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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있는데 에이즈 환자들이 왜 죽어야 하나요"

'로슈' 규탄 국제공동행동 열려... "비싸서 못 먹는 약은, 약이 아니라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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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왜 만듭니까?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먹을 수 없는 약이라면, 그게 약입니까? 그건 약이 아니라 독일뿐입니다"

윤 가브리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는 절규하듯 말했다.

한해 약값 2천2백만 원을 요구하며,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국내 공급을 거부하고 있는 초국적제약회사 로슈 사를 규탄하는 '살인기업 로슈 규탄 국제공동행동'이 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한국로슈 앞에서 열렸다.


로슈 "2천2백만 원, 뭐가 비싸"... 정부 "신(神)만이 안다"

더 비싸게 받기 위해 팔지 않겠다는 초국적제약회사와 이를 바라보고만 있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내의 환자 및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그간 여러 활동을 벌여왔다.

초국적제약회사들이 정부의 약가정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장에 '난입'해 항의하고, 정부의 약제급여조정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기도 했다. 또 지난 7월에는 플로어키거 한국로슈 사장을 직접 만나 면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슈 측으로 부터 돌아온 대답은 "비싼 가격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가서 항의하라". 또 약가 인하를 요구하며 가격결정 기준을 묻는 질문에 정부의 약제급여조정위원회 조정위원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적절한 가격이 무엇인지는 신(神)밖에 모른다"였다.

이 같은 국내 상황이 해외 감염인.인권 단체들에게도 전해졌고, 이번 국제공동행동은 프랑스의 'ACT UP'(권력해방을 위한 에이즈 연대)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1일 로슈 사의 창립일을 맞춰 시작된 국제공동행동에는 프랑스, 태국 등지에서 28개 단체와 개인들이 함께했다. 지난 3일 프랑스 ACT UP 활동가들은 파리 근교에 위치한 로슈 건물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 같은 날 태국의 TNP+(태국 HIV/AIDS감염인 네트워크) 활동가들도 방콕 로슈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인데, 약값 2만 달러 요구"

이날 행사에 참석한 강경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의약품접근권 팀장은 "푸제온을 구경도 못한 한국의 상황을 공감하고, 30여개 국가의 활동가들이 이번 공동행동에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로슈가 거부하고, 한국 복지부도 포기한 감염인의 생명권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며 연대를 호소했다.

변진옥 나누리+ 활동가는 "오늘과 같은 국제공동행동을 할 때까지 한국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냐"며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정부는 그동안 '푸제온은 필수약제다, 기업의 의약품 공급 문제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필수약제라는 것은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이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지고 공급해야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을 나몰라라 한 한국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현숙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정도인데, 로슈는 딱 그 수준을 약값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로슈는 생명보다 이윤을, 생명보다 돈을 이라는 관점에서 약을 생산하고, 인간의 생명을 바라보고 있다"고 로슈를 비판했다.

"에이즈 환자들도 살 권리가 있습니다"

한편, 이날 세계 28개, 국내 25개 단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로슈가 푸제온의 가격과 공급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전략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에이즈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자 인간에 대한 범죄"라며 "전 세계 어디라도 환자들이 접근 가능한 가격에 푸제온을 공급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매년 210만 명의 에이즈 환자들이 치료약이 있어도 가격이 비싸서 먹지 못해 죽어간다. 윤 가브리엘 대표는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죽어가는 숫자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약이 없어서 죽어간다"며 이를 "대학살"이라고 규정했다.

윤 대표의 절규는 210만 명을 대신한 외침인 듯 했다. "약이 버젓이 있는데, 우리가 왜 죽어야 합니까. 에이즈 환자들도 생명을 연장하고,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