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과 1997년, 당신의 기억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노조 설립총회를, 누군가는 총파업대회와 최루탄을 떠올릴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나와 비슷할 것이다. ‘세대’가 기억이 비슷한 집단이라면 지금의 청년 세대는 노동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87년(노동자 대투쟁), 97년(96~97 총파업) 투쟁의 기억이 빈칸이다. 반면 다수 노동조합 간부의 87년과 97년은 끝없는 이야기다. 그때의 기억에는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다.
이렇게 기억이 다른 세대가 만나고 있다. 일터에서, 노동조합에서. ‘87세대’의 팽창하는 기억을 끄트머리라도 알던 세대를 넘어, 이제 아무 기억도 공유할 수 없는 세대가 만났다. 이 만남은 때로 연대와 공정성의 대결로, 대의와 자기 이해의 충돌로 해석되고 있다. 내가 만난 다수의 50대 노동조합 간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고민과 실천이 없다”, “현장을 모른다”, “자기만 중요하다”, “희생을 모른다”고 말한다. 2~30대 간부는 “(중년 세대가) 자신들의 경험만 최고라 생각한다”, “희생이 당연한 줄 안다”, “설명해주지 않는다”, “자신들의 네트워크로, 자신들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털어놓는다. 어느 사업장에 가서 누굴 만나도 하는 말들이 비슷해 나는 매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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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얘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멀찍이서 지켜만 봤는데 그냥 안타깝기만 했어요”, “조합원 생각을 모아내는 과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청년 간부, 조합원 10여명에게 ‘노사정 합의안을 둘러싼 민주노총 토론 과정’이 어땠냐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이다. 찬성과 반대 입장이 분명히 대립하며 각자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분투했던 3주. 나는 그 시간동안 “청년 혹은 신규노조 간부, 조합원의 생각은 어떨까” 내내 궁금했다. 전노협 정신과 30년 노동운동을 말하며 ‘민주노총이 앞으로는 이러해야 한다’ 는 주장들에서 나는 그 ‘앞으로’를 살아갈 사람들의 말은 듣지 못했다. 그 논쟁은 97년 노사정위를 기억하고, ‘강경파’, ‘국민파’ 등 소위 ‘정파’ 이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얼굴 몇 개는 있는 사람들의 전쟁이었다.
민주노총의 쟁점 형성과 토론 과정은 여전히 87세대의 것이었다. 그런 논쟁이 필요 없다거나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 가장 첨예한 논쟁의 장에서도 청년의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았나 돌아보자는 것이다.
청년소득, 청년 정책, 청년 일자리, 청년 네트워크 등 ‘청년’이라는 단어만 갖다 붙이면 말이 되고 상품이 되는 세상이다. 때문에 노동조합의 다양한 갈등이 세대 간 갈등으로만 치환되는 경향도 있다. 세대가 출생연도에 따른 개념인 만큼 이 차이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쉬운 해석은 편견을 낳고 실제를 가린다. 실제가 어떻든 ‘청년들은 연대를 몰라’, ‘청년들은 자기만 중요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이유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청년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주변 청년들이 생각하는 노동조합, 투쟁, 연대 같은 것들에 대해서. 나는 이 연재 지면에서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아주 일부에 대해서밖에 쓸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써보려고 한다. ‘청년은 이렇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입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입으로.
이전의 생각들과 다를 수도 있겠다. 이게 청년들의 생각이라면 우리 민주노조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싶은 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떤가. 노동조합은 이념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조직이 아니라 현실에 발 딛고 함께 나아가는 조직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