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정부가 추구해야 할 대학정책의 기본 방향과 정부의 책무를 제언했다. 나아가 성명서는 "서울대가 국립대학들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춰 볼 때 서울대 법인화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국립대 법인화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며 서울대 교수 및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호소의 내용도 담았다.
민교협은 "서울대가 세계 초일류대학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교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하며, 그러나 서울대 법인화는 "불가피하게 서울대 자체와 한국 학문 전체의 왜곡된 발전 및 타 대학들과 사회의 일반이익의 희생 위에 이룩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법인화할 경우 서울대 재정은 무엇보다도 등록금의 인상, 산학협동, 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거나 지원을 받는 연구프로젝트의 수행 등을 통해 확보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 대학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고,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은 실용학문-응용과학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기생해서 존속해야 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민교협이 제시한 정부가 추구해야 할 대학정책의 기본 방향과 정부의 책무에 대한 제언, 전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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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최한 '국립대 법인화' 공청회 장면. |
교육은 공공재로 사회가 보장해야 할 기회가 돼야 한다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공공재여야 할 학문과 교육의 전당인 대학을 기업화하고, 기업화된 대학들 간에 약육강식의 경쟁관계를 도입시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동시에 승자에게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집중해 승자를 더 승자로 만드는 정책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이사회라는 비민주적 기구로의 권한 이임을 대학 자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는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대공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에 대한 정부지원의 축소를 목표로 하는 것인 만큼 경쟁의 승자에 대한 정부의 인센티브 제공이 대학의 재정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란 큰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둔 사회이긴 하지만, 사회적 관계 전체를 시장적 관계로 재편하거나 시장적 관계에 종속시키게 되면, 사회의 파괴와 황폐화가 초래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다시 파괴되고 황폐화된 사회의 자기 회복을 위한 운동, ‘시장에 대한 사회의 복수’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시장적 관계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서도 시장화, 상품화의 파괴적 효과를 상쇄하는 비시장 영역의 창출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데, 바로 그런 비시장적 영역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바로 학문과 교육이다. 이와는 달리, 국립대 법인화는 비시장 영역이어야 할 학문과 교육의 상품화와 대학의 시장화를 전면적으로 관철시키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원하는 대학만 법인화를 하면 되는데 왜 일부 대학교수들이 법인화 법안 상정 자체까지 반대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유인하려 하는 정책을 강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정부가 그런 유인 정책을 포기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유인 정책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고 학문의 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으로
그런데 “국공립대학 구성원들 일부를 빼놓고 다 찬성이고, 매스컴도 사립대학도 찬성하는 만큼, (법인화를) 당연히 해야 한다”는 곽창신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추진단장의 발언에서는 강도 높은 유인전략을 구사해 국립대 법인화를 기필코 관철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묻어난다. 그러나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대학정책을 발본적으로 쇄신해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높이고 대학과 학문의 균형적 발전에 적극 기여하는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대학정책의 기본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첫째, 일차적으로 정부는 대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확장된 재정은 무엇보다도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고, 교수노조를 비롯한 여러 교수단체들이 요구하고 있는 ‘등록금후불제’를 도입해 대학을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대학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또 정부는 지나치게 높은 사립대학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오늘날 사립대학이 자기 생존을 위해서도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는 반면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투자에 의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때문에 사립대학과 국립대학 간에 공존-공생 및 협력적 분업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국립대학이 응용학문-실용학문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는 오늘의 추세에 급제동을 걸고 국립대를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 중심대학으로 확고하게 재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관련, ‘산학협동’, 벤처기업 활동 등은 원칙적으로 사립대학이 담당하도록 만드는 한편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국립대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장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는 국립대들 간의 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립대학들 간의 협동연구와, 교수 및 학생들의 교류 등을 확대시켜 궁극적으로 국립대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구-교육 단위로 통합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현재 그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법률전문대학원 등은 조건을 갖춘 개별 대학들에 설립해서는 안 된다. 개별 대학에 설립할 경우 대학서열화를 크게 촉진시킬 그런 대학원들은 국공립 대학원으로 설립하되 특정 대학 소속이 아니라 권역별로 설립하고 그 권역에 속하는 모든 대학들에게 개방하는 독립된 대학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