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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비정규직이 보여준 신자유주의 대한민국

[기고] 노동자를 비용으로 보는 비인간적 태도가 메르스 사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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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에 메르스 확진 통보를 받은 137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응급이송요원으로 일하던 노동자였다. 이 노동자는 6월 2일부터 발열 등 메르스 관련 증상을 보였지만, 6월 10일까지 격리되지 않은 채 환자 이송업무를 계속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 환자가 확진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의사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외에도 40명이 넘는 메르스 확진자가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되었음이 밝혀졌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감염에 노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명단을 작성해 관리/추적해오고 있었는데 정작 응급실에서 일하며 많은 환자들을 접촉하는 응급이송 노동자는 명단에서 누락됐던 것이다. 이 노동자가 용역/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14일, 부산에서 메르스 환자로 확진된 143번 환자 또한 2일부터 발열 증상을 보였지만 감염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채 확진받을 때까지 여러 병원을 다니며 1,000명에 가까운 사람과 접촉하게 됐다. 143번 환자는 대전 대청병원으로 파견을 나갔었던 전산관리 노동자다. 대전 대청병원은 5월 28일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병원 자체를 폐쇄하는 코흐트 격리에 들어갔고, 격리와 동시에 병원을 거쳐 간 사람들을 추적 관리했지만 143번 전산관리 노동자는 이 명단에서 누락되었다. 외주/파견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메르스 감염 추적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대한민국 전체의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시는 뒤늦게 병원에서 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면적으로 추적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조치에 포함된 서울삼성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는 무려 2,944명에 달한다. 이번 메르스 확산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결과의 총집결이다.


한국에서는 97년 IMF구제금융 이후 기업과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적극 증가시켜왔다. 노동력을 불안정화시키고, 인력 관리를 외주화 시키면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는 것이 비정규직을 증가시키는데 제시된 근거였다. 마찬가지로 기업/정부의 비용절감을 위해 복지축소, 안전규제 제거, 공기업 민영화 등 사회안전망 해체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재난/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유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는 환자와 접촉이 크고 전파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예방백신 접종을 시행했지만 그 대상에서 병원 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는 제외되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어떤 직종보다도 환자들과 접촉이 많은 노동자였다.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은 이제 ‘비용절감’의 논리에 더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차별이 전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고용관계, 사회적 차별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 권리마저 보장받기 어렵다. 만약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메르스 감염 의심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를 직장에 자발적으로 쉽게 보고할 수 있을까? 해고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함에 갈등과 고민을 수십 차례는 거쳐야할 것이다.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격리 및 치료과정에서 입을 경제적 손실도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이들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어떤 메르스 예방 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결국 방역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이렇듯 비용절감과 사회안전망 해체는 바로 국가적 위기가 도래했을 때 훨씬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번 메르스 확산에서 드러나듯이, 기업과 정부의 정책 속에서는 아예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메르스에 감염되고 이를 전파할 수 있는 한 인간이며, 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다. 이들을 외면하고 소외시키는 노동/경제 정책은 사회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우리 전체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정부는 지금 당장 간병인,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등 병원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실태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들이 메르스 의심 혹은 확진으로 격리치료를 받을 경우 통상임금을 지급을 보장하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사회전반에 만연한 비정규직 고용을 축소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노동자를 비용절감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절감을 위해 차별 등 비인간적인 처사를 서슴지 않는 기업/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만 제2, 제3의 메르스 확산을 멈출 수 있다.