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부는 공립대에서 국립대로 전환하는 인천 시립대와 신설되는 울산 국립대를 2009년 3월 법인화하고 오는 2010년까지 서울대를 포함한 5개 국립대를 법인으로 전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국립대학 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제출될 예정이다.
이에 18일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은 '국립대 법인화'에 대한 입장을 정리, 성명을 발표했다. 오는 24일 다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정부가 본격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 주체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립대 법인화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6가지 이유, 그 전문을 싣는다.
왜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하는가?
정부의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대학 자율성의 제고, 대학 경쟁력과 대학운영의 효율성의 강화 등을 명분으로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학재정을 ‘독립채산제’로 전환시키고, 국립대들도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자율적 경쟁체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완결시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국립대 법인화 정책을 단호히 반대하며,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지금이라도 당장 철회하고 대학개혁 방향을 발본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나아가 정부가 이런 우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립대 법인화 정책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신자유주의 대학개혁에 반대하는 모든 학내외 사람들과 함께 그 철회를 위한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다. 우리가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대학 중 국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도 안 될 정도로 사립대학 비중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경우 대학재정 중 정부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78%인 데에 비해 지난 해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 재정 약 20조원 가운데 정부 지원이 23%에 불과할 정도로 정부는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는 것은 대학운영의 자율성 부여를 명분으로 대학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그나마 떠맡아왔던 정부의 공공적 책무조차 방기하는 일이다.
국립대 법인화, 대학등록금 인상 몰고온다
둘째, 국립대 법인화는, 법인화 이후 일본에서 대학등록금이 2~3년 사이 약 5배 인상된 사례가 보여주다시피, 국립대학 등록금을 대폭 인상시킬 것이고, 이는 다시 사립대학 등록금의 더 한 층의 인상을 부추길 것이다. 이런 과정은 수업료 지불능력이 있는 상위 계층과 지불능력이 없는 하위계층 간에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확대-심화시키고, 권력과 부의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가난한 다수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회통합을 위한 최소조건이다.
또 국립대 법인화는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 진출한 후 교육비용을 많이 들인 만큼 그 보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당연시 여기도록 만듦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이 공익 추구가 아니라 사익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불균등한 교육기회의 수혜자들이 사익 추구의 극대화를 위해 활동하면 할수록 가난한 대중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공동체의 분열 역시 한층 더 촉진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재정 확충을 위한 대학 간의 돈벌이 경쟁을 촉진시켜 대학운영의 기업화를 재촉하지 않을 수 없다. 수익사업이 대학재정 확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대학 간 돈벌이 경쟁이 치열해지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 대학의 연구-교육 수행 능력마저도 돈벌이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만 강조할 공산이 크다. 이런 식의 경쟁은 대학의 학문-교육체제를 대학재정 확충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재편하도록 강제할 것이며, 국립대학에서도 기초학문-기초과학이 갈수록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초학문-기초과학과 실용학문-용용과학 간의 공생과 균형적 발전만이 학문 발전만이 아니라 사회 발전에도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전체 대학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이미 개성화, 특성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실용학문-응용학문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국립대학의 연구-교육마저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기초학문-기초과학은 국립대학에서도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이는 다시 한국 대학의 연구-교육체제를 실용학문-응용과학만이 비대해진 매우 기형적인 체제로 만들고 말 것이다. 또 이런 과정은 대학교육이 인문적-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지닌 비판적 지성을 양성하는 역할을 더 이상 떠맡지 못하고, 기능적-실용적 지식인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상황은 이공계의 경우 더욱 심각해진다. 과학기술은 크게 보아 ‘개별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특수적 과학기술’과, ‘개별기업 모두의 발전에 기여하는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범용적 과학기술’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 발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전자의 발전만이 아니라 후자의 발전 역시 중요해진다.
![]() |
▲ 9월 무산된 공청회 모습 |
그런데 전자의 연구는 기업 자체에 의해서나, 아니면 이른바 ‘산학협동’ 등을 통해 확보될 수 있지만, 후자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정부 투자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 그러나 국립대학 법인화는 대학으로 하여금 ‘산학협동’, 연구 성과의 특허, 벤처기업의 운용 등을 통해 개별기업이나 대학 차제의 수익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응용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만을 중시하도록 만들고, 개별기업 모두의 발전에 기여하는 범용적 기초과학기술의 연구는 등한시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처럼 국립대 법인화는 국립대학마저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거기서 더 나아가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에서도 개별기업이나 대학 차제의 수익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분야의 연구만을 중시하도록 만듦으로써 국립대학의 연구-교육체제를 결정적으로 왜곡할 것이다. 최근 민간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최우량 신용등급인 AAA를 받아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일본 도쿄(東京)대가 술을 만들어 파는 정도로 수익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교육이 아닌 수익사업에 열을 올리게 될 대학의 암울한 미래
대학, 특히 국립대학은 기업과 달라야 한다. 그 신용등급을 기업이 받았다면 그 기업이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임을 알리는 지표가 될 수 있지만, 그 등급을 일본 최고 국립대학인 도쿄대학이 받았다는 것은 도쿄대학이 얼마만큼 원래 자신이 맡아야 역할에서 벗어나는 연구 등에 골몰하고 있는가를 알리는 지표일 따름이다.
넷째,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 간 격차와 서열화를 한층 더 촉진시키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체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 간에, 서울 소재의 일류대학들과 다른 대학들 간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고, 이것이 다시 대학서열화 및 다수 대학에서의 교육 붕괴 과정을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국립대학 법인화는 월등한 인적-물적 자원을 지닌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들 간의 격차 및 소수 일류 대학과 다른 대학들 간의 격차를 한층 더 확대시키고, 대학서열화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법인화가 이루어질 경우 정부는 대학에 대한 예산 지원을 매년 조금씩 줄이는 동시에 6년마다 경영을 평가해 예산을 차등 지원한다고 한다.
정부의 대학 지원예산의 축소와 차등 지원은 ‘지방대학 고사(枯死)’가 빈말이 아닐 정도로 대학 간 격차와 대학 서열화를 결정적으로 촉진시키는 기제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인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도 한층 더 심화시킬 것이다.
대학 자율성 보장? 사학재단의 보장일 뿐
다섯째, 국립대학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정부는 법인화가 대학 자율성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점을 법인화 추진의 주요 명분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과거 군부독재 시절 대학구성원들이 대학 자율성을 요구한 것은 대학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권위주의적-관료주의적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오늘날 대학에서 나오는 자율성 요구의 목소리는 대체로 공익 보장을 위한 민주적-사회적 통제조차 대학 자율성에 대한 침해라는 대학의 이기주의적 목소리이다. ‘대학입시안 마련을 정부가 간섭하지 말고 대학에게 맡기라’는 목소리나, 개정된 사학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정부가 “대학들이 이전에는 그토록 대학 자율성 보장을 주장해 놓고서도 법인화를 통해 대학에게 자율성을 주겠다는 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전혀 옳게 반영하지 못하는 주장이다.
대학 자율성 보장의 목소리가 오늘날에는 사학재단이 가장 크게 주장하고 있는 목소리임을, 사학재단의 목소리가 대학구성원의 진정한 요구를 대변하는 것과는 동 떨어지는 주장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정부 측의 그런 주장은 서울대 입시안이 고교교육 정상화를 헤친다는 이유로 입시안 재검토를 서울대에게 요구한 적이 있고, 사학법 개정을 통해 사학재단에 의한 대학의 자율적 운영을 규제하려 하는 것이 현재의 정부정책이라는 사실에도 반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간의 민주화의 덕분으로 많이 약화되긴 했으되 그래도 강고하게 남아 있는 권력의 부당한 권위주의적-관료주의적 통제는 없어져야 하지만, 공익 보장을 위한 대학 운영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는 대학이기주의가 극심해지고, 사학재단의 전횡이 큰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오늘날 사립대학의 경우 이사회가 대학운영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대학민주화를 방해하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학 자율성이란 어디까지나 공익이 보장되고 대학민주주의를 확대시키는 가운데 추구되어야 할 가치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데 국립대 법인화는 국가의 재정적 통제 수단에 의한 대학통제를 강화하면서 대학 외 인사들도 참여하는 이사회에게 대학경영의 책임을 맡겨 대학을 시장경쟁 논리에 따라 운영토록 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대 법인화는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이사회를 통한 간접 통제체제’로 바꾸면서 재정 수단을 통한 대학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통제체제의 수립은 동시에 공공성을 훼손시키는 대학운영의 시장화를 촉진하고, 대학 내부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섯째, 대학법인화는 이른바 ‘비공무원형의 탄력적 인사제도’의 도입을 가져와 경비절감을 위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를 대학사회에 정착시킬 것이다. 이러한 상시적 구조조정체제 하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사립대학에서 나타나다시피, 이런 저런 형태의 비정규직 교수들이 양산되고, 정리해고와 정규직 직원의 비정규직화 등을 촉진시켜 고용불안정이 증대하고 노동 강도가 강화될 것이며, 대학당국과 교직원 간의 민주적인 협력적 동반자 관계 형성에 기초한 대학 발전이 불가능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