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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라는 말 없어졌으면"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라](5) 한국정부·한국사회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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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유입에 따른 피할 수 없었던 한국의 변화

117만의 이주민, 72만의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는 한국은 UN이 정한 다민족국가다. 불과 일이십년 전까지만 해도 ‘다문화 담론’은 단일민족국가라는 강력한 ‘허구적 공동체’ 속에 끼어들 틈이 없었고 우리와 먼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 결혼이주여성의 가족을 찾아가는 TV방송을 통해서나, 길을 가다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이주민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주민들과 함께 일상을 나누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내년도에 796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다문화 사회통합 프로그램과 대통령의 입에 오른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정부 차원에서도 이주의 문제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고, 주요한 이슈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백억을 쏟아 부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문화 프로그램을 통한 이주민 통합과 각종 언론에서 보여주는 이주민에 대한 온정주의적 태도는 한국 사회의 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네 번에 걸친 연속 기고를 통해서 알 수 있었듯이 한국 정부, 한국 사회의 변화는 열악한 이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과정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폐해를 벌충하는 방향으로 이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지난 20여 년 간 형성된 이주민에 대한 한국 정부, 한국 사회의 인식을 살펴보고 누구도 배제 당하거나 차별 받지 않는 공존의 사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할 때이다.

이주노동자가 발 붙기에 너무나 비좁은 한국 사회

첫 번째 기고 글 “이주노동자로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주노조, 이주공동행동, 외노협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2008 고용허가제 실태보고 '에 따르면 대략 하루 평균 11시간의 노동을 하고 받는 임금은 잔업, 특근을 모두 합쳐도 고작 109만원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은 숙식비 공제, 수당 미지급, 상습적 임금 체불, 원화 가치하락, 물가 상승 등으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세계경제위기는 이주노동자의 고용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소한의 생활비와 본국의 가족에게 보내는 돈을 제외하면 남는 돈이 하나도 없어 한국을 떠날 수 없다는 한 이주노동자의 말)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야만적인 단속추방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음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널리 알려져 있다(두 번째 기고 “이주노동자와 한국을 병들게 하는 야만적 강제단속” 참고). 더 큰 문제는 인종차별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집단’이나 ‘일자리 약탈집단’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범죄 문제를 강력한 단속의 근거로 제시했으나 실제 범죄율은 한국인의 1/4정도로 정부의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각종 포털 사이트의 카페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는 反외국인 단체들이다. 이들은 극소수의 강력범죄를 부각시키면서 사회불안과 경제위기로 인한 대중들의 원한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수렴시키고자 한다. 또한 이주노동자 집회 사찰, 언론 보도 용 反이주노동자 집회 개최,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고 등 출입국관리소의 ‘정보원’ 역할을 하며 반인권적 단속추방 강화와 퇴행적인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한국’식 어머니가 아니면 차별받는 이주여성

정부에 의해 추방 대상으로 낙인찍힌 미등록 이주노동자와는 대조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은 사회통합을 위한 다문화 교육 등 우호적 관점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처럼 일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네 번째 기고 “결혼 이주 여성의 삶과 노동”에서 살펴봤듯이 결혼이주여성의 상황은 전혀 녹록하지 않다. 정부와 언론을 통해 유행처럼 번져나간 ‘다문화 담론’의 실체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어머니/며느리/부인이라는 정체성, 즉 신자유주의가 해체한 가족의 공백을 벌충하는 역할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이었을 뿐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다문화 교육은 김치 담그기, 수공예 등 ‘한국 문화’를 유지/보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을 뿐 ‘다른 문화’에 대한 배려나 이해는 찾아보기 힘들다.

결혼이주여성의 사회보장제도 역시 ‘한국 국적의 자녀 유무’를 수혜 조건으로 두는 등 다문화와 비슷한 정책적 맥락 선상에 있다. 52.9%(2005)의 결혼이주여성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궁핍한 가계를 위해 이주노동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작업장에서의 국적과 성별의 이중 차별 역시 한국사회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해준다.

이주민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끝을 모르는 공격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국에서 이주민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가지는 주체라기보다는 정부와 자본의 정책과 이해관계에 따라 배제되거나 포섭당하는 객체로서 인식되어 왔다. 이주민에 대한 법/제도를 대폭 개악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불법 체류자가 활개 치고 다녀서는 안 된다”라는 인수위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에서 ‘350명 규모의 합동단속반’으로 구체화되었고, 마석의 토끼몰이식 대규모 반인권적 합동단속으로 실행중이다. 출입국관리법과 고용허가제의 개악 역시 한국에서 이주민들의 삶을 옭죄고 있다.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완벽하게 보장한다고 자랑한 고용허가제의 경우 세 번째 기고문 “고용허가제라고 다르지 않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노예허가제라고 부르는 것이 온당하다. 더군다나 계약 기간을 1년 단위에서 3년 단위로 늘리고(가령, 악덕 사업주를 만났을 때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아야 하는 기간이 1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기간 연장의 권한이 여전히 고용주에게 귀속되어 이주노동자들의 종속을 더욱 강화하는 법 개정을 예정하고 있다. 출입국관리법 개악안은 ‘출입국공무원의 명의로 긴급보호서를 발부’할 수 있는 규정을 추가해 그동안 불법적으로 자행해온 ‘영장 없는 긴급보호’에 면죄부를 주려하고 있다. 또한 불필요한 생체정보수집, 자의적 판단을 통한 강제퇴거 등 독소조항을 대거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이 종합되어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외국인 노동자 보호 및 다문화 가정 지원’은 강력한 단속추방과 생색내기에 그치는 대책으로 비판받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를 넘어 연대로! 공존의 사회를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는 외국인 비율은 5%, 국제결혼 이민자의 자녀가 전체 어린이의 20%를 차지할 것이란 분석이 있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불과 십 여 년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더 많은 이주민과 함께 어울리며 공존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 정부의 관리, 통제, 동화 중심의 이주민정책과 한국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인종차별적인 이데올로기가 바뀌어야 한다. 경찰의 이슬람 청년 차별로 2005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방리유 시위나 백호주의자(白濠主義, 유색인종의 이민에 반대하는 백인들)의 중동 혐오가 일으킨 호주 폭력사태가 이제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12월 18일은 UN이 정한 세계이주민의 날이다. 지난 12월 14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는 ‘2008 세계 이주민의 날 맞이 연대마당’이 열렸다. 이 날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하고, 서로 출신국가의 노래와 춤을 뽐내며 자신들의 문화를 다른 국가의 친구들과 공유하는 진짜 ‘다문화’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연대마당에서 만난 미등록 이주노동자 J씨의 이야기는 이주노동자의 현주소와 앞으로 한국 정부,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알려준다.

“저는 1995년에 가족들의 생계를 때문에 돈 벌러 한국에 왔어요. 한국 사람이 기피하는 데서 하루에 14-15시간 일해도 한 달 월급이 120-130만원 밖에 안 되고, 작업장에서 한국 사람들과 차별이 심하기도 하지만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부쳐야 해서 불법으로라도 일 할 수밖에 없어요. 힘들고 결혼도 못했지만 젊음을 보낸 한국이 좋고 많이 도와주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요. 그래서 오래 살 수 있었어요. 한국의 사장들은 일하다 다치면 보상해주지 않아서 투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해요. 그런데 정부가 왜 이주노동자 단속하고 보호소에 가둬서 비인간적으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부는 한국에 있는 미등록 동지들 합법화해야 해요. 그리고 ‘다문화’라고 많이 하는데 그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서 나오는 말 같아요. ‘다문화’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기획의도와 순서

경제위기 상황은 가장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 공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월급을 삭감당하기도 하고 높이 뛴 물가 때문에 생활고도 가중되고 있다. 환율이 높아서 본국에 송금할 돈도 턱없이 줄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1월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성생공단 일대에서 벌어진 정부합동 단속으로 1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연행 되었다. 경찰까지 동원된 유례없는 대규모 단속은 체류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이뤄졌지만 토끼몰이식, 군사작전식 단속으로 인권침해의 표본이 되었다. 이미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눈보라 몰아치는 혹한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탄압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침묵의 겨울 이주노동자후원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것이 한국사회의 경종이 될 수 있도록 5회에 걸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기획을 싣고자 한다.

다음은 기획의 순서이다.

1. 이주노동자로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
2. 야만적인 단속은 이주노동자와 한국사회를 병들게 한다.
3. 고용허가제라고 다르지 않다.
4. 이주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5. 한국정부, 한국사회가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