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체류자에 엄격하게 대처하라”, “향후 5년 내에 제로로 만들어라” 등의 초강경 발언을 한 이후 법무부에서는 지역별로 할당량까지 설정하면서 미등록이주노동자 강제단속에 열을 올렸다. 이에 지난 8월까지 1만 8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를 단속했으며 연말까지 2만여 명을 더 단속하겠다고 한다.
지난 9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 법무부와 노동부가 합동으로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임금에 기숙사비와 식대를 포함시키고 최저임금 감액적용 기간을 늘리는 등의 이주노동자 임금삭감 방안과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강화 방침이었다. 또한 정부는 강제단속을 더 자유롭게 하고 이주민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고, 고용허가제 역시 기업주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정하려 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위기 상황은 가장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 공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월급을 삭감당하기도 하고 높이 뛴 물가 때문에 생활고도 가중되고 있다. 환율이 높아서 본국에 송금할 돈도 턱없이 줄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1월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성생공단 일대에서 벌어진 정부합동 단속으로 1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연행 되었다. 경찰까지 동원된 유례없는 대규모 단속은 체류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이뤄졌지만 토끼몰이식, 군사작전식 단속으로 인권침해의 표본이 되었다. 이미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눈보라 몰아치는 혹한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탄압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침묵의 겨울 이주노동자후원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것이 한국사회의 경종이 될 수 있도록 5회에 걸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기획을 매주 싣고자 한다.
다음은 기획의 순서이다.
1. 이주노동자로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
2. 야만적인 단속은 이주노동자와 한국사회를 병들게 한다.
3. 고용허가제라고 다르지 않다.
4. 이주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5. 한국정부, 한국사회가 변해야 한다.
▲ 탄압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침묵의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
월급이 깎이고 있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L씨는 한 달에 140-150만 원 받았는데, 사장이 이주노동자들을 다 불러서 “지금 회사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예전처럼 못준다, 120이상 못주니까 너네들 일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다른 데 알아봐라.”고 했다고 한다.
“점심값도 예전에 회사에서 줬어요. 공장에서 안 먹고 집에 와서 해먹으면 10만원 씩 줬는데 지금은 공장에서 안 먹어도 안주고, 공장에서 먹어도 안줘요.” L씨의 하소연은 이어진다.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데, 그 다음에 더 일하면 야간 수당을 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일이 조금 더 있어서 1에서 2시간 더 일해 줘도 야간수당 안줘요.” 회사는 월급이랑 점심값을 깎고 야간수당을 주지 않는 식으로 더 깎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 상담사례에서 가장 많은 것이 임금체불인데, 이렇게 야금야금 깎고 그마저도 나중에는 주지 않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혹은 주면서도 무슨 큰 선심 쓰는 것처럼 생색내는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에게 줄 돈은 떼어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을 줄인다
L씨는 “문 닫는 공장은 많이 보지 못했는데, 사람을 많이 줄이고 있어요. 우리 회사에서 12명 있었는데, 한국인, 외국인 다 줄여서 지금은 7명 일하고 있어요. 다른 공장도 그래요. 보통 외국인부터 줄이고 나서 한국인을 줄여요.”라고 말한다.
경기도 시화공단에서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R씨는 지난번에 일했던 공장에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회사를 나온 후 몇 개월 동안 일을 구하지 못해 방에만 있었다. 낮에는 집에서 TV를 보고 밤에는 근처 PC방에 가서 인터넷을 하거나 친구들한테 일자리를 물어보고 다녔다. 몇 개월 놀다 보니 가족들한테 돈도 못 부치고 급기야 생활비도 떨어져 주변에서 조금씩 빌려서 생활해야만 했다. 그러다 다행히 얼마 전에 일자리를 다시 구해서 공장을 다녔다. 하지만 그나마도 한 달쯤 일하고 나니 사장이 공장 사정이 어렵다고 그만하라고 해서 다시 일자리를 잃은 신세가 되었다. “너무 힘들어요. 일도 구하기 힘들고 단속도 너무 심하고.” R씨와 같은 처지에 처한 이주노동자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물가가 너무 올랐다
물가가 크게 오른 것도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더 없는 큰 고통이다. 특히 먹고 자고 입고 다니는 생활물가가 올라서 어려움이 크다. “월급 받는 돈은 줄었는데 물가가 너무 올랐어요. 우유가 1500원 하다가 지금은 2000원도 더해요. 계란이 1,000원 하다가 1,500원 하고요. 먹고 사는 거 다 오르고, 교통비도 오르고 이것저것 다 올라서 힘들어요.” L씨의 말이다.
그나마 받는 돈은 적어졌는데 물가까지 오르니 고통이 배가되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약 85만원)에 잔업수당, 야간수당, 특근수당 등을 합쳐서 평균임금이 115만원 정도라고 한다. 여기서 정부가 말하는 대로 기숙사비랑 식대를 떼고 최저임금까지 삭감하면 100만원이 훨씬 안될 것이고 물가인상까지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더 줄어들 텐데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속이 너무 심하다
“다른 친구들이 이주노동자들은 지금 목이 꽉 잡혀서 숨을 못 쉴 상황이라고 말해요. 정부가 숨통을 쥐고 소리도 못 내게 해요.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기가 힘들어요.” L씨는 공장가고 집에 오는 일만 하고 있는데 단속이 심해서 아침에 나갈 때 하느님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공장에서 일 마치고 들어와 씻을 때 오늘 하루 무사한 것을 하느님에게 감사드린다고 한다.
단속 때문에 산으로 도망가보지 않는 친구들이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특히 여성들 가운데 임신한 여성은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하고, 뭔가 안좋다 싶으면 언제라도 병원에 가야 하는데 단속 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단속될까봐서. 실제로 올 여름에 임신 8개월 된 필리핀 여성이 대낮에 길거리에서 단속되어 출입국사무소에 갇히는 사건도 있었다. 이주노동자는 이렇게 기본적인 인권마저 유린되어야 하는가. 이글의 인터뷰를 해준 L씨 역시 10월에 결국 단속되었다.
권리는커녕 일자리 도둑으로 몰리는 이주노동자들
한국정부와 기업이 필요해서 들여온 아시아의 이주노동자들이지만 20년 가까이 되도록 이주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권리 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권리는커녕 정부는 시시때때로 밑도 끝도 없이 이주노동자를 ‘일자리 도둑’으로 몰아가거나 범죄자 취급을 해왔다. IMF 당시에도 그랬거니와 지금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손쉬운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루에 10시간, 11시간 일하고 늘 산업재해에 시달리며 일터와 삶터에서의 차별을 겪는 이주노동자들을 최소한 존중은 못해줄망정 소모품으로 취급해 내팽개쳐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에 보더라도 11월 12일 마석에서 자행된 ‘인간사냥’과도 같은 유례없는 대규모 강제단속은 정부가 얼마나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한지 낱낱이 보여준다. 이주노동자들은 오늘 하루도 마음 편히 다리 뻗고 잘 수 없는 것이다.
▲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대와 행동이 절실하다. |
이주노동조합 전 위원장 직무대행이었던 샤킬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해야 하고 치료받아야 한다. 이주노동자들도 체불임금문제, 회사 내의 탄압과 억압 등을 해결하려면 스스로 나서서 투쟁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알리고 시민들에게 말해야 한다. 가만히 시키는 대로 일하고 숙이고 사는 것보다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참세상> 2008. 8. 29일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대와 행동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