. “벤자민 네타냐후에게 보내는 전갈: 쿠데타를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국가를 멈출 것이다.”

정착민 식민주의에 대한 인식 부재

하라리는 “이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것은 사법 개혁이 아니라 반민주적인 쿠데타”라며 “쿠데타가 항상 탱크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역사상 많은 쿠데타가 펜과 종이를 통해 비공개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만약 이 법들이 통과되면, 정부는 우리의 자유를 완전히 파괴할 힘을 갖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또 “75년간 이스라엘 사회를 지탱해 온 계약서를 찢어버리면서도 (이스라엘 시민이) 당신들을 믿길 바라느냐”고 일갈하곤 “이 반민주적 쿠데타가 계속되는 한 이스라엘의 모든 학술 기관이 파업에 돌입하기를” 제언했다.

  필자의 타임라인에 떴던 이스라엘 민주주의 시위 광고 [출처: 필자 제공]

그런데 그의 글이 팔레스타인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문제가 되는 대목은 이렇다. “이스라엘인은 노예를 만들기 좋은 원료가 아니다(Israelis are not good raw material for making slaves).”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BDS민족위원회(BDS는 이스라엘 보이콧·투자철수·제재의 준말)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식민주의 시대의 인종주의와 패권주의, 비인간화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하라리는 자신의 극우 정부를 비판하며 "이스라엘인은 노예를 만들기 좋은 원료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1948년 이래 정착민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통치에 억압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원주민은 "노예를 만드는 데 좋은 원료"임을 시사한다.

어떤 모순도 느끼지 못하는 채로, 하라리는 네타냐후의 "개혁" 법안의 통과는 "기본적인 인권"을 훼손하고 "우리의 자유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 말한다.

여기서 하라리가 말하는 "인간"은 명확히 유대계 이스라엘인을 지칭하며, 그가 우려하는 "자유"란 전적으로 그들만의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자유와 권리가 부정된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원주민은 그에게 문제가 되기 부족함이 없을 만큼의 인간이 아니다.

하라리는 정부가 "시민들의 기본적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독재 정권을 세우려 할 때", 시민들의 "저항이 허용된다"고 주장한다. 하라리는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 독재 아래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항권이 있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하라리는 "호랑이가 우리를 잡아먹으러 올 때, 우리 몸의 절반만 먹으라는 타협안을 협상할 순 없다"며 이스라엘 야당에 '독재'와 타협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오슬로 사기극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항상 이것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가장 극우적 근본주의 정부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반대는, "정착민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이스라엘의 추악한 정착민 식민주의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아파르트헤이트 시스템을 숨기는 가면을 복구하는 것에 전적으로 관련될 뿐이다.

물론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과 권리 침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작년 11월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라리는 현대 이스라엘과 점령지 팔레스타인에는 세 계급의 사람이 살고 있다며 “모든 권리를 가진 유대인들, 약간의 권리를 가진 일부 아랍인들, 권리가 거의 혹은 전혀 없는 다른 아랍인들"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두 번째 계급의 아랍인은 이스라엘 시민권이 있으며 이스라엘 인구의 18%를 점하는 팔레스타인인을 뜻하고, 세 번째 계급의 아랍인은 피점령지 팔레스타인 주민을 뜻한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명확한 단어는 안 썼지만, 그의 입장은 휴먼라이츠워치와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 단체들이 최근 몇 년간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공개적으로 규탄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하라리는 앞서 2월 23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기고 글에서 “민주적인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을 안 좋게 대하는 것만큼, 이스라엘의 민주주의가 파괴된 후의 상황은 훨씬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스라엘 시민 “저항 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흥미롭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당적으로 일관된 팔레스타인 군사점령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비판적이면서도, 지금의 초극우정권 이전엔 “민주적인 이스라엘 정부”가 존재했다고 전제한다. 그리곤 그것이 이스라엘 시민만이 아니라 피점령지 팔레스타인 주민에게도 낫다고 말한다. 첫 번째 특권 계급은 아래 두 계급의 팔레스타인인을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진단과는 다르다.

‘민주주의’ 시위 불참자들에 대한 전도된 비난

시위 주최자들과 이스라엘 언론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주주의 시위에 불참한다며 공개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한다. 이미 1월 운동 시작 초기부터 시위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주류라는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며 ‘제2계급’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거나, 군사점령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발언을 허용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을 군사 점령한 것을 기념하며 동예루살렘에서 열린 행사에 시위 지도부가 참여를 결정하며 절정에 달했다. 시위대는 당시 동예루살렘 올드시티를 정복한 낙하산 부대의 전역자와 예비군이 초대된 이 기념식에 함께 했다. 기념식이 열린 통곡의 벽 앞 광장은 1967년 점령 당시 모로코 구역이었다. 동예루살렘 정복이 완료된 지 3일 후, 12세기부터 북아프리카 이주민들이 살아온 모로코 구역은 완전히 파괴됐고 주민들은 추방당했다.

하라리는 가디언지 기고문에서 이스라엘군과 국내외 정보기관인 신벳, 모사드, 그리고 이스라엘 경찰에 “진실의 순간이 오거든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독재자의 종이 아니라 시민의 보호자로 역사에 기록되라”고 주문한다. 어째서 바로 그 권력기관들이 제2계급과 제3계급을 억압하는 핵심 권력기관이라는 데서 모순을 보지 못하는 걸까? 애초 “75년간 이스라엘 사회를 지탱해 온 계약서”란 표현에서 드러나듯 그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끝없이 정상 상태로 가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가 이스라엘 사회와 분리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오직 유대계 이스라엘인을 위한 민주주의를 정상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 주류 사회를 대변하는 시위 주최자들과 관점이 일치한다.

현대 아랍 정치 전문가인 조제프 마사드는 이런 모순이 이스라엘 사회에 뿌리 깊다고 지적한다. “이 시위자들이 누려 왔고, 앞으로 잃을까 두려워하는 바로 그 권리들이 항상 팔레스타인 민족 약탈과 억압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시위가 민주주의가 아닌 지배자 민족만의 민주주의를 확고히 지키려는 것일 뿐임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인구 100명당 한 명이 변호사라 자랑하며 이런 부정의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들 한다. 이스라엘 사회는 법안이 통과되면 이스라엘 사법부가 더 이상 독립적으로 보이지 않게 될 거라고 우려한다. 이스라엘의 사법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을 통제하는 최고 심급으로 기능해 왔다. 아주 드물지만, 서안지구 내 불법 유대인 정착촌의 확장을 저지하거나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군정의 불법행위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사회, 그리고 하라리는 대법원이 더 이상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면 군사점령이 강도를 더할 거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법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저지르는 전쟁 범죄 혐의를 국제 법정에서 다룰 수 없게 만드는 주요 방어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국내법으로 이미 다룬 사건을 국제 사법기관이 다시 다룰 수 없다는 구실이 돼 온 것이다. 애초 국내 문제만을 관할하는 국내 사법기관이 군사 점령지에 자국법과 관할권을 적용하는 자체가 문제적이다.

작년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스라엘 군정이 군사훈련 구역으로 지정한 팔레스타인 마을들에서 천이백 명의 주민을 모두 내쫓아도 된다고 최종 판시했다. 이스라엘 사법부를, 불법 정착민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거리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 불가능하다.

<각주>
(1) 워커스 53호 “이스라엘 총선, 강화되는 인종주의와 헤브론” 참고
(2)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3/mar/07/benjamin-netanyahu-coup-israeli-judicial-system
(3) 피점령지 팔레스타인에 자치정부를 세워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세력을 이스라엘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이름.
(4) 출처: https://twitter.com/BDSmovement/status/1637398911865192449
(5) https://edition.cnn.com/videos/tv/2022/11/23/yuval-noah-harari-amanpour-unstoppable-us-sapiens-jerusalem-israel-ukraine-russia.cnn
(6) 이스라엘 일간지 Ynet에 히브리어로 기고한 글을 영역한 것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3/02/23/yuval-noah-harari-israel-democracy-disaster/
(7) https://www.middleeasteye.net/opinion/israeli-protesters-demonstrate-safeguard-master-race-demo
cracy
(8) http://m.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category1=38&nid=106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