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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합세한 의원들을 국회의원 명단에서 삭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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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없는 지역

지난 2016년, 폴란드의 극우 정당 ‘법과 정의’당은 낙태 전면 금지 법안을 발표했다. (같은 시기 한국의 낙태죄 폐지 운동과도 교감했던) ‘검은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고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법안 검토를 맡은 폴란드 의회 정의·인권위원회가 부결 권고 입장을 밝혔다. 야로슬라프 고빈 부총리는 직접 나서 “낙태 전면 금지는 없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큰 승리지만, 그러한 시도가 처음이 아니었던 데다 법과 정의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0월 13일 열린 폴란드 총선에서 법과 정의당은 하원 의석의 과반을 차지해 집권 정당 노릇을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고위 당국자들의 부패 스캔들이나 사법부 장악 논란 등에 따른 비판 여론에도 ‘집권 2기’를 열게 된 것이다. 법과 정의당은 선거기간 동안 낙태 제한을 강변했고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데에 특히 열을 올렸다. 이민자 유입이 둔화되면서 2015년 선거의 주요 전략이던 이민자 공격(쌍둥이 형제이자 당의 공동설립자던 레흐 카친스키 사망 후 그 뒤를 이어 2003년부터 지금까지 당 대표를 맡고 있는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당시 이민자들이 “오래도록 유럽에는 없었던 매우 위험한 질병들”, “온갖 기생충들”을 가져 올 것이라는 수사까지 동원해 원색적인 공격을 펼쳤다)이 힘을 잃자 성소수자를 새로운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올해 초 바르샤바 시장이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선언문에 서명하고 성교육에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세계보건기구 가이드라인 준수를 표명하자 법과 정의당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대표는 “수입된” 성소수자 이데올로기가 폴란드를 위협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를 기점으로 법과 정의당이 집권한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성소수자 없는 지역’을 선언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성소수자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소수자 이데올로기’의 배제를 명문화함으로써 낙인을 강화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작업을 펼친 것이다. 한 보수 언론사에서는 무지개 로고 위에 검은 엑스 표를 그리고 ‘성소수자 없는 지역’이라는 문구를 넣은 스티커를 배포하기도 했다.


성소수자를 지우는 국가

대동소이하다. 기껏해야 집권당의 당론은 아니며,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행기로도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이 대표발의하고(더불어민주당 의원 2인을 포함한) 여야 의원 40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된 용어 정의 일부의 수정을 요구하는 이 법안은 여러 페이지의 문서로 제출됐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될 수 있는 차별 사유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고 기존 사유 중 하나인 ‘성별’을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하기 어려운 생래적, 신체적 특징으로서 남성 또는 여성 중의 하나’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구차하다. “‘성별’에 대한 법적 정의가 누락되어 있기에, 이러한 입법적 불비를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성적 지향’의 대표적 사유인 동성애(동성 성행위)가 법률로 적극 보호되어 사회 각 분야에서 동성애(동성 성행위)가 옹호 조장되어온 반면, 동성애에 대하여 양심·종교·표현·학문의 자유에 기한 건전한 비판 내지 반대행위 일체가 오히려 차별로 간주되어” 온 “법질서가 훼손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의 전통과 건전한 성도덕을 보전하고 수많은 보건적 폐해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인권’이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전통과 도덕’이라는 모호한 말로 숨겨두었지만 실체는 분명하다. ‘동성애’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원인이라고 믿고 트랜스젠더는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존재라고 믿는 이들을 어떻게든 끌어 모아 보겠다는 심산, 자신들을 권력의 자리에 앉혀 준 ‘우리 사회의 전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시켜보겠다는 심산 말이다.

총선을 겨우 몇 달 앞두고 있다. 지난 10월 하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 추진을 결의한 기독교연합회, 김성복 한국교회총연합회 대표회장 등이 대통령 간담회에 참석해 “소수자 인권, 성소수자, 동성애, 동성혼, 학생 인권조례에 대한 우려”를 전한 것에 대한 화답으로 읽히는 것은 당연하다.


“혐오에 합세한 의원들을 국회의원 명단에서 삭제하자"

개정안이 발의된 날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짧지만 단호한 논평을 냈다. “혐오에 합세한 의원들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21대 국회의원 명단에서는 삭제하자.” 당연한 것을 구구절절 말할 일은 아니므로, 이 논평은 본문보다도 아래에 첨부된 발의자 명단이 더 길었다. 2019년 개정안에 이름을 올린 40명, 같은 내용으로 2017년에 발의됐던 개정안의 발의자 17명. 이제는 지워져야 할 이름들이다.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민주국가가 지워야 할 것은 이런 존재들이 아니다. 이들을 표적으로 삼아 선을 그음으로써 낡은 질서를 유지하려는 시도들, 그러한 시도를 통해 사욕을 채우려 드는 세력들. 지워야 할 것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