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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앞, 먹고, 자고, 싸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곳

[르포] 파업 30일, 농성 26일, 단식 8일…“투쟁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날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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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돔’이 한반도를 덮친 올해 여름.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이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내리쬐는 햇빛 사이에서 천막과 선풍기에 의지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공단이 임대한 사무실에 앉아, 민간위탁 업체의 독촉에 하나의 상담 전화라도 더 받기 위해 그리고 그 전화를 빨리 끊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화장실조차 순번을 정해놓고 가야 했던 노동자들이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 모였다. 공단이 건물 화장실 이용조차 못 하게 하지만, 노동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농성을 계속할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해가 져도 날씨가 푹푹 찌는데 어쩐지 노동자들의 투쟁 열기에 공기가 더 뜨거운 듯하다.

  경찰들이 농성장 출입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농성장 출입이 어려울 수 있겠는데요”

원주의 농성장에 가기 위해서 기차표를 예매해놓고 청량리역을 가는 중에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30일) 예정된 민주노총 주최의 결의대회로 경찰이 전날부터 통제를 강화해 농성장에 못 들어올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일 자정, 경찰 차벽 15대가 농성장 뒤편을 가로막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단식 7일 차였던 이은영 수석부지부장의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경찰 펜스를 사이에 두고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우선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여러 장애물을 뚫고 농성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로 같으면서도 규칙이 있게 들어선 천막들이 마치 하나의 마을을 이룬 듯했다. 농성장은 큰 천막들로 이어져 '알파벳 T‘자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T'의 좌측엔 본부지회, 우측엔 부산지회와 대구지회가, 중앙엔 경기지회가 각각 지역별로 조를 정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천막 끝에는 1인용 텐트 10여 개가 줄지어 있다. 현재 농성장에는 매일 50명 정도의 조합원들이 머무르고 있다. 지난 22일 원주시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하면서 농성장의 인원수를 기존 150명에서 3분의 1로 줄인 까닭이다.

구조가 대충 파악이 되니, 겨우 이은영 수석부지부장이 있는 농성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근처엔 조합원들을 비롯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있었다. 경찰의 출입통제 등으로 농성장 일정은 늘 불안정했다. “오늘 농성장 교대식은 취소됐어요” 근처에 앉아있던 김정도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조직차장이 경찰의 출입 통제로 일정이 변경됐다고 알렸다. 조합원들은 2박 3일씩 교대로 농성장을 지키는데, 이날 오후 1시가 ‘교대식’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농성장 안의 조합원들이 밖으로 나갈 수는 있어도 교대자 수십 명이 농성장에 들어올 수는 없었다. 개인 사정이 있는 일부를 제외하곤 2박 3일을 노숙 농성 했던 조합원들은 당연하단 듯 농성장에 며칠 더 머무르기로 했다.

  지난 29일 오전,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이 투쟁 상황 보고를 듣기 위해 모여 있다.

그리고 이날은 공단과 노조 간 교섭도 예정돼 있었다. 올해만 세 차례 파업을 부른 건강보험공단이 하루 아침에 직접고용 요구에 대한 달라진 태도를 보일 리 없었다. 이 수석부지부장의 단식도 일주일째가 된 터라, “아직 점심을 못 먹었는데 확 우리도 굶어버릴까요”라는 농담에 조합원들 사이에서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라는 말도 튀어나왔다.

“2박 3일 농성장에서 잤는데, 하루 더 자기로 했어요. 수석부지부장님이 단식을 하니 힘들어도 견뎌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더라고요. 점심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단식이 되고 있네요. 나가서 음식을 사오면 다시 농성장에 못 들어 올까봐, 그 때문도 있죠”
- 이OO 부산지회 조합원


경찰은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조합원의 농성장 출입을 막기도 해, 밥을 사오는 것도 불안한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투쟁 자금이 부족해 이번 달 초부터 아침식사를 없앤 상태기도 했다. 그래도 ‘나머지 사람들은 먹어야 한다’라는 수석부지부장의 만류에 오후 2시가 좀 넘어, 김밥이 농성장에 도착했다.

조합원들 중에는 화장실 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이뇨작용이 활발한 커피를 입에도 안 대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다니는 화장실은 눈앞에 보이는 공단 본부 건물이 아닌, 길 건너편의 상가 건물에 있다. 상가 주민의 도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으나,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공단 건물 주변으로 농성장 텐트와 또 다르게 생긴 파란색 천막들이 줄 지어 서로 꽁꽁 묶여 있기 때문이다. 농성장 근처 공단의 ‘천막 펜스’ 넘어로는 공단 직원들 네 명과 경찰 한 명이 보인다.

“사실 가장 기본적인 먹고, 자고, 싸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공단 화장실은 못 쓰고, 상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지만, 죄송하더라고요. 너무 덥기도 하죠. 옷을 몇 벌을 갈아입어도 땀이 주룩주룩 나네요”
- 경인지회 조합원


  지난 23일, 경찰에 의해 농성장 출입이 막히자 조합원들이 이동했던 공단 옆 비탈길. 28일부터 경찰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23일 농성장 출입이 봉쇄돼 조합원들이 공단 옆 비탈길을 올라 화제가 됐던 곳에도 경찰이 노란색 라인을 쳐놓고 지키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 사건을 ‘좀비’ 영상이라고 부른다. 이날 수녀·신부들도 농성장을 찾았으나 이중 삼중으로 쳐 놓은 펜스 앞에 가로막혔다. 경찰이 출입을 금지하자 이들은 연좌 농성을 벌였고, 펜스를 사이에 두고 조합원들과 약 1시간가량 약식집회를 벌였다.

“와! 신나게 상담하자”

농성장의 일정은 아침 8시 30분부터 40분가량 아침 피켓 선전전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결의대회를 진행한 뒤 행진도 벌이는데 거리두기 격상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통제를 강화하면서 현수막 만들기, 구호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도 이날은 진행되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조합원들은 지회별 천막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더위에 지친 이들은 선풍기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저녁 문화제를 기다렸다.

이날 저녁 집회에는 민중가요 노래패 ‘꽃다지’가 참여해 음악회를 열 예정이었다. 농성장 출입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들러 더니, 결국 간단히 집회만 진행됐다. 여기에는 경인지회 민중가요 몸짓패인 ‘와신상담’이 나와 몸짓을 선보였다. ‘와신상담’은 사자성어로 본래 뜻이 있지만, “와! 신나게 상담하자”의 줄임말이라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저녁 집회에서 경인지회 민중가요 몸짓패 '와신상담'이 공연을 하고 있다.

또한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로 고공농성 227일을 벌인 박문진 씨도 집회에 참석해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응원했다. 그는 “투쟁은 끝이 있다. 파업 투쟁이 끝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동지들의 분노와 함성이, 눈물과 땀방울이 반드시 길이 될 것”이라며 “우리가 모두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직접고용 쟁취해 평등사회 거름 되자”라고 외쳤다.

이날, 이은영 수석부지부장의 남편은 편지를 보내왔다.

“당신의 뒤에는 내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을 거니까. 후회 남기지 않도록, 나중에 누구에게도 당당할 수 있도록 당신이 하고 싶은 만큼, 당신이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하세요.”
- 편지 원문 발췌


한편 민주노총 주최의 건강보험고객센터 직접고용 쟁취 결의대회가 예고된 오늘(30일), 민주노총은 규모를 대폭 축소해 1인 시위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원주시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유지하면서 유독 집회만 4단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농성장에서 진행된 집회에는 민주노총 가맹, 산하조직 대표자를 중심으로 많아도 20명의 사람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청와대, 국민건강보험의 각 지사, 민주당사·국회의원 사무실 등 전국 주요 거점에서 1인 시위를 전개했다. 민주노총 온라인시위 플랫폼에 따르면 전국 1700여 명 가까이(오후 3시 기준)가 1인 시위에 참여 중이다.

  경찰이 수녀·신부들의 지지 방문을 막자, 펜스를 사이에 두고 약식 집회를 열었다.


  29일 저녁 집회에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 뒤로 펜스와 경찰이 보인다.


  농성장 근처에 부착된 선전물


  농성장 근처에 부착된 선전물


  농성장 근처에 부착된 선전물

  • 박봉규

    무조건 정규직 요구는 무리일듯

  • ㅋㅋ

    무조건 간접고용은 착취인듯

  • 단결투쟁

    여지껏 뭘 읽고 뭘 들었는지.
    무조건이 아니었는데. ..
    직고용 해야만 하는 당연함을 외쳐도
    그대들이야말로 무조건 반대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