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KT노조는 이들 당사자들에게 제명 사유를 통보한 바도, 따라서 그 제명 사유에 대해 소명의 기회를 부여한 적도 없었다. 그런 KT노조가 뒤늦게 민주노총에 밝힌 해고자의 제명 사유가 ‘그들을 어용이라고 비판했다는 것’ 때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제명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KT노조가 스스로 어용임을 자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노총 시절 어용들은 스스로를 어용인 줄 알았다
KT노조가 한국노총 내 최대 어용노조로 잘 나가던 한국통신 노조 시절, 말 그대로 자타가 공인하던 생어용노조 시절에도 이런 식의 제명 사유는 없었다. 한국노총 시절 한국통신노조는 말 그대로 어용노조의 표본이었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하기 힘들던 그 시절 노조간부들은 뻔질나게 해외교류라는 명목으로 조합비를 탕진했다.
89년 어용노조퇴진 투쟁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한 장의 사진, 당시 위원장이던 최 모 씨가 기모노를 입은 일본 기생과 얼싸 안고 브루스를 추는 그 한 장의 사진이야말로 그 당시 한국통신 어용노조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어용 퇴진 투쟁에 그야말로 불을 붙였다. 당시 한통노조는 어용간부들이 영남파, 호남파로 나뉘어져 날 새는지 모르고 서로 파벌싸움하면서 걸핏하면 잠재적 경쟁 상대방을 제명시키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조차 어용 간부들은 스스로를 ‘어용’으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민주파 활동가들을 제명하지는 않았다. 단지 폭행 등을 이유로 제명한 적은 있어도 ‘어용’이라는 비판이 제명 사유가 되지 못한 다는 것 정도는 그 생어용들도 깨닫고 있었다.
한국노총 한통노조를 민주화시킨 장본인을 민주노총 KT노조가 제명시키다
그런데장본인들을 제명시킨 사유가 ‘KT노조를 어용이라고 비판한 때문’이라는 점은 참으로 소위 민주노총 시대의 KT노조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지긋지긋했던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킨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노총에서 가장 잘 나아가던 노조를 탈퇴시켜 민주노총에 가입시킨 그 장본인들이 다시 어용세력에 의해 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이에 대해 잘 못된 것이라는 입장 표명을 부결시킨 것은 역사의식 없이 정략만 난무하는 민주노총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노무현 정권에 절망하는 것은 스스로를 개혁세력인 줄 착각하면서 나라경제를 절단 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동정책 아닌가! 스스로 친노동자적인 대통령이라며 노동운동에 관한 한 온갖 잘난 체를 하며 결국은 노동운동 때려 잡는 데 앞장선 게 노무현 정권 아닌가! 과거 어용들은 스스로가 어용인줄은 알았다. 역으로 그 이야기는 ‘민주노조’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온 몸을 던져 투쟁하는 전노협을 보며 스스로 어용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어용’이라는 비판을 감수할 줄 알았다.
스스로 어용인 줄 모르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어용이 늘고 있다
그런데 소위 민주노총 시대에 들어서 스스로를 민주라고 착각하는 어용들은 스스로 어용인 줄을 모른다. 마치 스스로는 친노동자라 착각하며 결과적으로는 노동자 죽이는 선봉장 노릇하는 노무현처럼 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누구도 민주노조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전노협의 헌신적 투쟁이 과거 한통노조간부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어용이라고 인정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지금의 민주노총이 민주노조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면 ‘민주노조운동의 지도가’라 착각하는 어용들은 적어도 노동운동 판에서 사라지지 않겠는가!
실종된 역사의식! 잃어버린 민주노조운동의 기풍!
지난 23일의 민주노총 중집회의가 부결시킨 것은 단지 유덕상, 이해관 두 KT 해고자의 제명 철회 권고만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과 기풍을 내버린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조준호 위원장에게 묻게 될 책임은 단지 두 해고 동지들 감싸지 않았다는 비판이 아니라 바로 민주노조운동의 기풍 그 자체를 내팽개쳤다는 준엄한 비판일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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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님은 KT노조 조합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