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진 의장을 다시 만난 건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파업이 끝난 며칠 후였다. 사람들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옥쇄 파업이라고 했다. ‘옥쇄’,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지난 해, 기륭 전자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단식을 두고도 사람들은 ‘옥쇄 단식’이라고 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듯한 금속노조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의 핏기 없는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부서진다’는 말이 퍼뜩 와 닿았다.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게 다 뭔가. 부서진다는 건 말 그대로 찢어지는 고통일 뿐이었다.
일곱 달 만이었다. 지난 겨울, 미포조선 굴뚝 투쟁 지원 농성장을 새벽에 습격한 현대 중공업 경비대들이 소화기로 몸을 내리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던 김석진 의장은 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암흑 같던 새벽,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일어난 폭행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수시로 엄습해오는 공포로 괴롭다던 그는 오랜 투쟁이 남길 정신적 고통에 대해 우려했다.
미포 조선의 사업주와 관리자들에게 항의하며 목에 줄을 매달고 뛰어 내린 노동자,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복직과 현장 조직 탄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백 미터 굴뚝에 오른 노동자들. 그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정신적 고통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 했다. 미포조선 굴뚝 투쟁 후 이개월 간의 정직이라는 징계를 당하고 현장에 복직한 그에게는 미행과 감시, 폭언과 폭행, 동료들의 따돌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옥쇄’, 이러다가 저 사람도 부서지는 게 아닐까. 여름 휴가의 끝날, 휴가는 다녀왔냐는 나의 물음이 금방 민망해져 버렸다. 팔 년을 넘게 끌었던 해고 무효 소송이 대법원에서 부당 해고로 판결나면서 2005년에 다시 미포 조선으로 복직한 그는 부당 해고 기간의 임금 가산금을 지급하라고 회사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울산 지방법원에서 승소를 했고 회사쪽의 항소로 지금은 부산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 준비로 부산을 오가느라 휴가는커녕 집에서 편하게 가족들과 밥 한번 먹을 여유조차 없었을 듯하다.
때마침 부산을 다녀오는 길에 울산 톨게이트 입구에서 차가 고장 나서 갑자기 서버리는 바람에 폐차를 했단다. 그의 분신처럼 그와 함께 현수막을 두르고 늘 일인 시위에 함께였던 그 차가 없어지면서 그는 이번 주에 일인 시위를 하지 못했다. 현대 중공업 경비대 폭행에 대해 정몽준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고 미포 조선 굴뚝 투쟁의 결과로 나온 합의서를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그의 일인 시위는 휴가 중에도 계속되었다. 그의 차도 지친 것일까. 고속도로가 아닌, 톨게이트 부근에서 차가 멈춰 버린 것을 두고 김석진 의장은 죽음이 그를 비껴간 듯한 안도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의 차가 수명을 다하면서 그의 일인 시위도 하루 쉴 수 있게 되었다.
“제가 이제 올 십이월 일일이 근속 이십 구 년이에요. 이십 구년이면 전부 다 알잖아요. 나하고 친한 사람들도 둘이 있을 때는 인사하고 그러는데, 나도 몰랐는데, 나를 비난하는 현수막을 공장 안에 걸고 그러니 사내에서는 이게 이슈가 되잖아요. 석진이하고 말하면 너도 왕따 당한다. 이게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염이 되니 본의 아니게 나를 피하는 거에요. 출근할 때 혼자고, 퇴근할 때 혼자고, 말도 없고 인사할 수 없고 퇴근할 때 잘 가라는 말도 할 수 없고, 수고하라는 말도 할 수 없고, 이게 무섭더라고요. 그냥 한사람을 왕따 시키는 그런 문제가 아니고, 지금이라도 내가 항복만 하면 문제가 틀려지겠죠. 그런데 나까지 물러설 순 없잖아요.”
스스로는 의지가 강하니 이겨낼 수 있다고 다짐하지만 칠 개월 사이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동해안의 이상 기후로 올 여름은 내내 서늘했다. 봄과 여름이 오가던 환절기에 들어 버린 감기가 칠월이 가고 팔월이 와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의 몸에도 짙은 감기 몸살이 눌러 붙은 듯하다. 쉬어 버린 목소리, 가끔씩 쿨럭이던 기침 소리,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는 뜬눈으로 지새웠나. 배 수리를 하는 중노동을 하지만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도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고 잠 못 드는 밤이 많다.
할 수만 있다면 미포조선 공장 안으로 달려 들어가 그와 함께 일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싶다. 모두가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공장, 그를 힐난하는 현수막 아래에서 녹슨 배를 닦아내는 그의 아픈 어깨에 내려앉은 짐을 덜어내고 싶다. 그러나 무엇 하나 할 수가 없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담아내는 일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력하다.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나중에 이 싸움이 끝난다 해도 용서가 안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가슴에 상처를 주고 있잖아요. 얼마 전에는 뭐까지 했냐면 반별로 거두는 회비까지, 송년회비며 회식비며 친목회비처럼 내는 돈, 반에는 반비를 내는데 그거까지 중단시켜 버린 거예요. 내꺼는 안 받겠다는 거예요. 이런 부분이 쌓이고 쌓여서, 이런 부분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한 삼분의 일이 되는데, 삼분의 이는 그냥 지켜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해가 되는데, 욕하고, 빼앗고, 폭언하고 폭행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정년퇴직해도 죽을 때까지 용서가 안돼요. 친일파 용서 못 하듯이요.”
쌍용 자동차의 파업이 끝난 후, 빠른 속도로 공장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장이 회복된다고 해도 사람들 사이에 내려꽂힌 날카로운 칼날을 무엇으로 뽑을 건가. 세월이 지나 칼날이 녹슬고 무뎌진다 해도 그 자리의 깊게 패인 상처들은 또 무엇으로 메꿀 건가. 원망스러운 것은 김석진 의장을 외면하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아니다. 공장안의 노동자와 공장 밖의 노동자가 나누어졌다 해도 결코 그 누구도 서로의 적들이 아니었다는 걸 쌍용차의 노동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본이 노리는 게 뭐냐면 개별화죠. 더불어 살고, 함께, 공동체, 이런 걸 무 자르듯 다 잘라 놓잖아요. 같은 동료가 동료를 그렇게 해버리니까, 한번 상처를 받으면 의식적으로 무장되지 않은 채 상처를 받으면 그게 오래 가요. 심신이 허약한 사람이라면 우울증 걸리고 이상한 행동도 할 것 같아요. 그게 자식들까지도 영향을 받더라고요.”
쌍용 자동차의 오랜 파업은 아이들의 마음도 갈라 놓았다. 경찰과 대치 중인 공장을 그린 아이의 그림, 그 공장안에서 일자리를 지키려고 투쟁중인 아빠를 떠올리며 그렸을 그 그림을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공유할 수 없었다며 미술 학원 선생님은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산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깊은 벽은 이미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선을 긋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김석진 의장의 큰 딸도 경찰만 보면 예민한 반응을 보여 걱정이라고 했다. 저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면 안되는데 걱정이 되면서도 오랜 삶을 투쟁 속에서 살아온 아빠의 삶이 아이에게도 깊은 고통으로 내려앉은 듯 하다며 마음 아파했다. 아빠를 외면하고 폭언하고 폭행하는 사람들을 그의 딸들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는 또 이 고통을 어떻게 이기며 살아 가고 있는가.
“아침, 저녁으로 어지간하면 동네 운동장을 한 시간씩 걸어요. 운동장이 흙이예요. 걸으면서 정리를 해요. 문제가 뭐고 내가 분노하면 안된다, 석진이 너 알면서 왜 그러느냐, 스스로 그렇게 정리를 하잖아요.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장 밖에 나와서 조합원들 만나잖아요. 날 만나면 끌어안는 사람도 있고, 술 한잔 먹고 분풀이해요. 도와 주지는 못하지만 참아라 참아라 하고 이런 사람들도 있잖아요.”
아이보리색 여름 작업복에는 ‘미포조선’이라는 한자가 기계 자수로 새겨져 있다. 공고를 졸업하고 하복과 동복을 번갈아 가며 오랜 세월 입었을 저 작업복, 저 작업복을 입고 산 세월 동안 미포조선에도 민주노조가 세워지고 무너진 세월이 있었다. 가혹한 노동조합과 현장의 조합원들에 대해 왜 김석진 의장에게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하는 나의 탄식에 그는 깊은 아픔을 털어 놓았다.
“팔십 칠년도에 노동조합 만들었잖아요. 그렇게 만든 노동조합들이 다 자본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다 보니 이제는 노조 관료가 되었잖아요. 지금은 노동조합이 회사와 조합원들의 중간 역할을 하는 거죠. 그래도 조합원들은 기댈 데가 조합밖에 없는 거예요. 이십 년간 노동 운동하면서 활동가들이 제대로 된 활동을 포기해 버리니까 이 꼬라지 난거죠. 나도 그 벌을 받는 거라 생각해요.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김석진 의장과 울산인권운동연대는 얼마 전 김석진 의장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세 개씩이나 공장안에 내걸고 조합원들에게 김석진 의장을 처절히 외면할 것을 강요하며 폭언과 폭행을 주도하는 미포조선에 대해 인권 침해를 중단하라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한 여름에도 녹슨 때처럼 우리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감기가 떨어지길 바라며 매운 낙지볶음을 밥 한 그릇과 다 먹어 치웠다. 그의 삶을 집요하게 따라 붙는 사슬, 그 구속 속에서도 그는 오늘도 걸을 것이다. 자신 속으로, 그가 믿고 있는 대중의 힘 속으로. 모처럼 무더운 여름 날씨다. 감기가 뚝 떨어졌다. 그도 부디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