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사노련 48시간의 정치지표

사회주의 운동이 곱씹어야 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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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사회주의 운동’을 사상의 자유의 맥락에서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대한 오늘날 대한민국 부르주아민주주의 발전의 한 단면이다. ‘어둠의 세력’으로서는 격세지감일 것이다.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한판 패를 당했다. 죽은 공안을 일으켜 정체성을 확인하고, ‘좌익 척결’의 스펙터클을 재생해 지지층을 결속시키려던 시도는 만만치 않은 일이 되었다.

10-20년 전 기승을 부렸던 조직사건의 전형이었다. 4-5명이 한 조를 이뤄 아침 시간대 동시 기습, 기동적인 대공분실 이첩 작전이 이뤄진다. 사건 한두 달 전부터는 응당 껌(미행)을 붙여 실기가 없도록 만전을 기한다. 공안은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제작배포를 들어 진보적인 단체를 대상으로 굴비 엮듯 사건을 만들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안 수사팀은 특진과 포상의 논공행상을 가렸다. ‘적’이 있었던 시기, 적에게 이로운 세력은 얼마든지 기획 수사의 대상에 올랐다. 10년 전 진보민중청년연합(진보민청)의 경우 소속 단체를 곶감 빼먹듯 하나씩 옭아맸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보안법은 위력을 잃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발전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형식적 요건을 충족했고, 시나브로 국가보안법은 낡은 계급투쟁의 산물이라는 시민사회의 합의가 형성됐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2004년 말 국가보안법이 폐지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다. 2007년 10.4 남북선언은 ‘적’을 ‘경협대상’으로 탈바꿈시켰다. 10.4 남북선언으로 사실상 남북연합 단계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더 이상 북을 ‘적’으로 삼기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남북관계의 발전은 부르주아민주주의 발전에 비례했다. 북은 더 이상 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협력해야 할 공동체로 인식됐다. 개성과 금강산에서 38경계선은 사라졌고, 남북경협의 물꼬 앞에 NLL의 낡은 영토 분단의 경계도 지워질 형세였다.

대결적 남북관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명박 정권의 몸부림을 감안한다 하여도 북을 억압적 체제로 인식, 이를 단체의 정체성으로 하는 사노련을 두고 공안이 ‘이적’으로 규정하기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수사받은 양효식 사노련 편집위원장은 “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이야기하자 수사관은 북을 찬양하지 않아도 사회주의를 찬양한 것 아니냐며 사회주의 운동을 문제 삼았다”고 말했다.

북을 찬양했다손 치더라도 이적 여부를 적용하기 힘든 상황에서 ‘북’ 대신 ‘사회주의’를 이적으로 규정하자니 ‘기획수사’로서의 완성도를 갖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법적으로도 그렇다. 2007년 4월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상고심에 올라온 ‘진보와연대를위한보건의료연합’(진보의련)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2001년 가을에 벌어진 진보의련의 이적단체 혐의에 대해 6년이 지난 2007년 4월,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 환송함으로서 ‘사상의 자유’에 대한 사법부의 수준을 보여준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적용에 있어 ‘죄형법정주의’와 함께 주장 뿐 아니라 동기와 정황을 모두 고려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니까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에 찬양.고무.선전.동조와 국가 변란 선전.선동 목적성이 있는지 여부는 그 강령, 노선, 토론, 주장과 그 활동들의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 동기, 행위 태양, 외부 관련 사상, 당시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대법원은 “(진보의련이) ‘노동자계급의 국가권력 수립’,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해에 기반한 투쟁’, ‘노동자계급정당’, ‘자본의 폐해 지적과 자본의 폐지’, ‘자본주의 철폐’,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 폭발과 자본주의의 위기 폭로’,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보건의료운동과 그 운동의 변혁운동성 확보’, ‘보건의료자본의 철폐’, ‘보건의료의 사회화’, ‘사회주의 추구’, ‘사회주의 정당’ 등을 언급한 수준”의 것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무장 봉기, 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직접 언급하거나, 의회제도, 선거제도, 시장경제 질서를 부정하고 계획 경제를 주장”한 것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직접 부정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영장전담재판부가 사노련의 영장을 기각한 배경에는 법관의 양심의 자유의 측면 외에도 대법원 판례인 진보의련 사건도 예의 검토되었음직 하다. 사노련의 대중행동강령에 등장하는 용어나 문장의 과격함 정도는 진보의련의 공소장에 등장하는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노련 사건 판결과 관련한 주목할 만한 글이 몇 개 있었다. 우선 28일 중앙일보 사설인데, 조중동이라면 응당 공안 분위기를 부추길 것이라는 일반 예상과 달리 중앙일보는 사설 ‘10년 만의 간첩 검거와 공안정국 시비’에서 “정부는 이(여간첩) 사건을 포함한 최근의 공안사건들이 ‘신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정략적 움직임’이라는 야당의 지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어제 경찰에 적발된 연세대 교수가 포함된 사노련 사건, 최근 경찰이 방통위에 ‘친북 좌파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는 움직임 등이 헌법이 규정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가보안법의 존치에 대해서도 차제에 일부 조항에 대한 개정작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안 검사출신의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은 28일 오전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세철 교수의 체포에 대해 “체포라는 것은 수사를 위한 과정”으로 “오세철 교수에 대한 체포도 아직 오세철 교수가 만들었던 집단이 이적단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라 검찰이 수사를 해서 기소 여부 등을 살펴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말하자면 사노련과 오세철 교수의 ‘이적’ 여부와 국가보안법 적용에 대한 확신이 확인되지 않는 인터뷰였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은 정말 구시대의 산물로서 역사의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범청학련, 6.15실천연대, 한총련, 전교조 교사 등이 친북활동을 한 데 대해 국가보안법은 지금도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

사노련 회원에 대한 영장 기각 판결도 사노련의 북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데는 시대통념을 인식한 법관으로서의 양심의 판단도 한 몫을 했겠지만, ‘동기, 행위태양(행위방법), 외부 관련 사상, 당시 정황’등에 대한 종합 판단 결과 ‘소명 부족’을 분명한 근거로 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등 국가보안법의 적용 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살아 있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 사노련과 유사한 이적단체 정보수집과 기획수사 6-7건이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형편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에 준한 공안이 시스템을 정비하게 되면 완성도 높는 기획수사가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노련은 ‘공개적 사회주의 운동’을 표명했고 실천하는 노동자 단체 내지 정치조직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현실'에, '변란'에 얼마나 위협이 되고 있는가를 자문해보자.

김태경 오마이뉴스 기자는 28일 ‘한국판 마타하리와 사노련 체포 타이밍’이라는 글에서 “사노련은 올 2월 창립해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서울 용산구에 있는 자신들의 사무실 주소까지 써놓았다. 이런 단체가 얼마나 국가 변란을 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사노련의 과격한 이론은 한국사회 전체는커녕 진보진영 안에서도 경쟁력이 거의 없다. 소수의 추종자들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들의 이론적 과격함이 실제 현실적 과격함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한 조직력으로까지 뒷받침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 그렇다. 촛불집회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유인물을 배포하고, 사회주의를 선전선동하는 것, 교대제를 놓고 노동자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 혁명적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호소하고 실천하는 것 등 사노련의 동기, 행위태양, 정황 등에 대해 법원은 ‘소명 부족’의 결정을 내렸다.

촛불시위의 주인공은 조직된 단체들이 아니었다. 조직된 단체들도 열심히 했지만 열심을 따지자면 네티즌과 시민들이 더 했다. 현장은 노사관계의 선진화 기법에 의해 충분히 관리되는 상황이다. 사회주의자의 노동현장 밀착의 정도가 현실에서 자본을 위협할 만한 구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경제위기가 도래하고 생존권 위협을 받으면 노동자의 투쟁도 드세질 거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상투적인 미래 예견일 뿐이다. 또한 혁명적 사회주의정당 건설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은 극히 미세하다. 사회주의정당,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을 하는 주체로서는 ‘선전선동의 강도’가 아니라 ‘선전선동의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곱씹어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노련 48시간, 공안의 설익은 뻘짓거리 덕분에 한 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동시에 한국에서 사회주의자의 ‘공개’ 활동에 대한 최소한의 법제도적, 정치운동적, 사회문화적 가능성이 확인됐다. 유쾌한 일이다. 고생한 7인과 가족과 사노련 회원들, 대책회의를 한 연대주체들 덕분이다. 그러나 들떠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사노련 뿐 아니라 유사한 정치조직들의 상태로 미뤄 시민사회에서 경쟁력을 갖는 사회주의 운동의 가능성은 아직 너무도 멀리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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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뭐같이 썼네. 저마다 열심히들 살다가 잡혀갔다 방금 나온 이들 보고 선전선동 내용 꼽씹어보라고 훈수두지 말고 댁이나 잘해라. 벌어진 상처에 소금뿌리나? 유영주 씨는 빵에 갔다오고 나서 자신의 정치내용을 얼마나 업그레이드 시켰기에 훈수두나?

  • 깝치는너가무섭다,

    기고문을 그대로옳긴것이다,, 꼽냐?~남의사 훈수를 두던지말던지 너나 가만히있서라,,

  • ??

    위에 유영주 기자가 단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