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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에 문을 연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기고] “평화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세상의 모든 바위들이 일어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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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연대 신유아]

평택 대추리로, 용산참사 현장으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곁으로 늘 거리에서 소외받고 외로운 이들과 함께하던 문정현 신부는 2011년 제주 강정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정부와 해군에 대한 분노보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보다, 국가권력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절규가 내 가슴을 치고 내 몸뚱이를 제주로 향하게 했다”고 말씀하시고는 지금까지 줄곧 신부님은 강정을 지켜왔고,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있었다.

오랫동안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해 온 문정현 신부는 유신정권 당시 74년 인민혁명당조작사건으로 2년 6개월 실형을 살았다. 2006년 재심으로 40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국가는 이에 대한 배상금으로 1억 5천만 원을 지급했다. 문 신부는 그 소중한 돈을 강정마을 주민들과의 소통의 공간,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모두 써 버렸다. 소중한 돈이 소중한 곳에 소중한 의미로 쓰인 것이다.

[출처: 문화연대 신유아]

센터 건립을 위해 땅은 샀지만 건축 기금이 없었던 문정현 신부는 강우일 주교를 찾아 도움을 청했고,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강우일 주교가 뜻을 합쳤다. 천주교 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 등 6800여 명이 후원을 약속하고 모금에 동참했고 그렇게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가 완공됐다.

지난 9월 4일 제주도로 향하는 나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오래전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9월 5일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개관식이 있는 날 축하와 축복을 나누기 위한 발걸음 이었다. 센터 입구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은 생동감이 넘쳤다.

센터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입구에 서계신 성자들의 모습에 잠시 주춤 멈춰 섰다. 이곳이 성당이었나? 종교적 분위기에 조금은 위축된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용하게 한 층 한 층 둘러보았다. 층간 계단에 위치한 수묵화들은 저 멀리 시멘트 안에 갇혀버린 구럼비를 연상하게 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건물 뒤편에 만들어진 작은 공방을 본다.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 앞에서 3년간 쉼 없이 매일 미사를 드리며 공사장 관리자들과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고, 내팽겨 쳐지면서 그 아픔과 고통을 서각으로 승화시킨 문정현 신부님을 위한 공간이다. 창문 너머 의자에 앉아 계신 신부님의 어깨가 살짝 외로워 보인다.

[출처: 문화연대 신유아]

[출처: 문화연대 신유아]

다음날 오전 11시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개관식이 시작됐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강정생명평화 대행진 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강정으로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잠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정마을에 올 때면 매번 오전 11시 미사는 공사장 입구에서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공사장 입구 앞에서 미사를 드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 멀리 공사장 입구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반대해! 해군기지, 강정의 목소리 들어라~~ 반대해! 전쟁기지, 더 이상 거짓말 하지마~~~”

이 노래는 매일 11시미사가 끝날 즈음 강정마을 지킴이들과 함께 공사장 입구에서 춤추며 부르던 노래다, 아! 그렇구나. 개관식 축하미사는 센터에서 하지만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공사저지를 위한 행동은 하루도 쉬지 않는구나. 그래도 속상하고 화가 났다.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가 아닌 바로 그곳.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미사를 드리고 함께 춤을 추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개관행사를 평화센터에서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출처: 엄문희]

그렇게 미사가 끝나갈 즈음 내외빈의 축하인사가 있었다. 또 한 번 놀랐다. 강정 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외치던 그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던 원희룡 제주도지사. 그를 대신해 참석한 현을생 서귀포시장 그의 손에 마이크가 들린다. “평화센터가 개관되기 이전까지 많은 어려움과 아픔이 있었다. 평화센터가 생명 가치를 존중하는 거점이 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무슨 뜻일까. 강정에 크루즈 항이 생겨야 하고 위력을 통해서라도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소속의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대신한 이 사람을 왜 초대한 것일까, 이것도 종교적 포용인걸까. 많은 실망감에 비만 주룩주룩 내린다. 강정 주민들은 어디 있는지 잘 안 보인다. 저 멀리 빗속에 몇몇 아는 얼굴이 보인다.

이 날 강우일 주교는 축복미사 강론에서 평화센터가 제주 해군기지 완공과 관계없이 하느님의 평화를 지향하고 살기 위해 마련된 곳이며, “평화를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임을 강조했다.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가 강정마을 주민들의 공간으로, 자유롭고 활기찬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빗속에 서 있던 주민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이 날 송경동 시인의 축시는 참 많은 이들의 마음의 소리를 대변했다.

[출처: 엄문희]

강정 평화센터에서 - 송경동

어제도 오늘도 너희가 들어낸 것이
헐거운 몸 하나가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육중한 정의였다는 것을 잊지 마라
오늘 너희가 가로막은 길이
실은 참다운 인간의 내일로 가는
곧은 길이었음을 잊지 마라
오늘 너희가 연행해 간 것이
한 사람의 눈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뜨거운 가슴이었음을
잊지 마라. 오늘 너희가 강행한 일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었음을, 잊지마라

곧 별들의 폭격이 있을 것이다
곧 달빛의 입항이 있을 것이다
천년 파도가 다시 너희들의 무지를 허물고
구럼비 바위를 따라
세상의 모든 바위들이 함께 일어설 것이다

어떤 핵폭발보다 거대하고 존엄한
연대의 행진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떤 최첨단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사랑의 발걸음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군대가 없는 세상
전쟁이 없는 세상
빼앗는 자 없고
빼앗기는 자 없는 세상
군림하는 자 없고
굴하는 자 없는 세상

인간이길 포기한 너희들이
전쟁과 폭력으로 이룬 세계화를
우린 사랑과 평화, 연대라는
무한히 오래된
재래식 무기로 이룰 것이다

이 무기는 너무도 오래되었지만
녹슬지 않으며 작아지지 않으며
무엇도 해하지 않으면서도
평등과 평화, 자유라는
우리 모두의 소망으로
온 세상을 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