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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의 내부 고발, “다시 싸워보려 합니다”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③] 부천 한부모가족복지시설과 운영 재단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오선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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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

①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시설에서 겨우 1년을 살았습니다
② ‘교회에 가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모자원에 입소했습니다
③ 15년간의 내부고발, “다시 싸워보려 합니다”
④ 토착 기업이 된 모자원, 비리와 세습의 역사
⑤ 미혼모는 탄생과 동시에 어머니로서 추방됐다
⑥ 정부가 시설에 숨긴 0.3%의 한부모 여성들


오선희(65) 씨는 복지시설 운영 재단을 상대로 거침없이 비리 고발을 이어간 내부고발자다. 1999년 입사해 2015년 정년퇴직하기까지 오 씨는 언론, 관계 부처 등에 재단 비리를 폭로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동안의 탄압을 생각하면 10년 넘게 시설에 남아 문제를 제기한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큰 재단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았지만 적게나마 기록으로 남아있고 뒤이어 싸우는 사람들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오 씨는 부천의 유일한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인 새소망빌라가 설립된 1999년부터 그곳에서 일했다. 새소망빌라는 2017년 4월 은가람빌로 이름을 바꿨다. 은가람빌을 운영하는 ‘재단법인 월드선교회유지재단’은 1961년, 아동복지시설 설립을 시작으로 부천에서 각종 사회복지사업을 확대하며 지역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파란 눈의 선교사들은 죽거나 고향으로 돌아갔고, 선교사들과 함께 일했던 직원과 시설 출신의 인물들이 재단의 요직을 맡고 있다.

아동복지시설 ‘새소망의집’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거나, 여러 이유로 떠도는 아동들을 위한 보육원이었다. 새소망의집에 머물던 이들은 ‘새소망의집은 따뜻했고, 먹을 게 풍부했으며, 선생님들은 ‘천사’처럼 다정했다(1)’고 기억한다. 하지만 해당 시설은 2017년 초 원생 간 문제와 각종 비리로 설립 56년 만에 폐쇄됐다.

오 씨는 새소망빌라의 문제뿐 아니라 새소망의집 문제도 적극적으로 알리며 시설 안 아동 학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새소망의집 아동들은 시설 직원들의 묵인·방치 아래 폭력과 각종 범죄에 노출됐다. 2015년엔 원생 간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고, 이 사건과 별개로 퇴소한 아동 1명이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오 씨는 재단이 애초 설립목적을 잃어버린 채 시설 입소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겼다고 지적했다.

“사회복지시설 중 장애인 시설 뺨치게 지원금이 모이는 곳이 보육원입니다. 보육사들이 처음엔 좋은 마음으로 돌봤겠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재단의 주인이 되니 끼리끼리 뭉쳐 사익을 탐하게 돼 버린 겁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주고, 쏟아지는 후원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미혼모도 고아도 다 돈줄로 전락해버린 거죠.”

시설장으로 모십니다... 퇴직 공무원 ‘전관예우’

오 씨는 재단 비리를 아무리 외치고 다녀도 재단이 제재를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신고자가 불이익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재단이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배경으로 공무원들과의 유착을 꼽았다. 실제 부천시에서 사회복지시설과 관련된 업무를 했던 몇몇 공무원들은 퇴직 후 재단이 운영하는 시설에 둥지를 틀었다. 아동복지과 담당 주사는 재단 어린이집 원장으로, 여성정책과 보육업무 담당 공무원은 아동복지관에 관장으로 취임했다. 공무원의 자녀들이 시설 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이밖에 재단은 자격 없는 직원을 채용해 큰 문제를 일으켰다.

2013년 재단은 재단 감사의 부인 P씨를 새소망의집 자립전담요원으로 채용했다. 재단 감사 역시 공무원이었다. 재단은 “자립지도원(과장급, 팀장급)은 경력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운영규정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사 근무 경력이 전혀 없는 P씨를 채용했다. 자립전담요원은 퇴소할 아동들의 자립 프로그램 운영이나 사후지도 등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보상도 크다. P씨가 일하는 동안 퇴소한 아동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당시 새소망의집에서 오 씨와 함께 재단 문제를 제기했던 한 직원은 자립전담요원이 아동에게 필요한 적절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2)

오 씨가 시설의 비리를 폭로해도 오 씨의 외침은 시설 안에서만 머물렀다. 어떤 지도와 시정도 없이 시설장만 오 씨의 폭로를 알게 되는 식이었다. 일반 공무원에게 민원을 넣어도 소용이 없자 시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공무원 출신 시장은 오 씨를 달래며 자기도 그 자리에 있어봤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오 씨는 시설 안 내부의 실상을 밖으로 드러내는 루트가 망가졌다고 했다.

“2000년 말에 처음으로 신문고를 통해 시설 문제를 지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요청은 경기도청으로 보내졌고, 경기도청은 다시 부천시청으로, 부천시청은 다시 시설로 보내더군요. 부천시 여성정책 담당 공무원의 딸이 새소망빌라 직원이었는데 제 앞으로 문서 하나를 떨구더라고요. ‘이렇게 신문고에 올려서 민원인으로 찍히면 다음부터 당신의 고발은 공무원들이 읽지도 않을 것’이라고 충고하면서요.”

오 씨는 재단과 재단의 시설을 공동의 우물에 빗대었다. 재단 이사들, 관련된 교회들, 공무원들이 목을 축이는 우물이라는 것이다. 우물에 물을 대는 건 시설의 입소자들이라고 했다. 오 씨는 요양병원에서 노인들 머릿수대로 지원금이 나오듯 한부모가족복지시설에서도 머릿수대로 지원금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암암리에 자녀가 몇 명인지가 입소 자격의 기준이 된다고 했다. 아직 임대주택 정책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 갈 곳 없는 미혼모나 한부모가족은 시설로 몰렸다. 새소망빌라의 경우 입소 정원이 24세대, 58명이었는데 2000년대 초반엔 정원이 꽉 찼고 대기자가 10명씩 있었다. 자연스레 시설이 입소자를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복지가 필요한 사람이 혜택을 못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 시설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을 받는 게 아니라 시설이 구워삶기 좋은 사람들을 받았습니다. 입소 면접을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단체 생활 부적격자라고, 너무 모자란다고, 너무 나이가 많다고 입소를 막았어요.”

입소자 길들이기

오 씨에 따르면 시설장들은 후원품과 후원금으로 입소자들을 길들였다. 실제 새소망빌라에서 생활했던 퇴소자들에 따르면 새소망빌라 원장은 입소자들을 곧잘 불러 후원품을 안겨줬다. 그때마다 ‘이거 너만 주는 거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사과 한 상자, 감자 몇 개, 기저귀 한 팩, 분유 한 통이 원장의 뇌물 아닌 뇌물이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시설로 온 입소자 중엔 상당수가 부모나 다른 가족이 없었다. 원장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입소자들은 원장의 말을 잘 따랐다.

“입소자들은 엄마, 아빠가 생긴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어요. 먹을 것도 주고 저금도 해주니까 부모님이 보살펴 주는 것 같대요. 어린 입소자만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서른이 넘어도 그렇게 느낀대요. 사실 이런 지원들이 국가에서 나오고, 선물들은 후원인데 마치 원장한테 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들잖아요. 길들이기 딱 좋은 거죠.”

오 씨는 시설로 들어온 후원품을 원장이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는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후원품이 들어오면 직원을 불러서 먼저 고르게 했어요. 여자들이 지내는 곳이다 보니까 화장품, 옷 같은 게 꽤 들어왔거든요. 제가 이까짓 팬티 한 장에 1,000원밖에 더 하냐. 이거 직원들 가지라고 주신 거 아니다, 건들지 말자고 하니 ‘네가 나보다 믿음이 좋니’라면서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오 씨는 재단이 후원품을 어떻게 예산으로 바꿔치기하는지도 설명했다. 여름에 닭 100마리가 들어오면 이를 후원품으로 처리하지 않고, 시설이 산 것으로 영수증을 끊고 예산을 청구하는 식이었다. 다양한 후원 물품을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처리했다. 오 씨는 직접 영수증 처리를 한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부정한 회계 처리에 대해 철저하게 모르쇠로 일관했다. 비리를 이야기해도 ‘알 필요가 없다’라는 말만 돌아왔다. 영수증 처리만 제대로 잘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자기들은 행정만 하겠다는 거예요. 행정기관, 사법기관 따로 있으니 고발은 딴 데 가서 하라는 거예요. 고발하는 동안 정말 비참했어요. 부천시에서 알아주는 푼수, 오지랖, 찌질이의 표상이 됐죠. 다른 내부고발자들처럼 저도 정신과 상담을 꽤 오랫동안 받았습니다.”

내부 고발을 15년간 지속한 오 씨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소송에도 대응해야 했다. 모욕죄와 무고죄,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겪었지만 오 씨는 “그 정도는 각오했다”라며 ‘사소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오 씨는 이미 퇴직했지만, 또 다른 단계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종교재단이라고 해도 공공의 목적에 맞지 않게 시설을 운영할 경우, 사법적인 고발을 했을 때 고발인이 무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이 생겼어요. 법이 바뀐 2017년 전엔 형사고발을 하거나 검찰로 가져가면 제가 무고를 당했거든요. 그동안 법이 못 따라왔죠. 그리고 횡령·배임죄가 확대돼 의도에 맞지 않게 쓰이는 것들도 횡령·배임에 묶이게 됐어요. 저는 이전까지 계속 돈, 후원품에 국한돼 증거를 모으고 고발했는데 이제 고발의 차원을 높이려고 합니다. 공적 자산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저는 말할 것이 남았고, 그래서 다시 싸워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 씨는 제도의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사외이사 제도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단이라면, 사외이사를 반드시 세우고 이들에게 감시를 맡겨야 한다고 말이다.

1. http://www.beminor.com/news/ articleView.html?idxno=11497
2. http://m.bucheon21.com/14956 참고
  • 문경락

    종교재단이라고 해도 공공의 목적에 맞지 않게 시설을 운영할 경우, 사법적인 고발을 했을 때 고발인이 무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이 생겼어요. 법이 바뀐 2017년 전엔 형사고발을 하거나 검찰로 가져가면 제가 무고를 당했거든요. 그동안 법이 못 따라왔죠. 그리고 횡령·배임죄가 확대돼 의도에 맞지 않게 쓰이는 것들도 횡령·배임에 묶이게 됐어요. 저는 이전까지 계속 돈, 후원품에 국한돼 증거를 모으고 고발했는데 이제 고발의 차원을 높이려고 합니다. 공적 자산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저는 말할 것이 남았고, 그래서 다시 싸워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 씨는 제도의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사외이사 제도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단이라면, 사외이사를 반드시 세우고 이들에게 감시를 맡겨야 한다고 말이다.

  • 중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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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지만 적게나마 기록으로 남아있고
    뒤이어 싸우는 사람들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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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렇습니다.
    싸우는 과정에선 (아무것도 못 얻는건) 아닙니다.
    기록 흔적이라도 남게되죠.
    그것이 작게나마 무기가 되고,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
    조금씩 전진할 힘이 되며, 상대도 움츠려드는 거구요.

    그렇다고 팍팍 나서선 안되요.
    작은 기록(성과)를 올렸기에 조금씩 작게 움직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릇은 작게 확보해 놨는데,
    느닷없이 크게 전진하면 그릇이 넘치고 엎질러질수 있겠죠.

    기사의 주인공 오씨란 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