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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시설에서 겨우 1년을 살았습니다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①] 서울의 한부모가족복지시설에서 2019년 퇴소한 J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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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

①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시설에서 겨우 1년을 살았습니다
② ‘교회에 가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모자원에 입소했습니다
③ 15년간의 내부고발, “다시 싸워보려 합니다”
④ 토착 기업이 된 모자원, 비리와 세습의 역사
⑤ 미혼모는 탄생과 동시에 어머니로서 추방됐다
⑥ 정부가 시설에 숨긴 0.3%의 한부모 여성들


“서울에선 여기만큼 큰 곳이 없어요.” 원장이 자부심 있게 소개한 시설의 평수는 5평이 채 안 됐다. 작은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원룸이었다. J(27)씨의 경우 자녀가 한 명이었지만, 같은 평수의 비슷한 공간에서 두 명의 자녀와 사는 사람도 있었고, 독립된 공간이 필요한 중학생 남매와 함께 사는 사람도 있었다.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최소 주거 면적은 1인 기준 4.2평, 2인 기준 7.86평, 3인 기준 10.89평이었다. 최소 주거 면적 기준을 채우지 못한 시설이었지만, 가난한 한부모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시설이 제공한 방이 그렇게 텅 빈 곳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냉장고, 세탁기처럼 필수적인 생활 가전도 직접 마련해야 했고, 작은 살림살이들도 모두 새로 사야 했다. 후원으로 들어왔다는 에어컨은 단 3대뿐이어서 없는 세대가 훨씬 많았다. J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집안 살림을 어렵게 채워놓았다. 냉장고, 세탁기, 밥솥, 각종 식기와 주방 도구, 텔레비전, 책상을 손수 마련했다.

어린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나면, 그 좁은 공간에서 J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가 자는 깜깜한 공간에서 J씨는 겨우 스탠드 불 하나를 켜고 생활했다. 세면대도 없는 좁디좁은 화장실에선 아이를 씻기기도 어려웠다. 온수 조절이 잘 안 돼 차가운 공기에 아이를 오래 세워두게 될 때마다 J씨는 샤워기를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J씨가 시설의 상태보다 싫었던 건 입소자들을 대하는 시설의 시혜적 태도였다. 시설 입소자를 응당 가난해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입소자들은 경제관념이 없다고 여겨서일까. 입소자들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면 매일 가계부를 작성하게 했고, 영수증을 첨부해 제출토록 했다. 시설의 직원들은 입소자들을 교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생활을 염탐하고 충고했다.

“메신저 프로필에 아이와 놀러 갔다 온 사진을 올리면 거길 어떻게 갔냐고 물어봐요. 무슨 돈으로 갔냐는 말이죠. 아무리 돈이 없어도 여름에 수영장 한 번 못 다녀오나요? 다른 집 엄마는 음식 사진을 올려뒀는데 위화감을 조성하니까 프로필 사진을 지우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대요. 비싼 음식도 아니고 고작 돈가스로 그러는 것들이 우리는 너무 황당했어요.”

시설 직원들은 입소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J씨는 시설 직원들의 낮은 감수성에 매번 답답함을 느꼈다. 심지어 시설은 아이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에도 무감했다. 시설들은 외부 봉사자를 투입해 아이돌보미 프로그램을 진행하곤 했다. 자녀와 외부 봉사자를 매칭해 소풍을 가기도 했는데, 몇 시간을 아이와 단둘이 보내야 하는 봉사자임에도 어떤 신원 조회도 없었다고 했다. 최근 아동 대상 성범죄가 많아 J씨는 매번 불안에 떨어야 했다.

어쩌다 마주친 한 봉사자는 봉사카페 어플로 신청을 해서 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사전 교육 같은 것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프로그램 중 폭력 등의 사건이 발생해도, 시설 실무자가 전혀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J씨는 시설에 봉사자 신원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늘 하던 봉사단체니, 염려 말라는 말밖엔 듣지 못했다.

“사회복지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감수성이 없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시설에서 살다 보니 감수성이 필요가 없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동안 예산을 주는 지자체의 감시나 감독도 전혀 없었고, 그 누구도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을 안 하니까요.”

J씨는 시설의 반인권적인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모두가 지켜보는 강당에서 반성문 읽는 엄마

그날 저녁, J씨를 비롯한 입소자들은 시설 측의 공지 방송에 따라 자녀들을 데리고 강당에 모였다. 시설 직원은 입소자 한 명이 할 말이 있어서 다들 불러 모은 것이라 말했다. 할 말이 있다던 입소자는 강당 앞으로 나가 준비한 반성문을 읽기 시작했다. J씨에 따르면 반성문을 읽는 입소자의 어린 자녀도 다른 입소자들과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반성문을 읽기 시작하자 입소자들은 수군댔다. ‘무슨 잘못을 한 거야?’ ‘왜 저런 걸 강당에서 읽고 있는 거야?’ ‘애들 앞에서 왜 저걸 읽고 있어야 해?’ ‘마녀사냥이랑 뭐가 달라?’와 같은 말들을 하며 입소자들은 시설 측의 조치를 매우 불쾌해했다.

반성문을 읽는 여성은 자신이 알콜릭이라며 사과했다. 그동안 그녀가 알콜릭 때문에 어떤 소란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시설은 그녀가 아이를 방치한다고 생각했고, 아동학대로 신고를 고민했다. 얼마 후 알콜릭 입소자의 자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보내졌고, 그 뒤 알콜릭 입소자도 퇴소했다. J씨는 자발적 퇴소가 아닌 벌점이 쌓여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저도 처음 입소할 때 벌점 안내를 받았어요. 아주 많은 항목이 있었는데 안 지키면 감점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점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퇴소해야 한다고 했어요. 늦은 시간에 들어오면 안 되고, 밤 10시 이후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 안 된다는 항목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이런 점수들은 그녀들 모르게 기록된다고 했다. 복도마다 CCTV가 있었고, 직원 중 한 명이 그걸 매일 돌려보고 체크한다고 했다. 누가 누구와 만나는지, 누가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 지가 큰 달력 위에 기록됐다.

이러한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던 J씨는 예상보다 더 빨리 시설을 나올 수 있게 됐다. J씨 스스로 임대주택을 알아봤고, 운 좋게 당첨이 됐다. 문제는 보증금이었는데, 시설에 이야기하니 굳이 왜 지금 들어가느냐, 시설에서 18개월 있다가 퇴소하면 자립지원금 500만 원이 나오니 그때까지 기다리란 말을 별 대안도 없이 이야기했다. 결국 J씨는 홀로 보증금을 해결해야 했고, 그 길로 도망치듯 시설을 빠져나왔다. ‘미혼모의 자립을 위한’ 시설이라지만 자립에 대한 어떤 상담이나 지원도 없었다. J씨는 본인이 있던 시설은 미혼모의 자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18개월 지나면 미혼모에게 자립할 수 있는 어떤 자격이 생기는 걸까요? 왜 그때부터 자립지원금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시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가난의 연결 고리를 끊기가 힘든 것 같아요.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고, 그런 정보를 요구했을 때 피곤한 사람으로 찍히고 시설에서 무탈하게 지내기 쉽지 않아지죠. 시설에 있다 보면 아이들이 한 살 한 살 먹잖아요. 자녀가 6세가 지나면 청약 1순위 밖으로 밀려서 임대주택 구하는 것도 어려워져요.”

J씨는 시설에서의 문제를 틈틈이 기록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록을 멈췄다고 했다. 언젠가 시설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드러날 것이란 기대가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관할 구청에 시설의 사생활 침해 문제를 이야기해도 ‘시설 재량’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힘이 빠졌다. 시설에 있는 ‘인권 쪽지함’엔 사무실 번호가 붙어 있었다. 시설의 민원은 결국, 이 안에서만 소문처럼 돌고 돌 뿐이었다. J씨는 커다란 벽을 느껴야만 했다.

“사회는 미혼모가 무슨 말을 하는지 관심이 없어요. 시설 운영과 상충하는 이야기를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더라고요. 시설도, 공무원들도, 단체들도 다들 뜨뜻미지근한 반응들이 나왔어요. 그래서 여긴 건드릴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혼모 시설 문제가 다시 나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임대주택으로 옮긴 J씨는 일도 구했고 육아로 바쁘지만, 숨통이 트이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야 주거 문제가 해결됐다고 느낀다. 그녀는 정부가 한부모가족 지원 정책을 시설에서 다른 대안으로 옮겨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경락

    임대주택으로 옮긴 J씨는 일도 구했고 육아로 바쁘지만, 숨통이 트이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야 주거 문제가 해결됐다고 느낀다. 그녀는 정부가 한부모가족 지원 정책을 시설에서 다른 대안으로 옮겨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홍진규

    주거 문제가 해결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울 때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이
    풍파만난.바다에서의 구명조끼 역할을 한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사회복지 시설이 필요한거구요.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