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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무덤이 된 시간선택제 공무원

[이슈] 경제적 궁핍과 우울, 차별로 인한 상처, 소외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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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시선제 공무원) 제도가 도입된 지 9년이 지났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 당시 근무 시간을 개인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고 홍보한 것과 달리 시간선택권은 없었고, 현장에선 짧게 일한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등 악질 일자리로 전락했다. 시선제 공무원의 대표적 슬로건은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정부는 “경력 단절 여성 등 전일제 근무가 곤란한 사람”을 위한 제도라고 홍보했고, 실제 많은 여성이 지원했다. 시선제 공무원 재직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 시선제 공무원 총 3,658명 중 여성 노동자들의 비율은 78.4%(2,868명)에 달한다.

정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만든 시선제 공무원을 독특한 비정규직 제도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변칙적 형태의 노동자들은 제도에서 제외되고, 소수이기 때문에 그 문제가 잘 드러내지 않아 그 속에서 홀로 버티거나 쓰러지거나를 강요받았다. 《워커스》가 만난 세 명의 시선제 공무원은 애초의 취지에서 제도가 얼마나 심각하게 변질됐는지, 노동자들에게 어떤 차별과 고통을 주고 있는지 증언했다. 경제적 궁핍과 우울, 차별로 인한 상처, 소외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1

“전일제가 수건이라면 우린 일회용 티슈인 거죠.” 급할 때 한 움큼 뽑아서 쓰고, 바로 버리는 일회용 티슈는 류주현 씨가 생각하는 자신의 처지였다. 2017년 임용된 후 금융위원회 소속 7급 공무원 신분이지만, 알바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온갖 기피 업무가 류 씨에게 던져지고, 전일제 공무원들이 공유하는 소속감과 유대감으로부터 박탈돼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류 씨가 시간선택제 채용형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군 장교를 거쳐 공공부문 기간제로 일하며 공직사회에 몸담은 지 15년. 그중 시간선택제 채용형 공무원으로 일한 5년은 그가 꿈과 인류애를 빼앗긴 시간이었다.

2017년, 통·번역 대학원을 다니던 류 씨는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다는 홍보에 시간선택제 채용형 공무원에 응해 그해 임용됐다. 근무 시간을 제외한 정년 보장, 호봉에 따른 승급, 추가 수당 등에 차별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그런데 기관에 막상 채용되니 ‘본인의 필요에 따라 시간선택제 근무를 신청’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인사부서에서 주 2.5일을 나오라고 하면 2.5일을 나가야 하고, 주 5일을 나오라고 하면 주 5일 나와야 했다. 근무 시간 역시 원하는 대로 선택은 불가했다. 주 20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하고 5시간 범위에서 조정이 가능하다고 알았지만, 인사부서와 무언가를 ‘협의’해 정한다는 건 이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걸 깨달아가고 있었다.

노동 시간을 선택함으로써, 생애주기에 맞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삶을 스스로 설계해나가는 삶. 이는 시간선택제 채용형 공무원 제도를 만든 근거이자, 이 일자리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었지만, 어째서 현장에 정착한 제도는 노동자의 삶을 갈아먹으며 기형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 시간선택제 채용형 공무원들 사이에선 정부로부터 “취업 사기를 당했다”라는 반발이 거세다.

근무 시간을 선택하지도 못했고, 주 20시간만큼의 근무량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일을 시작하면서 거의 동시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결국 복학하지 못한 채 5년이 지나 지금은 퇴학상태다.


주 20시간을 일하는 그녀는 학업 외에도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예정된 결혼식을 4개월 뒤로 미루기도 했고, 육아는 주 20시간을 일하는 류 씨보다 남편의 몫이 더 많다. 남편은 아예 육아 휴직을 쓰고 아이를 돌보고 있다. ‘일과 가정의 병행’이 가능하다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특성은 이미 퇴색된 지 오래였다.

한 달 100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면 일, 가정 병행은 물론 자기 삶까지 온전히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2020년 금융위의 민원실은 한 달에 100시간씩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사무관 1명의 자리를 0.5 TO로 계산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 2명이 채워야 했다(시간선택제 공무원들은 이렇게 짝지어진 서로를 ‘짝꿍’이라 부르는데, 오전과 오후를 짝꿍과 나눠 일한다). 하루에 약 200건씩 쌓이는 민원실 업무를 처리하려면 전일제 공무원처럼 일하고, 그것을 초과해 일해야 가능했다. 게다가 초과한 시간만큼 급여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초과 근무를 하면 공무원수당규정에 의해 1시간이 식사 시간으로 취급된 탓이다. 100시간을 초과해서 일해도 류 씨의 경우 초과 근로 시간이 57시간이 넘어가면 정산되지 않았다.

지난해 코로나19 관련 업무가 가중돼 숨진 채 발견된 공무원 역시 한 달 초과 근무 시간이 100시간을 훌쩍 넘었다. 진상조사를 위해 꾸려진 과로사 원인조사위원회는 해당 공무원이 죽은 원인을 ‘과로와 스트레스’에서 찾았고, 사업주로서 공무원의 안전 및 건강 보호·증진의 책무가 있는 정부가 초과 근로에 시달리는 공무원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1) 류 씨는 자신과 짝꿍을 생각하며 ‘반값 통닭’을 떠올렸다고도 했다. 가성비 좋은 통닭처럼 자신과 동료도 가성비 자체가 가치인 인력처럼 느껴졌다. 일주일에 2.5일씩 근무하다 주 5일을 나와 초과 근무를 했다.

인력 충원을 요구했지만 이 요구는 인사과의 귓등에도 닿지 않았다. 3월로 예정된 결혼을 미뤄야 했을 정도로 일이 쏟아졌다. 결혼을 위한 준비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미룬 결혼 한 달 전엔 민원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5월 초의 일이다. 금융 사기 관련 보상 문제로 금융위원장을 만나야겠다며 1년을 민원실로 찾아오던 악성 민원인이었다. 류 씨는 그날도 민원인 A씨에게 민원 처리 결과를 안내하던 중이었다. A씨는 류 씨의 말을 듣지 않고 소란을 피우더니, 강제로 추행까지 했다. A씨는 이날 후로도 민원실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성추행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민원실에서 혼자 민원 업무를 하던 류 씨는 인원 충원을 요구했으나, 공익근무요원 한 명이 배치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공익근무요원은 그 역할 상 경비나 경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류 씨는 두 달 내내 불안과 공포 속에 있어야 했다. 결국 병을 얻어 병가를 가기까지 두 달 동안 성추행 가해자와 마주해야 했던 류 씨는 “시선제 공무원이 조직에서 맴도는 사람들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보호받지 못하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 계기였다”라고 말했다.

“기관에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어요. 상부는 제 성추행 피해 사실 보고를 묵과했습니다. 제가 상담기관이라도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관련 기관 연락처를 전달할 뿐이었습니다. 사건 이후에도 똑같이 출근하고, 초과 근무를 하고, 가해자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제 신변 보호를 한동안 담당하던 경찰은 인사과에 얘기해서 부서 이동을 하라고 권유했지만, 인사과에선 민원실을 희망하는 사람이 없다며 제 부서 이동은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시간 확대라도 해달라 요청했지만 초과근무로 버텨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인사과장은 퇴사하고 다시 (전일제) 시험을 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어차피 시선제는 승진도 근속 승진만 가능하다고 하면서요. 병가에서 복귀 후에도 부서 이동은 어려웠어요. 그런데 마침 복귀 후 얼마 안 있다가 장관과의 대화 자리가 마련됐는데 제가 손을 들고 이 이야기를 한 거죠. ‘인사과장, 이게 무슨 일이야? 확인해봐’ 장관님의 이 한마디에 저는 그렇게 요청하던 부서 이동을 하게 됐습니다.”

류 씨가 A씨를 상대로 건 소송은 지난 5월에서야 1심 판결이 나왔다. 사건이 일어난 지 딱 2년 후였다. A씨는 강제추행이 인정돼 500만 원의 벌금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받아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A씨는 항소했다고 한다. 류 씨는 이같은 사실을 전하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소송에 나섰지만, 소송 과정에서 조직으로부터 입은 상처도 컸다”라며 “소송이 지속될수록 마음의 병도 커질 것 같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2

김복자(47) 씨는 1년 전인 지난해 9월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 불면, 우울과 불안, 대인기피, 발작 등이 그녀의 증상이었다. 직전 인사발령이 있던 지난해 8월 9일부터 10일간 잠을 못 잤다. 김 씨는 그 10일간의 총 수면 시간이 6시간이 채 안 됐다고 했다. 이때부터 빠르게 몸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무기력과 피로가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강한 강도로 찾아왔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한 결과, 내분비계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도 일주일 간격으로 병원을 찾고 있지만 호전은 더디기만 하다. 유방암 수술 후 52kg을 유지하던 김 씨의 몸무게는 1년 사이 15kg 이상 증가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인사발령 후 오기로 버티던 직장생활이었지만 지금은 휴직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 9월 16일엔 산재도 신청했다.

지난해 8월 김 씨는 국민신문고 담당 민원팀으로 배치된다는 발령과 함께 근로시간 역시 기존의 주 35시간에서 20시간으로 축소될 것이라고 통보받았다. 주 35시간 근무를 원했던 다른 시선제 공무원 동료들은 원하는 근무 시간대로 일하게 됐지만, 김 씨만은 예외였다. 인사팀에 항의했지만 ‘정원이 없다’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한정된 정원은 곧 한정된 근로시간을 의미하고, 이 파이는 임용권자가 나눈다. 현재로선 선택이 거의 불가한 근로시간 때문에 시선제 공무원들은 언제나 긴장 상태에 놓인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시간선택제 공무원들 대부분 오래 일하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대상으로 한 시간선택제 제도 관련 설문조사에서 90%(1,086명)의 시선제 공무원들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를 중단하고 제도를 개정을 할 수 있다면 ‘주 40시간 근무’가 가능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현행 유지를 원하는 시선제 공무원은 9%(101명)였다.(2) 이성철 한국노총 공무원본부 정책실장은 “적극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묶어두는 제도는 처음 봤다”라며 “현장에서 시선제 공무원 제도는 대표적으로 실패한 공무원 채용제도”라고 말했다. 김복자 씨는 근로시간 결정 기준 또한 명확하지 않고,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이전에 민원 업무를 2년 이상 오래 했어요. 기피 업무기 때문에 다음 인사발령에서 우대하게끔 돼 있는데, 오히려 근무 시간이 반으로 줄었어요. 원하지 않았는데도요. 허드렛일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이건가 허무했어요. 일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산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어요. 인사팀에 항의도 해보고, 인사소청도 해봤는데 근무 시간은 임용권자가 정하는 거라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식이에요. 소청심사위원회에선 다음 전보 때는 주 35시간 근무 시간을 권고했는데, 다음 전보가 없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때부터 억울해서 잠을 못 잤어요.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더 이상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요.”

주 35시간을 일하다 주 20시간으로 근무 시간이 줄다 보니 그만큼 급여도 줄었다. 8급 9호봉을 적용받는 김 씨의 급여는 근무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전일제의 절반인 120만 4,400원을 받는다. 김 씨는 초과 근무라도 해서 적은 임금을 보충하고 싶지만, 현재 일하는 부서에선 절대 초과 근무를 할 수 없게 한다고 했다. 금리 상승기 기준금리가 올라 대출이자까지 급등한 상황에서 김 씨의 가계도 휘청이고 있다. 이자 상환 압박이 턱밑까지 차올라 당장 알바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건강도, 직장에서의 상황도 모든 게 녹록지 않다.

김 씨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국민신문고 관련 지원업무를 맡고 있다. 국민권익위가 각 부처에 배분한 국민신문고를 분류해 가장 적합한 과를 찾아 보내는 작업이다. 쉽게 담당 부서가 정해지는 신문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관련한 법과 사례들을 찾아 겨우 맞는 부서를 찾아도, 해당 부서에서 왜 우리 업무냐 따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루에 약 1천 건씩 들어오는 신문고 분류 작업을 주 20시간 일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 2명이 맡는다. 김 씨는 수요일 오후부터 목요일과 금요일 출근하고, 김 씨의 짝꿍은 월요일부터 수요일 오전까지 근무한다. 혼자서 일하다 보니 돌발 상황이 생기면 대처가 어렵고, 함께 의논할 사람도 없어 스트레스도 심하다.

마흔세 살에 시선제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 김 씨는 7년 정도 여러 관공서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야근이 많은 일반 직장을 피하다 보니 관공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그때부터 알음알음 3개월, 5개월짜리 계약직 일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직업안정성을 기대하며 시선제 공무원이 됐지만 노동조건은 계약직 때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차별 역시 그대로다. “2.5일 일하고 다음 주에 출근하면 팀 분위기도 못 읽겠고, 일도 어색하고요. 제가 팀의 이방인처럼 느껴져요”라며 김 씨는 박탈감을 호소했다. 그녀는 시선제 공무원 제도가 정말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일자리가 맞는지도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온전히 일하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배려가 없어요. 계속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커리어를 위해서도, 경제적으로도 온전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한데 주 20시간 일자리로는 부족하죠. 시선제 공무원들이 맡는 업무도 우리는 ‘온 동네 쓰레기’라고 불러요. 그만큼 고생대로 하고, 성취가 없는 업무만 맡으니까요. 좋은 여성 일자리라고 홍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3

서지원(가명, 42) 씨는 8살, 7살, 5살,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다. 2018년 5월 해양경찰청에 임용돼 보험 및 연금 관련 업무를 하다 육아휴직에 돌입한 게 지난 7월 31일의 일이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시작한 육아휴직이었지만,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해양경찰청 육아휴직 개시일 하루 전인 7월 30일, 근무 시간 변경을 발령하며 그녀의 근무 시간을 주 35시간에서 주 20시간으로 줄인 탓이다. 일하면서 3년간 근무 시간이 다섯 번 바뀌었지만, 당사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근무 시간을 줄여버린 건 처음이었다. 육아휴직 시작일 당시 임금이 육아휴직수당을 계산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수당은 거의 반토막으로 삭감되고,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경력산정 기간이 단축되는 피해가 예상됐다. 그녀는 조직이 왜 이런 불이익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사팀은 시선제 공무원의 근무 시간을 다룬 공무원 임용령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공무원 임용령 제3조의3제2항은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의 범위에서 임용권자 또는 임용제청권자가 정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임용권자가 정한다는 조항은 시간을 선택한다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취지를 무력하게 한 지 오래다. 서 씨는 해양경찰청에 인사고충 심사청구서를 제출했지만, 해양경찰청은 “현재 법령상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에게 근무 시간 선택권을 부여하거나 행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부결시켰고, 인사혁신처에서도 이미 기관의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서 씨는 대응을 위해 변호사까지 선임했지만, 곧 접었다. 서 씨는 “조직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노동시간 및 노동조건 변경은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고, 위반 시 근로기준법 제17조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 임용 관련 법령은 당사자의 동의나 협의 절차를 규정하는 법령이 없다.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기준인 근로기준법에도 한참 못 미치는 제도적 오류가 공직사회 한편에서 억울한 이들을 만들고 있었다. 서 씨가 더욱 분노한 지점은, 인사이동에 대한 소식을 미리 알고 3개월 전부터 인사팀에 각종 자료를 제출해 근로시간 단축의 부당함을 어필했다는 점이다. 서 씨는 시선제 당사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원하지 않는 점, 인사혁신처가 배포한 「시간선택제 공무원 인사운영 매뉴얼」에서 경력인정은 휴직 당시의 근무기간으로 산정을 안내한다는 점, 2019년 〈공무원 임용령〉 개정으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근무 시간이 20시간이라는 기준이 없는 점, 휴직자는 정원 외 인원이라는 점 등을 인사팀에 알렸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시선제 공무원 중 3~40%가 휴직 경험이 있는데, 휴직 직전에 근로시간을 줄여버리는 사례가 있었냐 따졌죠. 그런데 기관 재량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육아휴직으로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데 왜 저한테 그런 불리한 해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피해를 주는 거라네요. 주 20시간 시선제로 채용됐으면, 주 20시간짜리 공무원이라서 육아휴직도 주 20시간으로 가는 게 맞대요. 20시간짜리 공무원이 주 35시간으로 휴직을 하면 그만큼 근속 연수가 쌓이는 것이어서 승진에서 다른 시선제에 비해 혜택을 보는 거래요. 저는 인사운영매뉴얼에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건데, 모든 게 기관 재량이라면서 저에게 왜 매뉴얼을 적용해야 하냐고 하더라고요. 이 일 겪고 초반엔 유서 쓰고 아이들 데리고 죽을까도 생각했어요. 3개월 동안 자료를 만들고 계속 찾아가 이야기를 했는데 제 이야기가 인사팀 문앞에서 묻힌 거죠. 몇 사람 더 죽으면 우리 목소리가 들릴까요?”

결국 주 20시간의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월봉급액이 정해졌고, 육아휴직수당이 나오는 1년간은 월 60만 원씩 나왔다. 이는 공무원이 육아휴직수당으로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이다. 하지만 육아휴직수당은 13개월부터는 지급되지 않아, 이제 서 씨가 기초수급자로서 지원받는 월세 30만 원과 정부의 양육·장애수당 60만 원 정도가 생활비의 전부가 될 예정이다. 서 씨는 인터뷰 전날에도 동사무소에서 쌀을 받아왔다며, 한 달에 2주 정도는 통장에 잔고가 하나도 없어 한 푼도 못 쓰고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선천성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첫째 아이의 병원치료도 중단했다. 서 씨는 나름 공무원인데 기초수급자로 사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시선제 공무원 임용 전 대기업과 은행을 다닐 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자녀들을 더 잘 돌보고 싶어 택한 시선제 공무원은 평범한 꿈도 앗아갔다. 시선제 공무원임에도 밤새 야근을 했고, 어깨와 손가락 통증 때문에 찾은 병원에선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았다. 육아휴직 전 일방적 근로시간 단축을 겪고 나선 정신과도 찾았다. 시선제로 일하며 꾹꾹 누른 감정이 터져버린 것 같았다. 차별과 무시의 원인을 따라가면 시선제 제도 자체에 있는 듯했다.

“전일제 공무원들 정말 일이 많아요. 국회에서 국정감사라도 있으면 풀대기인데다 평소에도 자정까지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제가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면 일찍 간다고 생각하지, 늦게 간다고 생각 못 해요. 같은 부서에 있어도 제 원래 퇴근 시간을 잘 몰라요. 본인들도 힘드니까 시선제를 배려하기 어렵죠. 전체 공무원 조직에서 시선제는 만만한 직군,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죠. 그리고 계산기 두들기면 어차피 나보다 선임될 것 같진 않잖아요. 9년 동안 9급인 시선제 공무원도 있던데요. 뭐 하러 그 재량이라는 것을 좋게 적용해 줄까요.”

#4

시선제 공무원은 2014년부터 6,500여 명이 채용됐지만, 9년이 지난 현재 절반 가까운 인원이 임용 포기 또는 퇴사해 현재는 3,600여 명이 남아있다. 낮은 소속감과 박탈감, 노동 조건 등의 문제가 지적됐다. 지방직의 경우 2017년 말 임용령상의 시간선택제 의무채용 비율 규정을 삭제하자 2014년 이후 매년 1천여 명씩 선발하던 채용 규모는 2018년 21명으로 급감했고, 2019년에는 채용하지 않았다. 국가직의 경우 2020년부터는 인사혁신처에서 일괄 채용하지 않고 기관 개별 채용으로 바뀌었다.

전체 공무원 114만 3,035명 중 이들은 아주 소수를 차지한다. 정성혜 전국시간선택제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시선제 공무원 제도는 완전히 방치됐다”라며 “공무원 연금을 적용하거나 공무원임용령 개정을 통해 최대 주 35시간까지 근무 시간이 확대된 것은 성과지만 가장 근본적인 근로시간 주권 보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현재 임용권자가 근로시간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는데 적어도 당사자와 협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정부를 상대로 조직된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시선제 공무원이나 조합원들이나 지자체, 중앙행정기관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고 소수이기 때문에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정 위원장은 현장에서 제도가 기형적으로 정착된 이유에 대해 준비 부족을 들었다. 전일제로 일하다 한시적으로 시선제 공무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를 활성화한 뒤에 채용형을 만들었으면 이 정도로 차별적인 구조가 자리 잡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시간선택제 적합 직무라는 특정한 직무를 전일제 업무에서 분리하기 시작한 시범사업에서부터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였다”라며 “직무에 따라 고용형태와 채용절차를 분리하고, 노동조건에 차등을 주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공무원 채용 구조 자체를 끊임없이 분리하고, 책임과 권리에서 소외된 하위 직군을 만들면서 노동유연화를 시도한 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애초의 목적이었던 일·가정 양립을 위해서라면 전일제 공무원이 시간선택제로 이동하고, 시간선택제 공무원이 다시 전일제로 옮기는 것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다. 여성을 위한 일자리의 전제는 여성 노동자가 시간 주권을 갖고,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게 노동 형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1) 〈치유와 회복을 위한 고 천민우 주무관 과로사 원인조사위원회 조사결과 보고회〉, 인천시 공무원 코로나19 과로사 재발방지 및 처우개선을 위한 대책위원회, 2022.4.4.

(2) 전국시간선택제공무원노동조합이 지난해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총 1,2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 드림키즈

    제가 애 다키운 다음엔 퇴직밖엔 없는 제도라면 그냥 일용직을쓰지 왜 정규직으로 뽑았나요? 애다키운 사람은 어떻게할건지요

  • 강민

    하..... 이런일이...슬프네요..왜 이 나쁜 제도롤 안고치는 건가요... 빨리 바로 잡아주세요!

  • 정OO

    글을 읽는데...참 눈물이 나네요...
    취업사기란 말이 찰떡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