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독일 함부르크, 에너지 재공영화로 ‘기후’도 ‘노동자’도 지킨다

[특별기획3] “죽은 행성에 일자리는 없다. 그러나 일자리 없이는 생태적인 전환도 없다”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우리의 함부르크, 우리의 에너지’ 참가 단체들이 에너지 재공영화 주민투표 찬성 운동을 벌이고 있다. [출처: @UnserNetzHH]

기후와 노동자 일자리 모두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 함부르크 주민들은 에너지산업 재공영화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이들은 에너지 산업을 사기업이 아닌 공공이 운영해야 기후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를 통해 노동자의 삶이나 사회도 지킬 수 있다고 봤다. 이들은 실제로 에너지 재공영화 후 탈석탄을 법적으로 명문화했고, 해당 산업의 모든 노동자의 고용을 승계했으며,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함부르크시 정부가 에너지 재공영화에 착수한 계기는 2013년 9월 22일에 진행된 주민투표다. 주민들은 50.9% 찬성률로 에너지산업을 100% 재공영화하기로 결정했다.(1) 함부르크 분트, 아딱 등 환경·사회단체들이 ‘우리의 함부르크, 우리의 에너지(UHUN)’(2)라는 연대모임을 결성해 주민투표 운동에 나선 지 약 3년 만의 성과였다. 당시 올라프 숄츠 함부르크 시장(사민당)은 부채만 늘어날 것이라며 완강히 반대했지만, 투표 결과가 나오자 주민 다수의 뜻에 승복했다.

  함부르크 에너지재공영화 주민투표안

함부르크 에너지(3)는 공영전기회사(HEW)와 공영가스회사(Hein)가 120년 가까이 운영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슈뢰더 사민당 연방정부 총리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발맞춰 함부르크 사민당 시 정부가 민영화 조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집권한 기민/기사당 연합 정부가 이를 이어받으며 에너지 민영화를 완료했다. 이에 따라 석탄발전소 티프슈타크(Tiefstack)와 베델(Wedel)을 포함한 전력망, 지역난방, 배관시설은 스웨덴 기업 바텐팔(Vattenfall)에, 가스망은 독일 기업 에온(E.ON)에 팔렸다.(4)

하지만 에너지산업 효율화라는 당초 민영화 계획은 처음부터 엇나갔다. 가격은 급격히 인상됐고, 사기업은 높은 수익을 인출해갔으며, 모든 부담은 함부르크 주민이 떠안았다. UHUN에 따르면, 바텐팔과 에온은 함부르크 에너지 산업을 인수한 뒤 전력과 가스로만 매년 4억5천 유로(약 5,940억 원)의 수익을 냈다. 독일 당국은 7~9%의 자본수익률을 허용했지만 실제 수익률은 훨씬 더 큰 10~25% 사이로 추정됐다. 바텐팔이 독점했던 지역난방의 수익률은 더 높아 2009년에는 이 사업으로만 1억 유로(약 1,321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기후 위기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에도 사기업들은 뒷걸음치기 바빴다. 애초 시 정부는 2020년까지 CO2 배출량을 40% 감축할 계획이었으나, 에너지산업 민영화 뒤 이 목표는 30%로 줄었다. 결국 에너지산업을 다시 함부르크 시 정부의 손에 두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2012년 함부르크 시 정부는 흑녹연정(기민기사연합/녹색당) 아래 5억4350만 유로로 에너지망(전력, 가스, 지역난방 등) 지분의 25.1%를 되사들였다. 적지 않은 지분을 사들였음에도, 시 정부는 가격정책 결정 등 실질적 운영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단지 거부권 행사만이 가능했다. 지분매입 과정에서 지역난방에 대한 권한을 영구적으로 포기한 탓에 문제는 제자리걸음만 했다. 결국 환경, 사회단체들은 에너지 공공성과 대안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뤄내려면 완전 재공영화밖에 답이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사기업에 판 에너지산업 운영권이 종료되는 2014년을 앞두고 주민투표 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에너지 재공영화와 노동조합

주민투표 운동은 독일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 분트(Bund)와 반세계화 그룹 아딱(Attac), 소비자 및 종교단체 등 50개 이상의 사회단체가 참가했다. 정당 중에는 녹색당과 좌파당이 지지했다. 반면 올라프 숄츠 시장(사민당)은 주민투표 반대를 주도했다. 여기에 사민당, 기민당, 자민당과 함부르크산업협회 등 기업 단체 등이 합세해 백만 유로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으며 투표 반대운동을 벌였다.

석탄발전소와 가스 공급사 노동조합도 주민투표 반대에 가세했다. 발전소와 지역난방을 운영한 바텐팔에는 독일금속노조 이게메탈(IGmetall) 지부가, 가스공급사 에온에는 독일통합서비스노조 베르디(Ver.di) 지부가 있었다. 현장 노동자들은 에너지산업 재공영화로 일자리나 노동조건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의 많은 노조 조합원들이 에너지 재공영화에 찬성했지만, 현장 노조가 반대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 때문에 독일 금속노조나 베르디 중앙은 단일한 입장을 내지 못한 채 쟁점과 거리를 뒀다. 찬성 입장을 낸 노조 조직은 독일 교원노조(GEW) 함부르크지부가 유일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에너지 재공영화를 지지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정치 경제적 조건 때문이었다. 우선,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조 지도부가 전통적으로 함부르크 사민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현장 노조가 사민당 노선에서 이탈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 현장에서는 수년간 이어진 고용불안으로 일자리 문제에 날이 서 있었다. 현장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줄고 있었고, 노조 역량도 저하된 상태였다. 게다가 2010년 바텐팔 이사회가 2018년까지 1억8천만 유로를 절감하기 위해 약 1,600개의 일자리를 정리하겠다고 밝혀 노동 현장은 어느 때보다도 고용 불안이 팽배한 상황이었다.(5)

에너지 재공영화 문제는 해당 노동자의 일자리와 직결된 문제였음에도, 노동자 당사자들은 이 운동에 뛰어들지 않았다. UHUN도 이런 노동계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시 정부는 주민투표 직전에 “재공영화를 하면 20억 유로의 부채가 생길 것이며 이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혀 노동계를 들쑤셔 놨다. 노동 현장에선 1천 개의 일자리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결국 이나 모르겐로쓰(Ina Morgenroth) 이게메탈 함부르크지부 사무총장이 2011년 6월 13일 독일 언론 <타츠노르트>에 “(주민투표가) 노동자의 운명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비난할 만큼 노조와 UHUN의 사이가 틀어졌다. 더구나 함부르크 에너지 현장 노조의 집회를 회사가 후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함부르크 주민들은 노동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영화가 필수적이라며 노동계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자 했다. UHUN은 주민투표 발의 당시 발표한 성명에서 “에너지는 시민의 생존을 위한 기반으로써,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라며 “에너지산업의 재공영화를 통해서만 에너지산업을 주체적으로 경영할 수 있고, 소비자와 환경을 보호하며,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안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에너지산업은 견고한 수입을 내기 때문에 에너지 재공영화를 통해 이의 수익을 시가 운영하고 에너지 공공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UHUN은 애초 주민투표 발의안에서도 “바텐팔과 에온 노동자들은 재공영화 시 기존 단체협상에 따르며 모든 일자리는 보존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종전 함부르크상수도공사 합병 시 단 한 명의 일자리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선례로 제시하며, 재공영화 뒤에도 노동자들은 공사나 재생에너지 등 신규 사업에 재배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공익적인 기업의 일자리는 수익 압박이 낮아 사기업보다 더 안정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UHUN은 이게메탈이나 베르디, 바텐팔 및 에온의 노동이사회와 노동자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 여러 번 대화를 진행했지만, 노조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재공영화를 지지해온 노조 조합원들도 주민투표 전 별도의 성명을 내고 재공영화 찬성 서명운동을 벌였지만, 현장 노조를 설득하기는 어려웠다.(6)

  ‘안녕 석탄’ 운동 참가 단체들이 의회에 제출할 서명을 모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https://www.tschuess-kohle.de/]

그러나 결과적으로 함부르크시 정부는 에너지 재공영화 주민투표 후 노동자의 일자리를 전면 보장했다. 실제로 함부르크자산관리공사(HGV)는 2016년 1월 1일 자로 노동자 보호를 위해 바텐팔 지사의 함부르크 전력망 사업부 및 회계, 소비자센터, IT 등 관련 서비스 분야 직원의 고용을 승계했다. 지역난방이나 가스망 전 직원도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보장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노조의 우려와는 달리, 노동과 임금 조건은 악화하지 않았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됐다.(7)

“죽은 행성에 일자리는 없다. 그러나 일자리 없이는 생태적인 전환도 없다”

2013년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함부르크시 정부는 현재까지 5년 이상 에너지 재공영화 조치를 밟아가고 있다. 2014년 1월 17일 첫 단계로 전력망을 소유·운영하고 있는 바텐팔사에게 6,100만 유로를 지불하고 100% 소유권을 이전받기로 합의했다. 2018년 1월 1일에는 주민투표 2단계로 가스네트워크를 2억7500만 유로에 완전히 재공영화 했다. 2019년 9월에는 6억2500만 유로의 구매가로 계약을 체결해 지역난방을 인수했다. 소유권은 2019년 1월 1일부터 소급 적용됐다.

그러나 함부르크 시 정부(적녹연정, 사민당/녹색당)는 에너지 재공영화 조치와는 달리 실효성 있는 탈석탄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2017년까지도 함부르크의 지역난방 60%, 함부르크에서 생산된 전력의 85%가 베델, 티프슈타크, 모르부르그 석탄발전소에서 생산됐다. 또 바텐팔은 자사 모르부르그 석탄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에너지를 함부르크 지역난방에 공급하려고 정치권을 압박했다.

결국 2018년 함부르크 분트, 아딱 등 13개의 환경·사회단체는 다시 ‘안녕 석탄(Tschüss Kohle)’(8)이라는 이름의 연대모임을 조직했다. 아울러 탈석탄 조치를 법제화하는 운동을 진행해 이를 관철했다. ‘안녕 석탄’ 운동은 2018년 2~6월 사이에 2만2494명의 서명을 받아 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6개월간의 협상 끝에, 함부르크시의회는 지난해 6월 5일 함부르크기후보호법에 탈석탄 기한을 명문화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함부르크시 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을 통한 에너지 생산을 중단해야 하며, 탈석탄 시까지 석탄 사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됐다. 탈석탄 기한을 법적으로 명문화한 것은 독일에서의 첫 사례였다. 이는 1996년 도입된 ‘민중입법’에 따라 함부르크시의회에 주민 1만 명이 지지 법안을 심의토록 한 주민들의 성과이기도 했다.

지난해 8월, 함부르크시 정부는 2030년까지 CO2 배출량을 55%까지 줄이겠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티프슈타크 발전소는 늦어도 2030년까지 석탄에서 천연가스 등으로 전환되며, 베델 발전소는 2025년까지 전력망에서 분리된다. 이 선언에는 재생에너지 우선 공급과 같은 프로젝트도 포함됐다. 이제 함부르크는 10년 안에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 전면 전환하게 된다. 석탄발전소 외에도 함부르크에 위치한 브로크도르프와 크륌멜 원자력발전소는 독일 연방정부의 탈핵 정책에 따라 내년에 해체된다. 바텐팔이 소유한 모르부르그 석탄발전소는 수요 부족을 문제로 신축 6년만인 내년 중반 폐쇄(9)될 전망이다. 이 또한 ‘안녕 석탄’ 운동이 주도한 탈석탄 법률이 낸 직접적인 성과다.

에너지 재공영화 주민투표나 ‘안녕 석탄’ 운동에 독일 노조 중 유일하게 참여해온 독일 교원노조(GEW) 함부르크지부는 “죽은 행성에 일자리는 없다. 그러나 일자리 없이는 생태적인 전환도 없다. 우리 노동자들은 변화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고용 보장은 필수 불가결하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며, 지속 가능한 노동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원으로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생태적인 전환에 누구도 포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시화해야 할 것”(10)이라며 에너지 전환에 대한 노동자들의 동참을 제안하고 있다.

[각주]
(1) 주민투표에는 1,293,102명이 참가해, 444,352명(50.9%)이 찬성을 택했다.
(2) https://unser-netz-hamburg.de/
(3) 함부르크시(인구 1백70만 명으로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 에너지망 현황: 전력망 27,000km, 가스망 7,300km, 지역난방망 800km
(4) 바텐팔은 2015년 신축한 모르부르그[Moorburg] 석탄발전소까지 함부르크에서 모두 3개의 석탄발전소를 운영했다.
(5) https://www.marx21.de/04-05-12-rekommunalisierung/
(6) 이를 대표 발의한 잉게보르그 피셔(Ingeborg Fischer) 등 베르디 조합원 8명은 “공익사업을 민주적으로 계획하고 일자리를 보장하며 수익을 함부르크에 투자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안전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노동계에 호소했다.
https://umweltfairaendern.de/wp-content/uploads/2013/07/Aufruf_GewerkschafterInnen_unser_Netz_050713.pdf
(7) https://umweltfairaendern.de/2018/10/hamburgergewerkschaften-zur-rekommunalisierung-der-ehemaligenvattenfall-fernwaerme/
(8) https://www.tschuess-kohle.de/
(9) https://www.powermag.com/vattenfall-ready-toclose-largest-german-coal-plant/
(10) https://www.gew-hamburg.de/themen/aktionenund-kampagnen/gewerkschaften-fuer-klimaschutz
  • 문경락

    에너지 재공영화 주민투표나 ‘안녕 석탄’ 운동에 독일 노조 중 유일하게 참여해온 독일 교원노조(GEW) 함부르크지부는 “죽은 행성에 일자리는 없다. 그러나 일자리 없이는 생태적인 전환도 없다. 우리 노동자들은 변화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고용 보장은 필수 불가결하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며, 지속 가능한 노동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원으로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생태적인 전환에 누구도 포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시화해야 할 것”(10)이라며 에너지 전환에 대한 노동자들의 동참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