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믿을 수 없는 사실에 하반기 사업계획안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보았다. 다시 읽어 보고서 ‘기대감’은 접고 사업계획서 문건 속에서 ‘용산참사’라는 네 글자를 찾아보려고 꼼꼼히 또 다시 읽어 내려갔다. 없었다. 민주노총 하반기 사업계획서에 ‘용산참사’라는 네 글자는 없었다. 새벽 3시 노트북 모니터 때문에 침침해진 시력 탓인가 하여 ‘한글’의 찾아보기 기능을 활용하여 ‘용산’을 쳐보았으나 역시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의 민주노총 상태를 알 만큼 알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 나 역시 수년전에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으로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본 바가 있으므로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2009년 하반기 상황에서 용산참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렇게 전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실천계획은 고사하고 ‘하반기 주요정세’에도 용산참사는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시각에서 용산참사는 주요정세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인가?
민주노총 하반기 사업기조에는 “MB퇴진을 공동 목표로 하는 노농빈청학 등 대중조직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진보민중진영의 대정부 투쟁력을 재고하고, 제반의 사업과 투쟁에 사회연대 기조를 적극 결합함으로써 민주노총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과 기여도를 높임”으로 되어 있다. 이명박정권 퇴진투쟁을 한다는데 그 근거가 무엇일까? 2009년 정세에서 ‘이명박정권 안되겠다’는 대중적 공감대는 여러 곳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생존권을 요구하는 철거민 5명을 정권이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살해한 용산 참사만한 것이 있겠는가? 용산참사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비껴나고서 이명박정권 퇴진투쟁 운운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민주노총 하반기투쟁계획 입안자는 혹시 용산참사는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것일까? 그래서 제 코가 석자인 지금의 민주노총 상태로는 거기까지 미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일까? 용산참사가 개발자본의 수탈과 그 개발자본과 한통속인 이명박 자본정권의 폭력에 의한 것임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혹시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의 구성원인 조합원 대중이 이런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말이 안 된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명박정권 퇴진투쟁을 하자는 것은 반민주적인 이명박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 사수투쟁을 하자고 누누이 강조해 온 바다. 인권,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각계각층이 용산참사 현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최근 민주노총은 ‘사회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용산참사를 외면한 ‘사회연대’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출처: 용산범대위] |
이런 만만치 않은 투쟁을 민주노총 집행부와 상의해야 하는데, 하반기 사업계획에 ‘용산참사’ 한글자도 넣지 않은 민주노총 집행부에 어찌 말을 꺼낼까? 쌍용자동차 경찰투입이 임박했을 때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평택으로 달려가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참사현장을 지켜주는 신부님들에게 제2 용산참사를 막기 위해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시국미사라도 해 줄 수 없냐고 부탁하던 어느 유가족의 말이 귓전을 다시 때린다. 그렇다. 노동자민중의 연대는 진정으로 투쟁하는 사람들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투쟁하고 진정으로 연대하는 민주노총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부질없는 것일까?
지난 8개월간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용산참사 현장에서 투쟁해 왔다. 그리고 지난 8월 17일부터 시작된 전국순회촛불추모제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국 곳곳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촛불을 들고 나왔다. 민주노총 중앙집행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은 여전히 희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희망을 토대로 8월 27일 중앙위원회에서 2009년 하반기 투쟁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연대투쟁으로 나서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홈페이지에 공문으로 올라와 있는 ‘8월 29일 시청광장 투쟁 결합’이 허망한 휴지조각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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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님은 용산범대위 상황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