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플라 사 홈페이지(http://www.cipla.com) |
미국·EU, 타미플루 확보 전쟁
세계 각국이 조류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 확보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최근 인도 3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시플라 사가 이르면 올해 말 부터 타미플루의 제네릭 버젼(복제약)을 생산하겠다고 공식 선언해 주목된다. 시플라 사의 이번 조치로 타미플루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강제실시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타미플루는 조류독감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표적인 항바이러스제로 알려져 있지만, 스위스 거대 제약회사 로슈 사가 특허권을 가지고 독점생산하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터키에 이어 루마니에서도 인체에 치명적인 조류독감이 발견돼 비상이 걸린 유럽의 경우 25개 유럽연합(EU) 회원국들 중 오직 16개 국가만이 타미플루를 비축하고 있는 실정. 그나마 비축량도 유럽연합 전체 인구의 10%분에도 못 미치는 1천만 명 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역시 전체인구 2억 9천만 명의 2%에 해당하는 분량 밖에 비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나마 미국과 유럽연합은 장기적으로 타미플루를 대량 구매해 비축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미국은 타미플루의 비축량을 적게는 2천만 명분에서 최대 1억 5천만 명분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미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는 최근 로슈 사에 1천 200만 달러 상당의 타미플루를 주문했다. 유럽연합 역시 오는 2007년 말까지 3천600만 명분을 추가로 구매한다는 계획이다.
한국 정부 비축량, 인구 대비 1.5% 수준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한국 정부가 확보하고 있는 타미플루는 70만 명분에 그치고 있다. 이는 남한 전체 인구 대비 1.5%가 채 되지 않는 분량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6년도에나 30만 명분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고 있는 조류독감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은 해당 국가 전체 인구의 25% 수준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이 유행성 전염병으로 번질 경우 약의 생산량이 전염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도 독점생산을 하고 있는 로슈 사가 공장을 완전 가동하더라도 10년 이후에나 세계 인구의 20% 해당하는 분량의 약이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가난한 국가들에게 ‘그림의 떡’, 타미플루
한편, 로슈 사의 생산량이 충분하다손 치더라도 턱없이 높은 수준의 약값 때문에 '가난한' 국가들에게 있어 타미플루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로슈 사가 미국에 공급하는 타미플루 1인분의 가격은 60달러에 이른다. 때문에 저개발국가의 정부들은 타미플루 구매를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약값이 현저히 떨어지지 않는 한 '가난한'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강제실시 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재산권 관련 무역협정'(TRIPs)과 '도하선언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강제실시란 국가긴급 사태나 극도의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각국 정부는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우선적으로 해당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말한다. 즉 조류독감과 같이 치명적인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특허권자의 권리를 일시적으로 유보시키는 제도로서, 특히 의약품 등과 관련된 공중보건 보호 조치를 위해 각국 정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지난 6일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세계보건기구 본부를 방문해 "기업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고려가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이 타미플루나 백신을 이용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특허권에 기반해 타미플루를 독점생산하고 있는 로슈 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정부도 강제실시 적극 고민해야"
한국 정부에게도 '강제실시'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국 정부 역시 문제는 돈이다. 작년과 올해 한국 정부가 수입한 타미플루 1알 당 가격은 2천 500원 선. 10알이 1인분인 점을 고려하면, 타미플루 1인분의 수입가격은 2만 5천 원인 셈. 향후 수입가격이 상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고 있는 최소한의 비축량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최소 3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은 이웃 대만도 마찬가지지만, 대만은 강제실시를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질병관제국 구우슈숭 소장은 11일 뉴욕타임스를 통해 "대만 과학자들은 타미플루 제조 방법을 알고 있고, 로슈가 허가를 내주면 몇 달 안에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인도 시플라 사의 이번 제네릭 버전 생산 선언에 대한 인도정부와 로슈 사의 반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도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이번에 시플라 사가 생산하게 될 약의 이름은 ‘오셀타미비르’. 이번 조치에 대해 시플라 사의 하미에드 회장은 “옳건 그르건 타미플루의 제네릭 버젼을 생산할 것”이라며 “향후 타미플루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로슈와 인도법정에서 공방을 벌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또 신문은 “특허권 침해가 있다면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로슈 대변인의 말도 함께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