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노조탄압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 12명이 ‘집단 산업재해’ 판결을 받았다. 금속사업장에서 노사갈등 탓에 발병한 정신질환이 집단 산재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개별적인 산재승인이 아닌 노조탄압으로 인한 ‘집단적 정신질환’을 인정받은 점 역시 처음이다.
지난 4일 서울행정법원은 전국금속노동조합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조합원 12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05년 5월 "노조 탄압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질환이 발병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승인 신청을 낸지 근 3년 만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정된 사실에 따르면 원고들의 우울증세는 노동쟁의 행위 과정에서 나타난 사업주와의 갈등 및 노동쟁의 행위가 종료된 이후에 있었던 CCTV설치 등의 감시와 통제 등 조합원에 대한 차별과 부당 해고 등으로 인해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쟁의 행위 후에 있었던 회사의 원고들에 대한 CCTV 설치를 통한 감시와 통제 및 조합원들만의 별도 라인 배치 등 차별 등을 고려해 볼 때 쟁의 행위 후에 있었던 회사의 일련의 행위들로 인해 원고들이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 당시 공장안의 노동자 감시 카메라 |
“여전히 탄압중인 사측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
법원은 이날 지회 조합원 13명 가운데 1명을 뺀 12명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불승인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지회에 따르면 “제외된 조합원 1명은 육아휴직기간이 탄압 시기와 겹치게 돼서 업무상재해와 연관성이 적다고 판결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2005년 집단요양을 신청하고 공단에서 불승인이 나 공단 앞 노숙투쟁을 진행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산재승인을 막기 위해 사측이 조합원을 제외한 노동자들을 모아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에서 산재인정을 방해했지만, 탄압에 굴하지 않고 지금까지 투쟁을 진행하고 있기에 이러한 결과를 쟁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또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승인으로 일관하고, 우리를 탄압으로 일관하는 하이텍 자본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2000년 12월 사무실에 6대의 CCTV를 설치했던 (주)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파업이 끝난 2002년 12월 1,2층 생산현장과 옥상 등 곳곳에 CCTV를 추가로 설치했다. 뿐만 아니라 직장폐쇄, 용역직원 동원, 부당한 강제 배치전환을 통한 조합원 왕따 라인을 구성하는가 하면, 2003년 2월에는 설 명절을 앞두고 14명의 조합원에게 징계를, 5명의 조합원들은 해고를 시켰다. 또한 2005년 5월에는 조합원 8명에게 7억 6천만 원을 손해배상 청구했다. 지속적인 사측의 감시에 조합원 전원이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를 겪게 돼 산업재해를 신청했지만 불승인 되었다.
그러다 2005년 12월 17일 조합원 수련회가 열리던 주말에는 사측이 구로공장 생산라인만 남겨두고 본사와 연구소를 충북 오창으로 이전했다.
이에 대해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김혜진 지회장은 “하이텍회사의 연매출액이 5백억 원이 넘고 당기순이익만 50억 원이 넘는데 자본금 5천만 원짜리 만들어서 그쪽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구로공장과 노동조합을 한꺼번에 없애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현재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는 지난 2월부터 충북 오창 공장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천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