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십시오. 안 갈 겁니다. 어차피 당신들이 채증한 것들 가지고 법적으로 해결할 것 아닙니까. 당신들이 때리는 벌금, 법적인 것들 다 맞을테니 오늘은 비켜주십시오. 잘 보내고 싶습니다. 어두운 방, 그 방구석에서 그녀가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경찰 아저씨들, 종로경찰서 서장님, 경비과장님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빌어야 되겠습니까. 비키십시오.”
활동보조인이 없어 3미터의 조그만 방을 빠져 나오지 못해 화재로 숨진 고 김주영 장애해방운동가의 마지막 가는 길은 이렇게 더뎠다. 그녀의 마지막 길을 막는 경찰을 향한 장애인들의 분노도 더 강하게 터져 나왔다.
30일 고 김주영 장애해방운동가의 광화문 광장 장례식 이후 12시부터 장례 행렬은 보건복지부로 향했지만, 끝내 경찰에 막혔고 3시간여의 대치로 이어졌다.
2차선 도로만 행진을 허가해준 경찰에 분노한 장애인들이 광화문에서 안국동 방향의 4차선 도로 전체를 점거하자 경찰이 아예 도로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자신들을 막아서는 경찰을 피해 반대 차선까지 넘어가면서 자신들의 애타는 상황을 알리려 했지만 경찰은 앵무새처럼 정해진 대로 행진을 하라고 했다.
이들은 12시 30분까지 보건복지부 앞으로 이동해 ‘보건복지부 규탄 및 활동보조 24시간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장애인들이 활동보조 24시간을 정부에 촉구하는 이유는 고 김주영 활동가가 비장애인 걸음으로 서너 걸음만 걸으면 현관까지 나갈 수 있었지만 그 걸음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이 곁에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회의 규정에 대한 거부와 저항하는 강대함이 있었다”
앞서 광화문 광장에서 치른 장례식에선 김주영 활동가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광이 장애와여성 ‘마실’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가끔 늦은 밤 ‘언니 얘기하고 싶어요’ 하고 카톡을 두드렸지. 입으로 스틱을 물고 보내는 문자라 가능한 짧은 문자로 참 재치 있게 표현도 잘 하더구나”라며 “톡톡 튀는 너의 말솜씨에는 이 사회의 규정에 대한 거부와 저항하는 강대함이 있었다”고 생전의 그녀를 기억했다.
김광이 대표는 이어 “중증장애 여성으로서 너의 자존감은 꽤나 높았고, 너의 모습과 장애상태로 인한 모든 상황이 그대로 인정되고 존중받으며 일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김광이 대표의 추모사는 화재 당시 안타까움을 담기도 했다. “입에 스틱을 물고 119에 전화를 할 정신까지 있었는데 얼마나 사람을 찾았을까. 얼마나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렸을까.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3미터, 겨우 네다섯 발짝이면 되는 거리를 너는 왜 튀어나오지 못했니”
장례식엔 야권 정치인들도 참석해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종철 진보신당 당대표 직무대행은 “김주영 당원은 이 사회 누구와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셨다”며 “김주영 동지는 생을 마감하면서도 우리에게 또 하나의 교훈과 투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고 가셨다.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보조가 제공되고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되는 그러한 날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죽음으로써 밝혀주었다”고 명복을 빌었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도 “김주영 동지의 죽음은 바로 대한민국의 사회적 타살”이라며 “모든 장애인은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릴 권리를 가진 국민이며,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은 학습권, 의료지급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사회의 임무”라고 비통해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더 살아야만 하고 더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청춘이 너무도 안타깝게 허무하게 갔다”며 “참 잘못되고 미안한 상황입니다. 싸우고 그리고 또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투쟁사를 통해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 죽음을 개인의 잘못이라고 재수 없다고 떠벌리는 이 사회와 권력에 대해 투쟁하자”며 “정말 투쟁해서 지금 당장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명박 정부에 가짜복지를 사죄 받고 24시간 활동보조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경석 공동대표는 “장애인을 소, 돼지처럼 등급으로 나누고 활동보조도 2급이면 탈락시켜버리는 이러한 태도를 바꾸었으면 좋겠다”며 “31일까지 답변을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이렇게 죽지 말고 투쟁하는 것만이 김주영 동지가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우리에게 남긴 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