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밖에서 깨뜨리면 기껏해야 계란 프라이지만 스스로 안에서 깨고 나오면 생명이 된다”
성폭력은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근절될 수 없다.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통해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한, 공간으로서의 민주노총 역시 성의 상품화, 성폭력 발생지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핵심은 모든 방면에서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다. 민주노총은 스스로 안에서 깨고 나오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최소한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현실은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우리는 여성들만 따로 모여 밖에서 알을 깨려 했는지도 모른다. 김00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처리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지도부 총사퇴가 곧 해답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근본적인 변화없는 총사퇴가 도리어 잠재적 피해자들에 대한 거대한 입막음이 됐는지’도 모른다.
민주노총 안에서 일어났던 13개 성폭력 사례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단순히 성폭력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조직의 관료체계, 수직적인 위계질서, 권력구조의 병폐, 가족주의 등이 숨어 있다. 이들은 곧잘 ‘조직보위-조직은폐’, ‘2차 가해’, ‘사건처리 방향’ 등 쟁점들로 치달아가곤 한다.
쟁점1. 조직에서 성폭력 사건, 어떻게 풀어야 하나? - 조직과 피해자, 그리고 나
성폭력 사건을 접수 받은 대부분의 간부들은 먼저 조직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당혹스럽다. 잘 처리해야 한다는 각오도 없지 않지만, 워낙 잘 못 처리했다간 심하게 망가진다는 피해의식이 큰 탓이다. 이 가운데 ‘조직보위-조직은폐’는 올해 초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라는 최악의 후폭풍을 몰고 왔던 최근 김00 성폭력 사건으로 더 논란이 뜨겁다.
사건을 접수 받은 민주노총 간부들은 검찰로부터 이 위원장 수배에 따른 보위를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규정과 원칙에 따라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폭력 사건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한편, 성폭력 사건으로 발생할 파장 역시 최소로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과제를 짊어졌다. 하지만 조직보위와 피해자 보호에 모두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이 사건에서 가장 먼저 위원장의 수배와 체포 이후 보위를 담당했던 간부들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은신처를 제공한 여성조합원에 대해 진술의 부담을 가중시키려 한 점을 꼽아야만 한다. 노조 대표자나 지도부가 불가피하게 개인적인 희생이 따르는 결정을 내렸을 경우조차 그 피해는 지도부가 지겠다고 천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도부가 자신의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한다면 누가 그런 지도부를 믿고 따르겠는가. 따라서 은신처를 제공한 여성조합원에게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피해 여성이 져야 할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상식이며 정당한 조직보위의 논리다.
그러나 전근대적인 노사관계 속에서 노조가 사측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변화하지도 주변의 변화를 감지하지도 못했다. 노조운동 안에는 수직적 위계질서와 관료주의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가부장적 문화와 의식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정치적인 대립과 갈등이 얽혀 있고, 인간적으로 잘 아는 사이라는 점에서 냉정하게 처리하기 쉽지 않은 ‘가족주의’적 풍토도 깔려있다. 민주노총 중앙 간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도부가 오랫동안 함께 노동운동을 해온 터였기에 이런 의식, 정서, 풍토 등을 감안하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당연히 민주노총과 해당 조직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우리는 이 같은 집단과 개인, 위계질서, 가족주의 등에 대해 언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한 적이 없었다. 또 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열어놓고 토론 하면서 '피해자의 인권'과 '조직 보호'를 위한 처리 방안을 익힐 수 있는 역할도 한 적도 없었다. 성평등 감수성에 둔감했고, 자의적이고 주관적으로 한 행동들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다면, 이는 결코 관련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더 주목해야 한다. 다른 지도부였더라면, 나였더라면 과연 지독한 풍파를 겪지 않고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쟁점2. ‘2차 가해’인가, ‘조직은폐’인가? 새로운 개념 정립 필요
성폭력 사건이 터지면 대부분 ‘2차 가해’가 일어날 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논란도 치열하다. 주로 ‘징계 결정을 하기에 앞서 가해자에게 소명기회를 주었을 때’, ‘들은 사실을 술자리, 회의 자리에서 얘기하거나 언론 등에 옮겼을 때’, ‘알고 있었지만 말을 안 하거나 숨겼을 때’, ‘온라인에 글(댓글 등) 올릴 때’, ‘책임자가 뒷풀이에서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을 때’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곤 한다. 처리 과정에서 가해자를 적극 옹호한 주변 간부들부터 심지어는 노조의 ‘중집위원’들까지 ‘2차 가해’로 인정받는 등 대상도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2차 가해를 명문화하기 전에는 다 같이 논의했으나 명문화한 뒤로는 무서워서 말을 못한다. 다들 금기시하고 사건에 대해 쉬쉬한다.”고 토로한 어느 여성간부 말처럼, ‘2차 가해’를 통해 성폭력의 위험성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고자 했던 처음 뜻과 달리 조직의 입과 귀를 막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김00사건 때 꾸려진 진상규명특위가 과거에는 충분히 ‘2차 가해’라 생각할만한 사례들에 대해 ‘그것은 왜곡된 이해’라고 설명하고, 2차 가해(라고 생각되는 행동)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오히려 ‘조직은폐 조장 혐의’로 징계를 결정하면서 조직 내 논란이 퍼졌다. 한 남성간부는 “2차 가해가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합니까?”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전교조의 어느 간부는 “진상규명특위에서 ‘조직은폐 조장’이라 했지만, 민주노총에서는 ‘조직은폐는 없었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2차 가해 규정이 쓸모없게 돼 버렸다. 그러면서 징계로 압박해 왔다. 꼼꼼히 2차 가해인지, 조직은폐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징계 처리했다. 민주노총도 차분히 성찰해야 한다.”고 문제점을 꼽았다.
개념의 혼란이다. 그렇다고 ‘2차 가해’ 개념을 아예 없앤다면? 그나마 쌓아온 반 성폭력 운동의 성과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따라서 ‘2차 가해’ 개념을 더 세분화 하고 넓히는 쪽보다는 가능하면 단순화하되, 피해자 인권과 조직 간부의 자세와 기풍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랬을 때 소수의 간부가 정보와 권력의 독점을 통해 조직적 처리보다는 유보, 또는 은폐하는 행위를 단죄할 수 있다.
쟁점3. 사건 해결의 딜레마
(1) “어디까지가 언어 (성)폭력인가”
‘아줌마’ 사건을 들춰보자. 사쪽과 대치 과정에서 투쟁을 지도하던 비정규직 여성간부에게 정규직 남성간부가 '아줌마, 저리비켜!, 조용히 해'라고 막말을 했다. 이에 피해자는 언어 성폭력으로 조직에 징계를 요구했고, 진상조사위를 거쳐 ‘성차별적 언어 폭력’으로 인정받았다. 그 근거는 ‘사쪽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일어난 언어폭력에 성(성역할 고정관련)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행위사실을 인정하나 그것이 ‘성폭력’으로 지적받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고, 노조 규정상 성폭력 개념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다. 이는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개념화할 언어, 규정이 없는 가운데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렇듯 사건화한 사례들 모두 ‘(성차별적)언어 (성)폭력’으로 인정받았지만 어디까지 성폭력 범주에 넣을 것인가는 남는 문제다. ‘아줌마’란 말이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여성주의자나 여성활동가 일부를 빼고 누가 알고 있을까?
또 언어생활은 그 시대의 문화이며 ‘욕’은 언어생활의 일부다. ‘욕’을 금지시킨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욕’에는 저항도 있고 해학과 풍자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즐기는 문화에 젖어 산다. 술자리에선 아슬아슬한 음담패설도 없지 않다. 그런데 ‘욕’은 대부분 ‘성적’인 언급이 많다.
따라서 성폭력 개념을 더 확장해서 이 모든 욕까지 다 밀어 넣는다면 아마 남성들은 여성간부들과 눈빛 마주치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욕설을 남발하는 것을 다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 언어까지 성폭력의 잣대를 들이 밀어서 다 뜯어 고치라고 주문하는 일 역시 무리다. 사건화를 통한 교훈도 필요하겠지만, 문화풍토를 바꿔내고 무엇이 문제인지 체화시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사건 해결의 딜레마
(2) ‘피해자 중심주의’, ‘사건처리 기구’, ‘징계’
성폭력 사건은 늘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다르기 때문에, 약자 보호 차원에서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사건마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둘러싼 이해가 확연히 다르다. 어느 사례를 봐도 피해자 생각을 100% 수용하면서 해결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우선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은 있으되,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 원칙, 방향 등이 너무 빈약하다. 또 규정에 따라 처리하려 해도 인간관계, 사건을 둘러싼 정치 지형들, 조직적 입장과 개인의 관계, 관행, 조직상태, 지도부 의지 등 온갖 변수들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여기에 피해자나 가해자의 심리상태,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함께 얽혀 들면서 오롯이 한쪽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에 우선, 우리한테는 과거 성폭력사건을 거치면서 축적해 온 원칙도 불분명하고, 사건 해결과정에 필요한 매뉴얼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2차 가해를 헤쳐 가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관철해 나갈 기술적인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가해자 또는 가해자가 속한 조직에서 피해자와 어떤 조정, 중간역할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없다. 대책을 세우는 일 자체를 ‘2차 가해’ 또는 ‘조직적 은폐’라 매도할 일은 아니다. 사건의 올바른 처리를 위해 상의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대부분 피해자들은 이런 행위를 불신하고 ‘2차 가해’라 지목하는가. 가해자 또는 관련자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징계보다도 더한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물론 피해자가 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하겠지만). 관련자 역시 조직의 입장에서 ‘설득’하고 ‘강요’하기보다 사건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실천적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조정’도 가능하다.
셋째,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처리를 위해서는 보다 촘촘한 원칙과 과정에 대해 재설계가 필요하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잘 처리해야 한다’고 말로만 주장해선 문제해결에 전혀 보탬이 안 된다. 수많은 남성들을 설득할 수도 없고, 사건 처리를 맡고 있는 여성 간부 역시 괴롭다. 교육을 받았던 간부들도 실제 사건이 터지면 전혀 도움을 못 받는다고 호소한다. 대부분은 처리에 대한 ‘무지와 실수’로 일이 커진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쳐 구체적인 ‘실무지침서’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많은 여성간부들이 고유업무를 다 팽개치고 진상조사위 활동에만 매진할 수도 없는 현실과 함께, ‘피해자 중심주의’와 조직의 입장 사이에서 제대로 객관적으로 처리하기 힘든 현실을 바꿔야 한다. 현재 여성위원들이 참여하고 조직 내 임원과 집행간부 등으로 꾸리도록 규정한 진상조사위 관련 규정을 바꿔, 아예 사건처리 전담기구를 둬야 한다.
다섯째, 징계만 남고 후속관리는 없는 점을 고쳐야 한다. 우선 징계 내용을 보면 대부분 성폭력 수위에 따른 합리적인 양형이 없고, 획일적이다. 또 징계가 해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거나, 이 사실로 회사로부터 탄압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서 ‘공개사과’가 아닌 다른 방식의 징계는 불가능한지, 해고도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합의가 필요하다. 또 피해자에 대한 치유와 복귀에 대한 조직적 준비도 절대 필요하다. 더불어 가해자가 징계를 이행하지 않을 때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대부분 권고 수준이지 이행하지 않을 때 다른 징계수단이 없다. 또 대부분 조직이 관리감독을 안 한 것도 사례들의 주 특징이다. 징계결정까지 험한 길을 헤쳐 왔으면 후속 관리와 점검에 힘을 쏟을 때‘보고서 조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위 쟁점들을 해소하면서 사건을 어떻게 풀 지를 따라가다 보면, ‘왜 반 성폭력운동은 사건으로만 의제화 되는가’, ‘반 성폭력이라는 담론이 왜 사건처리로만 축소되는가’란 의문에 사로잡힌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제대로 잘 처리하는가가 우선이다. 그러다 여러 복잡한 현실에서 치고 받다 보면 어느새 가해자-피해자 구도로 좁혀진다. 이는 사건 중심의 반 성폭력운동이 갖는 한계다. 이를 뛰어넘기 위해선 조직구조, 조직문화를 봐야 한다. 조직의 관료체계, 수직적 위계, 가부장적 조직문화를 들춰보지만 얽히고 설킨 현실 앞에 압도당하면서 여성 간부들이 먼저 지쳐간다. 사건이 일어나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정규, 이주, 관료주의, 권력독점 등 노동 관련한 어떤 주제도 아무 때나 들이민다고 쟁점화 되지 않듯이. 때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다.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라는 풍파를 겪었을 때 즉시 반 성폭력운동을 위한 문제제기와 사업이 적극 제기되었어야 한다. 이래저래 시기를 다 놓치고 뒤늦게 쟁점화 시킨 들(쟁점화 되지도 않고), 우리 뜻대로 현실이 돌아가진 않는다. 단순히 사건 처리만이 아닌 구조를 바꿔내는 운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 성폭력운동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 성폭력운동에 대한 재설계는 이 운동에 한정해서 방향을 찾는다고 답이 쉬이 나오진 않는다. 그러나 우선 반 성폭력운동으로만 한정해서 본다면 관련사건에 대한 기본 원칙과 처리 과정을 정립하고, 규약을 정비하는 일이 최소한 과제다. 그러나 여기서 머문다면 반 성폭력운동을 확산시키기는 어렵다. 늘 피해자-가해자, 여성-남성의 협소한 구도를 넘어 설 수 없다. 성별화된 사회, 성적 차별로 생기는 이익을 취하면서 침묵해왔던 남성들이 이제부터 왜 여성의 권리가 존중받아야 하는 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고, 함께 지혜를 모아 간다면 노동운동에서 여성운동은 여성해방운동으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