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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운동에서 복수노조와 노조 간 분쟁

[기획연재] 복수노조 시대의 대응과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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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국가별로 법제도는 큰 차이를 보이므로 한국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만한 복수노조 해외 사례는 사실 없다. 그러나 복수노조가 허용된 나라의 경험을 보면, 결사의 자유의 한 요소로서 복수노조의 원리와 특히 교섭권이 제한됐을 때 실제적인 복수노조 체계가 야기하는 복잡한 현실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한국 복수노조 시대 대응 과제를 분석하는 데 시사점을 주기 위해서 이번과 다음 기고에서 한국과 유사한 측면에서 해외 복수노조 사례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의 제한적인 복수노조 체계와 그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미국의 복수노조 체계가 야기하는 노조 간의 경쟁과 그 함의를 주목할 것이다. 다음 기사는 복수노조 형성 과정이 기업별 노조 체계와 협조적 노사관계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일본 사례를 다둘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 배타적 교섭제도의 의미

한국에서 미국의 교섭제도는 복수노조 허용, 다시 말해서 배타적 교섭권 부여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한 사업(장) 내 같은 교섭단위에서 1개 이상의 노조가 존재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교섭대표권승인투표(union certification vote)를 통해 대표권이 배타적으로 부여된다. 교섭대표권승인투표에서 다수 종업원들의 지지를 얻은 노조는 교섭대표가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한 교섭단위에서 노조가 단수로 존재했을 경우에도 교섭대표권승인투표를 통해서 50% 이상 종업원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교섭권을 부여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교섭대표권승인 투표가 노조설립 투표와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노동자운동에서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복수노조’는 같은 사업장 또는 같은 교섭단위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장기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같은 사업장 또는 같은 교섭단위에 2개 이상의 노조가 동시에 조직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교섭권이 없는 소수노조는 사업장 내에서 거의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미국의 산별노조는 해당 사업(장)에서 소수노조로 남기보다는 조직을 철수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복수노조 체계라는 규정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한 사업(장) 내에 교섭단위가 구분되는 복수의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경쟁 관계가 아니므로 한국과 같은 의미에서 ‘복수노조’라고 할 수 없다.

한 사업(장) 내 교섭단위 구분과 대표노조 결정 절차에 있어서 미국의 제도는 한국의 교섭창구단일화 방안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복수노조 시행 시 다수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 결정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미국의 배타적 교섭제도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는 교섭권을 얻지 못해서 소수노조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고 사업장에서 철수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미국과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대표권을 인정받기 위해 조직화 단계에서 노조간 경쟁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정파 간 갈등이 치열한 한국에서 조직 운영방식을 둘러싼 분쟁이 노조 분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노조 내에서 민주주의가 부재한 것도 분할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이런 문제들이 미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미국의 사례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결합될 때 노조 간 갈등이 얼마나 복잡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 노사관계의 발전과 교섭제도로 인한 분권화된 경쟁적 구조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피기 전에 미국 노조운동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학자들은 미국 노동운동의 특징을 분권화된 경쟁적 구조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의 원인을 미국의 법, 제도와 지리적 규모에서 찾는다. 기존의 미국 노사관계 법제는 다수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의 임금노동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이들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정치적 타협이었으므로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보다 경쟁을 야기해 왔다. 또한 미국 자체가 하나의 대륙이기도 하며 사업장이 각지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집중적(centralized) 조직화가 어렵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미국의 노조들은 한 산업에서 장기적, 체계적인 조직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조직화가 용이해 보이는 산업, 지역, 사업장에서 실용적인 조직화를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대학원 조직화는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일 것이다.)

경쟁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으로 인해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노조 간 갈등이 많이 감소된 것은 사실이다. 1954년 미국노총(AFL-CIO)은, 규약에서 가맹 조직 간에 조합원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관할권분쟁금지협정(no-raid agreement)을 규약에 반영했다. 미국의 제2노총인 승리혁신동맹(CtW)이 2005년 AFL-CIO에서 분리했을 때, 양 노총 산하조직들 간에 이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노조들이 대각선 교섭, 산별교섭, 지역교섭, 공동교섭, 교섭조정(bargaining coordination) 등 다양한 전략으로 분권화를 극복하는 데에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노사관계 제도가 갖고 있는 객관적인 한계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래 사례에서 보듯이 이는 노조 내 민주주의, 운영방식에 관한 문제들과 결합이 되면 치열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미서비스노조-서부보건의료노조 분할 사례: 비민주성과 복수노조 경쟁의 결합

북미서비스노조(SEIU)는 중앙 집중적 운영방식으로 유명하다. 이는 SEIU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본조는 지부에 대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직화를 강요하며, 지부의 성장세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에는 신탁관리(trusteeship)를 강요한다. 일부 연구자에 따르면, 신탁관리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SEIU의 역동적 조직화의 동기가 된다는 설명도 있다.

SEIU 전 위원장인 스턴(Andy Stern)은 선출 이후 조직화 중심 전략을 채택했다. 조직률이 낮은 미국에서 노동자운동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고 조합원을 늘리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는 입장에서다. 역으로 말하면, 사용자가 신규 조직화를 용인할 수 있도록 양보교섭도 불가피하다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스턴 집행부는 지부 간 통합을 통해 장기적으로 협상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략에 대해 SEIU 내에서 논란이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2008년 초 15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서부보건의료노동자연합(United Healthcare Workers West, UHW)의 지부장 로젤리(Sal Roselli)가 스턴 집행부의 전략에 반대한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다.

로젤리 지부장에 따르면, 조합원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중앙 집행부가 사업주와 비밀리에 교섭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스턴 위원장에 따르면, 양보교섭을 통해서라도 조직률을 빨리 증가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는데, UHW가 자기 조합원의 협소한 이해를 위해 전체 노동자운동의 대의를 희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젤리 지부장은 양보교섭 없이도 조직률을 신속히 높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스턴 위원장이 조합원을 속이는 것과 같은 비민주적 행위를 저질러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게다가 스턴 위원장은 UHW에 속한 6만5천 간병인과 요양보호사 조합원들을 새롭게 설립된 장기요양노동자지부로 전환배치하려는 방침을 내렸다. 로젤리 지부장이 조합원 투표 없이는 이 방침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여, 결국 2009년 1월에 UHW는 신탁관리를 당했다.

이에 반발하여 로젤리 지도부는 즉각 UHW 소속 동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전미보건의료노조(National Union of Healthcare Workers, NUHW)의 설립을 선포했다. 그 결과 조합원을 둘러싼 경쟁이 일어났다. NUHW는 ‘노조승인카드’를 통해 기존 15만 명의 조합원 중 9만1천 명의 가입 의사를 확인했다. 그러나 미국 노동법은 노조 탈퇴 및 신규 가입 조건을 규제함으로써 기존 UHW 조합원들이 당장 NUHW에 가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다. 이에 관해 두 노조 간의 법정 분쟁이 시작됐다.

마침내 2010년 캘리포니아 주 최대 병원 체인인 카이저병원그룹(Kaiser Permanente)의 교섭권을 둘러싸고 양 노조 간의 극심한 분쟁이 발생했다. 결국 4만8천명 노동자들은 SEIU를 떠나 NUHW에 가입하겠다고 전국노사관계위원회(NLRB)에 신청했다. 그러나 NLRB는 5년간의 단체협약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새로운 노조대표권 선거는 없을 것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NUHW는 지지자들의 자발적 성금에 의존해서 생존하고 있다.

양 노조 간의 갈등은 수많은 노동자들에 삶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뿐만 아니라, 2007-09년 경제위기시기에 미국 노동자운동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북미서비스노조와 캘리포니아간호사조합의 사례: 복수노조와 권할권 분쟁

지난 10여년 동안 SEIU는 캘리포니아간호사조합(CNA)과 간호사 조직화에 관한 격렬한 관할권 분쟁을 벌였다. 관할권 분쟁은 SEIU의 적극적 조직화 전략에서 비롯되며, 또한 양 노조가 지향하는 목표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SEIU는 전체 보건의료산업 노동자 조직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직종별 조직화-간호사들의 이익을 올바로 대변하기 위해서는 주로 등록된 간호사 조직화-를 지향하는 CNA의 관할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한 양 노조의 관점 차이 때문에 경쟁이 보다 치열하고 타협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두 노조의 갈등을 다음과 같이 시기 구분할 수 있다. 초기에는 특정 체인 병원, 다음에는 캘리포니아 주 전체 간호사, 최종적으로는 전국적 규모에서 간호사를 대상으로 경쟁을 벌였다. 전체적으로 30~40개의 사업장이 경쟁적 조직화 대상이 되었고 이러한 분쟁은 특히 노조대표권승인투표 시기에 극적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두 노조는 2009년 3월에 갑작스레 평화협정에 조인했다. 협정을 통해서 상대 노조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공동으로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분야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CNA는 등록간호사를, SEIU는 나머지 보건의료분야 노동자들을 배타적으로 조직하되, 이미 조직된 부분에 대해서는 상호존중을 하기로 했다.

SEIU가 10년도 넘는 갈등을 중단한 것은 노동자 내부의 단결과 협력을 위한 새로운 결의라기보다는 실리주의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CNA는 그 동안 NUHW에게 상근자 의료보험 비용 등을 지원해 왔는데, CNA가 이를 중단하는 급부로 SEIU는 간호사 조직화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양 노조 사이의 평화협정은 영원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일시적인 휴전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한편 CNA는 전미간호사노조(United American Nurses, UAN), 매사추세츠간호사조합(Massachusetts Nurses Association, MNA) 등과 통합해서 전국업종노조를 결성해 AFL-CIO(미국노총)에 가입한 상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미국 노동자운동에서는 배타적 교섭제도와 경쟁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펼쳤다. 그러나 교섭권을 획득하기 위한 격렬한 경쟁이 아직도 업종과 산업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양 노총이 기본관할권 원칙-‘산별 업종노조는 해당산업, 업종에 고유한 노동자 정체성, 직무의 성격을 중심으로 조직화를 해야 한다’-이나 분쟁중재메커니즘 등을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히 노조 내부에서 민주성의 문제나 운영방식, 조직화 전략에 관한 갈등이 결합됐을 때 경쟁적 관계를 해소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분명하다. 분권화된 경쟁적 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장기-협조적 조직화 전략은 미국 노동자운동의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호에서는 일본의 복수노조 사례를 검토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