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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난방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나?

[진보논평] 희망과 자활로 이름만 붙인 최악의 복지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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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다. 추운 날씨가 닥치면 당연히 따뜻한 옷을 찾고, 따뜻한 방, 따뜻한 햇볕을 찾기 마련이다. 지난 1-2년간 글로벌 경제위기하에서 잔뜩 추위에 웅크려왔던 경제와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가? 국가경제는 나아지는데 가정경제는 후퇴한다. 다른 말로 하면 기업의 매출은 늘어나고, 소비 지출은 늘고 있는데, 가계소득은 줄어든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다. 지난 3분기 GDP가 2.9%, 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0.6%증가했다. ‘7년만에 사상 최대’라는 호들갑도 나왔다. 반면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전년도에 비해 -1.4%감소했다. 가계소득 감소율은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의 감소율이다. 실질소득 뿐만 아니라 명목소득자체가 줄어든 것도 처음이다. 특히 근로소득의 감소는 비정규직과 여성에게 집중됐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비정규직임금은 지난해 125만원에서 120만원으로 3.4%줄었다. 올해 8월에 남성 정규직 시간당 평균임금을 100이라고 할 때, 남성 비정규직은 49.4, 여성 비정규직은 39라고 한다. 법정 최저임금미만인 노동자는 2001년 59만명에서 지난해 175만명, 올해는 210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의 규모에 따라 다섯 그룹으로 구분했을 때 가장 소득이 적은 1분위 계층은 41만원 적자인 반면에,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 계층은 217만원의 흑자를 남기고 있다고 한다.

‘아랫목이 따뜻해야 윗목도 따뜻해진다’라거나, 대기업이 성장하면 중소기업과 대다수 국민들도 그 혜택을 입는다고 하는 소위 트리클 다운(trickle down)효과라는 건 이젠 없어졌다는 게 분명해진 셈이다. 요즘 난방보일러는 옛날의 온돌과는 달리 아랫목, 윗목이 따로 없으니 아예 난방시스템 자체가 고장 난 셈이다. 이명박대통령이 서울 시장시절 뉴타운개발의 시초격인 은평뉴타운의 아파트 중 일부는 날씨가 추운 요즘 ‘냉골아파트’라 불린다고 한다. 난방시스템을 가동해도 방과 거실의 바닥이 따뜻해지지 않고 차가운 상태로 그대로이기 때문이란다. 전기장판을 장만한다거나, 창틀을 보조시공하거나 하는 등의 땜질처방으로 추위를 견딘다고 한다. 그럼에도 난방비 지출은 한 달에 몇 십 만원 꾸준히 나간다고 한다. GDP도 늘어나고, 소비지출도 늘어나는데 소득은 줄어드는 모양새와 은평뉴타운 아파트의 모습이 닮은꼴이다. 경제의 ‘난방시스템’이 고장을 일으켜, 작동을 멈추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성장을 명목으로 감세, 규제완화를 변함없이 외치고 있다. 그리고 개발, 성장의 외침은 북악산자락의 블루하우스에서만 외쳐지는 게 아니다. 이 외침이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할 이가 얼마나 있을까?

경제난방이 작동불능일 때는 국가나 사회차원의 ‘난방시스템’이라도 작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국가나 사회적 차원의 난방시스템은 ‘가족’이라는 개별난방 말고는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개발한 ‘경제사회 발전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복지·분배지수는 OECD국가 30개국 중에서 30위라고 한다. 1990년에는 29위였는데, 2007년에는 30위로 한 계단 떨어져 최하위를 기록했다. 반면에 성장동력지수는 1990년 20위에서 2007년 14위로 상승했다고 한다. 20년이 흐르면서 성장신화가 국가를 흔들었지만 그 열매는 극히 일부에게만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따라 연구회는 “성장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사회 통합과 환경을 감안한 국정 운영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가족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차원의 복지시스템은 1997년 IMF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이 전 국민에게 확대되었고,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도 5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확대실시되었다. ‘최소한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목적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도 2000년 10월부터 시행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복지시스템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여기저기 고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이다. 마치 개별난방이 아닌 지역난방시스템을 도입한 은평뉴타운 아파트 난방시스템과 비슷한 형국이다. 경제구조는 비정규직을 늘리고, 저임금 노동시장을 확대하는 등의 노동유연화가 시스템화 되었고 이 시스템은 항상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보험을 근간으로 하는 복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복지시스템의 열기가 미치지 못하는 틈새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율은 50%에도 못 미친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층이면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은 410만명에 달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조건하에서 ‘따뜻하고 촘촘한 복지’를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는 전혀 따뜻하지도, 촘촘하지도 않다. 포장능력과 ‘허장성세’만 늘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새롭게 도입하는 복지시스템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정부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어하는 과거 10년의 정권의 복지시스템 궤도위에 서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복지시스템의 온기를 그나마 유지하려면 최소한 기존 제도의 틈새나 구멍을 더 넓히지 않거나, 제공하던 연료를 줄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 행정기관은 지방으로 옮기는 걸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청년실업자에게는 지방으로 가라고 한다. 눈높이를 낮추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면서 지방의 중소기업이나, 저임금 일자리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복지에서 노동으로’라고 외치며, 5개월짜리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희망’이라고 이름붙인다. 또한 10개월짜리 일자리는 임금수준이 5개월짜리의 반이다. 그러면서 ‘자활’하라고 한다. 2010년 사회복지예산이 ‘사상최대’라고 하지만, 복지예산은 20년 동안 매년 ‘사상최대’였다. 하지만 2010년 사회복지예산의 증가율은 최근 5년간 사상최저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최저’증가율을 위해서 복지의 구멍과 틈새를 넓혔다. 복지와는 상관없는 예산을 뭉텅이로 포함시켜 덩치를 키웠다. 기초생활수급자수를 그대로 유지했으나, 실제 집행률은 100%가 아닌 95%를 적용시켜 그만큼의 예산을 줄였다. 2008년 경제위기시 ‘언발에 오줌누기’식이나마 있었던 긴급복지지원예산도 1000억 이상 줄여버렸다. 저소득층에게 지원했던 에너지지원금도 900억이나 삭감했다. 저소득층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지원하는 의료비도 1400억원이나 줄였다. 친서민의 대표정책으로 자랑하는 ‘취업후 등록금상환제’를 도입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 지원했던 장학금은 반으로 줄이거나 아예 없애버렸다. 촘촘하기는 커녕 구멍만 숭숭 뚫어놓는 꼴이다.

개별난방에서 지역난방으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연료비를 절감하려는 것일 게다. 난방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도 또 다른 이유일 것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난방비도 더 들어가고, 효율성이 떨어져 자구책으로 창문틈새를 메꾸는 보강공사를 하든지, 전기장판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과정이 되풀이 되다보면 시스템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가 자칫하면 겨울철의 난방은 각자 알아서 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빚을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난방시스템 공사를 한 시공업체나, 난방연료를 공급하는 기업은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복지시스템이 위와 같은 과정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복지에서 노동으로’ ‘규제 완화’ ‘예산 삭감’ ‘산업활성화’ ‘서비스 선진화’라는 포장으로 복지시스템의 구멍과 틈새를 메꾸거나, 작동불능인 시스템을 개조하기 보다는 아예 시스템 자체를 없애서 ‘각자 알아서 살자’라는 조건을 만들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춥다고 너무 웅크리지 말고 이러한 퇴행적인 시도에 대한 활기찬 몸부림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